[현장리뷰]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EYES OPEN, MINDS OPEN)》展, 순응‧복종을 거부하라는 ‘Obey!’라는 외침
[현장리뷰]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EYES OPEN, MINDS OPEN)》展, 순응‧복종을 거부하라는 ‘Obey!’라는 외침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7.29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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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뮤지엄, 7.29~11.6
평등, 평화, 환경, 인권 주요 주제로 다뤄
지구, 꽃, 천사, 여성…상징적도상 통한 메시지 전달
28일 간담회 질문 “왜 ‘롯데뮤지엄’을 전시 장소로 택했는가”
전시기간 중 서울 시내 5곳서 공공미술 선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강렬한 메시지를 품은 이미지, 상징적 표현을 통해 “행동하라!”라고 소리 내는 아티스트 셰퍼드 페어리가 한국을 찾아왔다. 도시 예술을 기반으로, 광고, 선전 그래픽과 사회적 메시지를 결합해 자신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 작가의 30여 년 간의 예술적 궤적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는 전시가 개최됐다.

▲Obama Hope, AP, 2008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NT ART INC.
▲Obama Hope, AP, 2008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NT ART INC. (사진=롯데뮤지엄 제공)

롯데문화재단 롯데뮤지엄이 셰퍼드 페어리의 국내 최대 규모 전시 《셰퍼드 페어리, 행동하라! (EYES OPEN, MINDS OPEN)》를 7월 29일부터 11월 6일까지 개최한다. 셰퍼드 페어리의 초기작부터 영상, 협업, 사진 자료, 신작, 벽화까지 470여 점의 작품이 출품된다. 비교적 작은 크기의 포스터 작업이 다수 전시돼, 작가의 많은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140여 점의 포스터로 채워진 벽면은 작가가 계속해서 외쳐오고 있는 메시지들의 응축된 힘을 전하고 있다.

전시는 총 8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1993년도에 제작된 그의 최초 아트프린트 작품을 공개하며, 초기작부터 올해 작업한 작업까지 선보인다. 사회 부조리, 평등‧환경‧지구 위기 등은 그의 세계에 있어서 중요한 소재다. 각 주제 별로 섹션을 나눠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또한, 그의 영감이 되는 장소도 구현됐는데 전시장 후반부에 조성된 ‘더 파크’다. 작가의 창작이 시작된 스케이트 보드장을 선보이는 곳으로 작가의 작업 초반부터 30여 년간 지켜온 그의 신념과 의지가 담겨 있는 공간이다.

전시 개막 전, 지난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셰퍼드 페어리가 직접 현장에 참석해 자신의 작품과 세계에 대한 설명을 나누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작가는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평등, 평화, 환경 등의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말하며 자신 안에 내재된 강렬한 힘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또한, 30여 년 전부터 창작하고 있는 자신의 작품들이 어떤 흐름을 갖고 발전해오고 있는지, 어떤 통일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전하고자 했다.

▲지난 2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셰퍼드 페어리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더 나은 세계를 위한 메시지를 담는 작품

셰퍼드 페어리는 "나는 예술이 나에게,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보았기 때문에 예술은 그 어떤 것 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그가 예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과정이 모두 담겨있는 말이다.

작가는 미국의 예술 대학인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다. 재학시절 작가는 스케이트보드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티커를 제작해 티셔츠와 스케이트보드 등 다양한 곳에 붙였는데, 이를 통해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의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 과정은 그의 작업의 시초가 됐다.

1989년 프랑스 전설의 거구 프로레슬러 앙드레 르네 루시모프(André René Roussimoff, 1946-1993) 초상을 모티브로 친구들과 함께 제작한 스티커 작업 앙드레 더 자이언트(André the Giant), <거인 앙드레에게는 그의 패거리가 있다 Andre the Giant has a Posse>가 주목받으며 아티스트로서 기반을 다졌다.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져나가 미국 전역의 많은 도시에 나타난 이 스티커는 셰퍼드 페어리에게 예술이 가진 영향력을 깨닫게 해 주었다.

▲Steph - OG Andre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NT ART INC. (사진=롯데뮤지엄 제공)
▲Steph - OG Andre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NT ART INC. (사진=롯데뮤지엄 제공)

이후, 상표권 분쟁으로 앙드레 르네 루시모프의 얼굴을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셰퍼드 페어리는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 <화성인 지구 정복 They Live> (1988)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오베이(OBEY)’ 슬로건과 함께 단순화한 얼굴을 배치해 보다 상징적인 이미지를 작업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 이미지는 나아가 1990년 사회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숨겨진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일종의 예술적 실험인 ‘오베이 자이언트(OBEY Giant)’ 캠페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셰퍼드 페어리는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허락받지 않은 그래피티 아트로 세상에 주목받으면서 점점 더 자신의 창작관을 구체적으로 세워나가는 시간을 겪은 아티스트다. 그에게 있어 ‘예술의 영향력’은 무형의 가치에서 그치지 않고, 유형의 작용을 불러일으킨 힘이었다.

▲140여 점의 포스터로 채워진 두 번째 전시 공간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파도, 꽃, 여성, 천사상…평등, 평화, 환경을 말하는 상징

작가는 스텐실, 콜라주 기법 등을 주로 사용하며 작품을 창작한다. 그는 명료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매력을 느껴, 포스터 작업을 꾸준하게 이어오고 있다. 셰퍼드의 작품에선 비둘기, 장미, 연꽃, 지구, 천사, 여성 등이 상징적 개념을 가지고 주로 등장한다. 또한, 강렬한 원색을 사용해 직관적이고 또렷한 이미지를 말하고 있다.

작가는 ‘이 세상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라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인종과 성차별 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을 선보이기도 한다. 아랍 여성, 무슬림 여성이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을 통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여성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특히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commanda>(2019)는 히잡을 살짝 두른 여성이 그래피티용 스프레이를 쥐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권력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이도록 자극하는 수단으로 ‘Obey(오베이)’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 있다.

▲ <commanda>(2019)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여성과 꽃의 도상을 사용하며, 콜라주 기법을 통해 세계에 닥친 위기와 문제들을 떠올리게 하는 <Open Minds>(2022)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셰퍼드는 “여러 겹의 스크린을 겹쳐 표현하면서, 세계가 어떻게 엮여 있는지 얘기하고자 했다”라며 “전 세계는 화석연료, 파이낸셜 문제, 인권 문제 등으로 엮여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실천에서 나아가 모두가 마음을 열고 문제를 직면해야 한다는 뜻을 표현하고자 했다”라고 말했다.

<Open Minds>(2022)는 환경파괴에 대한 경고가 담긴 신문 기사 내용, 불길에 휩싸인 지구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여성의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물, 화학제품, 모래 등을 혼합한 물질을 고압으로 분사해서 바위를 파쇄해 석유와 가스를 분리해 내는 기술인 수압 파쇄법(Hydraulic Fracturing)의 이중성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을 가스와 석유의 세계 최대 생산국으로 만들어준 이 기술은 지구의 환경오염, 지진 발생, 온난화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발생시키고 있다.

▲Open Minds, Version 1, 2021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NT ART INC.
▲Open Minds, Version 1, 2021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NT ART INC. (사진=롯데뮤지엄 제공)

셰퍼드의 작품은 직관적으로 들어오는 이미지 뒤에 깔려있는 신문, 책 구절, 문양 등을 통해서 좀 더 깊이 있는 생각을 열어볼 수 있다. 또한, 이질적인 이미지의 배치와 저돌적인 문장들도 작품이 가진 힘을 더욱 강렬하게 만든다.

작가는 파도 작품을 통해 환경에 대한 문제를 지속적으로 언급하는데, 광활한 파도의 뒤편으로 연기를 뿜는 공장을 배치하면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가 어떻게 구성돼 가고 있는지 말하고 있다.

간담회에선 지속적으로 환경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 작가에게 창작법에선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셰퍼드는 “수성베이스의 스프레이가 친환경적 요소를 갖고 있긴 한데 지금 내 작업 방식에는 친환경적 스프레이가 맞지 않아, 창작에 있어서는 실천을 못하고 있다”라며 “일정부분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서, 이 지점을 극복하기 위해 나무 심기 기부와 사회적 약자 금융 지원에 지속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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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는 셰퍼드 페어리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또 한 취재진은 롯데타워 내 롯데뮤지엄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작가에게 “평화, 평등,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데, 혹시 이 전시장이 위치한 이 건물이 한국에서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와는 다른 결을 가지고 건축됐고, 친환경적이지 않은 건물이라는 것을 알고도 전시장을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을 했다.

셰퍼드는 “이 건물 건축과정에 있어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세상은 복잡하고 가끔은 타협해야 할 때도 있다. 생태학적으로 이 건물이 내 철학과 맞지 않더라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내 작품과 메시지를 접할 수 있다면 타협할 수 있는 지점이다. 만약 내 철학과 동일시되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에서도 전시를 열 것이다”라고 답했다.

▲강남 도산대로에 설치된 작품, Rise Above Rose Shackle, 2022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NT ART INC.
▲강남 도산대로에 설치된 작품, Rise Above Rose Shackle, 2022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NT ART INC. (사진=롯데뮤지엄 제공)

서울 도심지 5곳에서 만날 수 있는 벽화 작품

이번 전시와 함께 셰퍼드는 전시장 외부 바깥에서도 공공미술 작품을 선보인다. ‘환경과 희망’을 주제로 서울지역 5곳에서 대형 벽화를 제작해 공개한다. 작가는 직접 송파구의 석촌호수, 롯데월드타워∙몰, 성동구, 강남구 도산대로에 벽화를 작업했다.

셰퍼드는 “퍼블릭 아트는 전시장 밖의 존재들과 전시장을 연결시켜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언제나 퍼블릭 아트 작업을 할 때 즐거움을 느낀다”라며 “한국에서 퍼블릭 아트를 선보일 적합한 장소를 찾기 힘들었는데, 서울에서 가장 바쁜 거리인 강남 도산대로에서 작품을 선보이게 돼 즐겁다”라고 말했다.

강남 도산대로에 작업된 <Rise Above Rose Shackle>(2022)는 큰 원 안에 장미가 배치된 작품이다. 셰퍼드의 작품에서 장미는 자주 등장하는 도상 중 하나로, 유기적인 구조 아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생명력에 대한 아름다움과 역경을 극복하는 회복력을 가진 강인함을 상징한다. 특히 철사에 묶여있음에도 강렬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장미는 고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정의와 신념을 표현한다. 이를 통해 보는 이들에게 행동하고, 실천하는 우리 모두의 걸음이 가진 숭고함을 전한다.

▲Justice Flower (Blue), 2021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C15C16NT ART INC. (사진=롯데뮤지엄 제공)
▲Justice Flower (Blue), 2021 2022 COURTESY OF SHEPARD FAIREYOBEY GIAC15C16NT ART INC. (사진=롯데뮤지엄 제공)

셰퍼드 페어리의 작품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동시에 내포된 의미도 다양하다. 또한, 스케이트보드 커뮤니티와 펑크 록 등 대중문화를 자유롭게 즐기고 작품의 소재로도 사용하기에 전시 곳곳에서 흥미를 느낄만한 유명인 초상 작품들이 많다. 작가는 작품을 즐기면서 동시에 관람객들이 ‘이건 왜 이렇게 된 것일까?’라는 질문을 얻길 바란다고 말한다. ‘Obey(복종하라)’라는 말을 뒤틀어, 되레 비판적인 시각을 요구하는 그의 작품들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을 제공한다.

전시 입장료는 성인 19,000원, 청소년(만13~18세) 13,000원, 어린이(만4~12세) 9,000원이다. 전시 관람 시간은 10시30분부터 19시까지다. 8월 22일 휴관일을 제외하고 휴무일은 없다. 오는 30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관람객과 셰퍼드 페어리의 ‘아티스트 토크’가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 예정돼 있다. 참가비는 29,000원으로 강연과 전시 관람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티켓 예매 및 자세한 사항은 롯데시네마 홈페이지 및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