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벼락에도 멍들지 않는 허공과 같이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벼락에도 멍들지 않는 허공과 같이
  • 윤이현
  • 승인 2022.08.1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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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덧없이 자란 긴 손톱을 다듬는다. 참으로 많이 자랐다. 세월의 흐름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눈에 보이는 하얗고 단단한, 내 몸이 길러낸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자르고 다듬기에 여념이 없다. . 그리고 자연스럽게 작은 상자에 조심히 손톱을 담는다. 그것들을 한동안 버리지 못한다. 가끔은 여러 각도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때로는 만져보기도 한다. 촉감은 매번 확실한 깨달음을 준다. 얼마 전까진 분명 몸의 습기를 머금고 있던, 어쩌면 약간의 생명력도 가지고 있었을지 모를 손톱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굳어지고 바스러진다. 그제서야 그것들을 버릴 수 있다.

 

잘 가. 나로 존재했던 것들이여. 안녕.”

 

23년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들이 참 많다. 이 나이가 되면 보다 많은 걸 알고 있을 줄 알았지만, 실은 여전히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요즘 머리를 가득 메꾸는 몇 가지 상념들이 있다.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것이 그 첫 번째다. 나는 과거를 매번 탈피하듯 버리고 새로운 날을 산다. 과거를 딛고 더 발전한 오늘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무책임하게 모든 걸 팽개치고 도망치듯 말이다. 아무리 좋았던 기억도 큰 힘이 되지 못한다. 그 시절에도 나는 미숙했으니, 굳이 떠올리자면 부끄럽기만 하다.

엄청난 사건이 덮쳤던 것도 아니고, 그저 남들 다 겪는 대로 똑같이 몇 번의 실패를 맞이했을 뿐인데. 사람에게 상처받고 상처 줬을 뿐인데. 누구나 다 그러고 사는 건데, 혼자 아파하고 유난인 내가 가끔은 너무 싫어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려고 애를 쓴다. 학창 시절의 기록이나 책들, 제법 양이 많았는데도 남겨진 것이 별로 없다. 이별 후엔 그 시절의 연인들에게 받았던 편지들을 태우고, 한때는 커플링이었던 반지들은 전부 산이고 바다에 던져버렸다. 그 시기에 찍었던 사진들은 영영 찾을 수 없도록 우주에 쏘아 버렸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자꾸만 그 시절을 찾을 땐, 뺨을 치고 정신을 차리려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서 내겐 딛고 올라갈 과거가 없다. 과거란 오로지 기억에 의존해야만 간신히 도달할 수 있는 것이 되어버렸다. 추억하며 울고 웃을 무언가가 없기에 나는 오늘도 심장 한 곳에 큰 구멍이 뚫린 채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잠이 든다.

지난 일들을 지우지 않고 다 안고 갔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다. 온몸이 무겁지 않을까. 머리가 터질 듯하게 아프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지금보다 깊고 단단한 존재가 되어있진 않을까. 과오를 범하지 않는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들 어떻게 각자의 과거를 다뤄가며 삶을 헤쳐나가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나만 이런 것인지. 아니면 모두가 그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아픔을 지워가며 사는 건지 알고 싶다. 지금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두 번째 고민은 언제부턴가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정말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화가 났고, 한 번 끓어오른 분노는 곧바로 몸과 영혼을 잠식한다. 나조차 통제되지 않는 폭력성과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죽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 말을 백 번 했을 즈음엔 정말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라지고 만다. 누군가의 불행을 마음껏 빌며 스스로의 잔혹함에 기겁하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나는 나였기에 도망칠 수 없다. 그런 날엔 명치에서부터 목구멍까지 불이 난 것처럼 아팠다. 대체 무엇에 이렇게 화가 났는지, 어디서부터 고여온 스트레스인지 모르겠다. 이 순간에도 그저 시간을 죽이며 침대에 누워 잠이 들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잠은 잘 오지 않으니, 마음 털어놓을 친구 하나 붙잡고 내내 전화를 하다가 겨우 잠이 든다. 그마저도 끙끙 앓다가 깨기를 습관처럼 반복한다. 그렇게 아침이 밝고, 손톱은 잘만 자라 있다.

한 달에 한 번, 손톱을 다듬으며 나는 지난 30일의 기억을 몸에서 잘라낸다. 그리고 자신의 인간성을 의심하며 그것들이 어떻게 완전히 죽어가는지를 지켜본다. 이 변태적인 기행을 반복하며 죽어가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어쩌면 내가 불태웠던 편지와 기록들이 연기가 되어 비와 만나 강에 흐르고 때로는 번개가 되어 이 땅에 떨어져 내릴 때에도. 나는 몸 여기저기 자라난 것들을 자르고 죽이고 버리고 태운다.

 

마음은 언제나 아프고, 사랑은 부질없으며 삶은 고통스럽다.’

 

참 힘든 하루였다. 오늘처럼 마음이 완전 엉망이 된 날엔 글을 쓴다.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이후엔 망가진 몸을 추슬러 이곳저곳을 깨끗이 닦고 침대에 눕는다. 그리고 늦게 귀가하고 있을 부모님을 기다리며 미움과 사랑이 공존하는 세상에 대해 생각한다. 꿈틀거리며 조금씩 자라고 있는 하얀 손톱의 무해함을 지켜본다. 버려진 죽은 기억들과 과거가 지금쯤 떠돌고 있을 우주 저편을 상상한다. 이윽고 벨이 울리고 엄마와 아빠가 들어온다. 그럼 나는 또 고개를 침대에 처박고 잠에 겨운 척 밖을 나가보지 않는다. 알 수 없는 것들을 감히 헤아려보느라 오늘도 그들의 세상을 외면하고 고독한 잠을 청한다. 나는 지금 과연 어느 허공을 돌고 있는 것일까.

 

벼락에도 멍들지 않는 허공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