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문화역서울284, 기획전 《나의 잠》 “지극히 개인적이자, 모두의 것인 잠에 대해”
[전시리뷰] 문화역서울284, 기획전 《나의 잠》 “지극히 개인적이자, 모두의 것인 잠에 대해”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8.05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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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 주최‧공진원 주관, 9월 12일까지
‘잠’에 대한 19명 예술가의 해석‧탐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인간의 삶 속 ‘잠’은 빼놓을 수 없는 행위다.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게 해오던 일이기에 특별한 시각으로 인지할 수 없던 이 ‘잠’을 주제로 한 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보균, 이하 문체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원장 김태훈, 이하 공진원)이 주관하는 문화역서울284 기획전시《나의 잠》이다. 오는 9월 12일까지 문화역 서울 284에서 개최된다.

▲최재은 새벽 그리고 문명, 혼합매체설치(소금, 재, 파편, 물방울 소리), 600x300x50cm, 2022 (사진=공진원 제공)
▲최재은 새벽 그리고 문명, 혼합매체설치(소금, 재, 파편, 물방울 소리), 600x300x50cm, 2022 (사진=공진원 제공)

문화역서울284의 올해 두 번째 기획전시인 《나의 잠》은 인간의 삶 속 가장 일상적 행위인 ‘잠’에 주목해, 잠에 대한 사회 보편적인 통념을 개인의 고유한 경험과 해석으로 재탄생시킨다.

전시를 기획한 유진상 예술 감독은 전시 개막 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잠’이라는 주제를 받아 구상을 시작했을 때, 너무 보편적이면서 동시에 너무 거대한 주제여서 고민이 많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잠’은 가장 개인적인 시간이다. 하지만 ‘잠’에 대한 인식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으로 함께 공유하는 지점이 있고, 사회구조에 따른 ‘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다.

유 감독은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잠’이라는 행위는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인 인식이 크다.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사회적으로 더욱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길이라고 본다. 하지만 최근에는 ‘잠’에 대한 필요성도 사회적으로 나타나고 있다”라며 “‘잠’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도 많이 진행돼 준비과정에서 다양한 토론들이 오갔고, 시대 변화에 따른 잠에 대한 새로운 발견, 작가 본인의 해석 등을 담아 전시를 기획했다”라고 설명했다.

▲전시 설명을 전하는 유진상 예술감독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 설명을 전하는 유진상 예술감독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잠의 과정을 입혀 전시 세션 구성

‘잠’은 가장 일상적이고 익숙한 것이기에 편안하게 접근 할 수 있는 주제인 듯하지만, 자칫 모호한 형태로 전달될 수도 있다. 특히 작가 개개인의 해석이 들어간 현대미술 작품으로 전시가 구성돼 관람객들이 난해함을 느낄 수도 있다. 이에 유 감독은 전시의 가이드라인과도 같은 소주제를 설정한다.

인간이 잠에 들기 시작하고, 잠을 자고, 일어나는 과정을 시간 별로 분리해 세션화 했다. 공간과 작품의 조화를 위해 전시 주제 순으로 작품이 배치돼 있지는 않다. 하지만, 작품마다 어떤 시간대를 의미하는 지 안내하는 표식을 통해 어떤 감정과 의미로 작품에 접근하면 좋을지 유도한다.

유 감독은 “전시를 하나의 ‘서비스’의 형태라고 봤을 때, 관람객들이 보다 많은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개별의 형태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는 나침판 같은 것이 있으면 어떨까 생각했고, 전시에 이야기를 입혀 세션을 구성해 선보이게 됐다”라며 구성의 의도를 밝혔다.

《나의 잠》은 하루 동안의 시간대를 기준으로 ▲한낮: 나의 잠, 너의 잠 ▲23:20: 반쯤 잠들기 ▲1:30: 작은 죽음 ▲3:40: 잠의 시공간 ▲새벽에 잠시 깨기 ▲7:00: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으로 구성됐다.

▲기획전 《나의 잠》 전시 전경 (사진=공진원 제공)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작가적 시각 담아

이번 기획전시에는 시각예술 및 다원예술을 작업하고 있는 국내 작가/팀 19팀인 김대홍, 김홍석, 로와정, 무진형제, 박가인, 스튜디오 하프-보틀, 심우현, 여다함, 오민수, 우정수, 워드 워크스, 유비호, 이성은, 이원우, 정민성, 최윤석, 최재은, 팽창콜로니, D 콜렉티브가 참여한다.

작가들은 ‘잠’이라는 주제에 대한 과학, 사회, 예술적 해석과 담론을 보여주는 영상, 미디어아트, 회화, 설치예술, 사운드, 텍스트 등 다양한 시각예술 작품을 선보인다.

다양한 형태를 가진 예술 작품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이 이번 전시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또한, 전시 참여 작가의 연령대는 20대 정민성 작가부터 70대 최재은 원로 작가까지 참여해 주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폭을 더욱 넓혀준다. 작품도 대부분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롭게 발표한 신작이 많다.

▲정민성 <잠의 형성(Form of sleep)>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정민성 작가는 ‘23:20: 반쯤 잠들기’ 섹션으로 구분된 <잠의 형성(Form of sleep)>을 선보인다. 정 작가의 작품은 3D 그래픽으로 작성된 애니메이션으로, 인간의 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무한히 작은 공이 생성되고, 공 위에 인공지능이 탐색한 ‘꿈’에 대한 비디오를 입혀낸다.

정 작가의 작품은 문화역서울284 중앙 홀에 전시되는데, 근대적이고 목자재로 건축된 공간 속에 작품이 이질적이면서도 융화되는 독특한 감각을 전한다. 꿈에 대한 모호함과 가상 구조적 형태의 해석이 역사의 공간과 어우러지며, 현 시대가 전할 수 있는 새로운 감각을 표출한다.

최재은 작가는 ‘7:00: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 섹션으로 구분돼 <새벽 그리고 문명(Dawn and Civilization)>을 선보인다. 최 작가는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197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가 소게츠 미술학교를 수료하고 현재까지 일본에서 거주하며 활동해오고 있다. <새벽 그리고 문명(Dawn and Civilization)>은 소금과 재로 만들어진 설치 작품으로 현장에서 재료를 모두 쌓아서 완성시켰다.

작가는 소금으로 흰 땅을 표현하고, 재로 회색의 땅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 경계 위에 돌을 딛고 있는 사슴 조각을 올려놓았다. 최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 최근 잇달아 세계에 닥친 재난과 전쟁을 겪고 작품을 완성했다. 작품 전시 공간에선 느리게 물방울이 떨어지는 사운드가 재생된다. 작가는 잠과 삶의 경계를 소금과 재의 땅으로 표현하며, 우리의 오늘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잠’의 행위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결국 ‘잠’을 통해 오늘은 우리에게 매일 주어진 것이며 동시에 영원히 도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박가인 작가가 작품<갈팡질팡하다>, <우사단로에서 먼우금로>에 대한 설명을 전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잠을 다루는 결이 다른 시각과 표현법을 동시에 느껴볼 수 있다는 점이 관람의 경험을 풍부하게 만든다. 유 감독은 다수의 작가, 다양한 시각이 전시되고 있음을 전하며 전시 기간이 긴만큼 자주 찾아서 자주 봐주길 바란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이외에 신경계 난치성 질환인 기면증을 알고 있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꿈과 현실의 경계를 기술적으로 표현한 이성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 가부장적 한국 사회에서 자신과 유사한 30대 여성들의 다양한 일화를 통한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박가인의 <갈팡질팡하다>, <우사단로에서 먼우금로> 작품을 공개한다. 박 작가는 전시장에서 원래는 통로였던 공간에 자신이 살고 있는 방 그대로를 옮겨 온 설치 작품을 선보이는데, 개인과 사회, 남성과 여성, 젊은 사람과 중년의 대비되는 갈등과 문제들을 아이러니하게 도출해낸다. ‘잠’에 대한 30대 여성의 시각을 담아내고 있다.

▲여다함
▲여다함 <내일부서지는 무덤 202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19개 작가/팀의 작품은 문화역서울284 전시공간을 빼곡하게 채워, 작가들의 해석과 행위나 일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과정은 나의 잠이 아닌 누군가의 잠을 경험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결국 관람객 자신이 행하고 있는 ‘잠’에 대한 고찰에 이르게 한다.

‘잠’을 주제로 한 만큼 전시장에는 관람이 끝난 후 관람객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휴식 공간과침대 포토월을 마련했다. 전시를 통해 ‘잠’과 휴식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평소에는 생각해볼 수 없었던 ‘평범한 일상 행위’에 대한 고찰을 해볼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