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강치傳, 포항에서 시작된 글로컬콘텐츠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강치傳, 포항에서 시작된 글로컬콘텐츠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2.08.16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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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국악가족뮤지컬 ‘강치전’을 보았다. (8. 5. 광양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2019년 포항문화재단에서 제작한 이후, 우수공연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전국의 문예회관을 돌면서 호평을 이어가고 있다. 강치전은 독도에 살던 강치 ‘동해’가 주인공이다. 독도엔 강치는 없다. 그 많던 강치는 다 어디로 갔을까? 반성적인 시각에 출발하면서, 평화와 공존을 얘기하는 작품이 강치전이다.

솔직히, 난 ‘국악 + 가족 + 뮤지컬’을 좋아하지 않는다.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뮤지컬은 인기가 있고 대중적이다. 국악은 선뜻 끌리진 않지만, 뭔가 한국인으로서 알아야 할 것 같은 영역이다. 대부분의 국악뮤지컬은 국악의 ‘의미’와 뮤지컬의 ‘재미’를 적당히 버무려서 만들었으나 완성도에서는 늘 안타까웠다.

강치전은 달랐다. 강치전을 보면서, 일본의 전설 모모타로(桃太郎)가 생각났다. 옛날 노부부가 살고 있었다. 할머니가 냇가에서 빨래하다가 큰 복숭아가 떠내려오는 걸 발견한다. 안에서 남자아이가 나왔다. 그 아이를 복숭아소년, 곧 모모(복숭아) 타로(일본의 장남이름)라 했다.

모모타로는 일본 전설이지만, 그 안에서 일본인의 영토확장심리를 읽게 된다. 성장한 모모타로는 귀신섬(오니가시마)에서 귀신(오니)이 사람을 괴롭힌다는 얘길 듣는다. 그 섬에는 과연 귀신이 살았을까? 그들이 먼저 인간을 공격했을까? 모모타로는 노부모가 만들어 준 수수팥떡(기비당고)을 가지고 귀신섬으로 떠난다. 싸움을 할 때 자신 혼자만으로는 곤란한데, 모모타로는 수수팥떡을 주면서 꿩, 개, 원숭이를 부하로 거느리게 된다. 그들은 귀신섬에서 싸움에 이겼고, 보물을 챙겨서 금의환향한다.

이 얘기는 그냥 일본의 한 전설일 순 없다. 자신이 사는 터전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구실을 내세워 다른 곳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싶은 일본인의 근원적 심리가 있다. 모모타로이야기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바다 독수리 모모타로(桃太郎の海鷲)>(1942)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정당화했고, 침략과 전쟁이 밑바탕에 깔려있다.

모모타로와 강치전은 정반대의 얘기다. 강치전은 포항에서 지역문화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지식인에 의해서 발의되었다. 제작의 초기 단계에서 이원만이 제작감독을 맡아서 주춧돌을 잘 놓았고, 포항시립극단의 배우이기도 한 윤도경이 지금과 같은 대본을 완성했다. 강치전이 돋보이는 이유는, 모든 대립적인 것들이 궁극적으로 공존을 지향하고 있는 점이다. 타인의 공간을 넘보지 않으며 자신의 공간을 아름답게 지키려는 심성이 자연스레 전달되는 것이 큰 미덕이자 매력이다. “바다에는 벽(경계)이 없다!” 강치전을 보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이다.

강치전을 보면서, 또 한 작품이 연결되었다. 허리웃 뮤지컬영화 ‘오즈의 마법사’(1939)와 강치전은 모두 어린 주인공의 여행을 통한 성장기이다. ‘오즈의 마법사’에 도로시(쥬디 갈란드)가 있다면, ‘강치전’에 동해(이은서)가 있다면 좀 과한 찬사일까? 강치전의 동해(강치)는 캐릭터가 확실했으며, 이를 연기하는 고교생배우 이은서(고 1학생)는 빛났다.

도로시는 여행 중 허수아비, 양철인간, 겁쟁이사자를 만난다. 동해는 미키, 신이, 멸치스웨그를 만난다. 지금의 어린이들이 ‘오즈의 마법사’의 세 친구를 좋아할진 모르겠다. 반면 ‘강치전’의 동해의 세 친구는 매우 좋아했다. 어린 관객의 반응이 매우 뜨겁다. 똑똑한 불만쟁이 ‘미키’, 귀여운 겁쟁이 ‘신이’, 흥부자 수다쟁이 ‘멸치스위그’, 어린이관객에게 확실한 캐릭터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이 작품의 미덕은 또 다른 캐릭터에서도 발견된다. 연륜을 통해서 지혜를 터득한 ‘할미 바다거북’의 존재감도 우선 그러하다. 공존을 키워드로 내세우는 작품에서 악(惡)을 ‘검은 그림자’로 설정하고 실체를 확실하게 드러나지 않는 점도 괜찮은 발상이다. 무엇보다도 ‘바다’를 의인화한 것도 의미가 전달된다. ‘국악가족뮤지컬’을 표방한 작품에서, 바다를 통해서 ‘국악’의 존재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음악은 어떠했을까? 좋게 말한다면 다양했고, 달리 말한다면 짜깁기와 같은 산만함이 아쉽다. 국악기를 사용했으나, ‘국악적’인 작품은 아니었다. 오히려 90년대 가요 감성을 읽을 수 있었다. 국악 ‘가족’ 뮤지컬이라고 내 세운 작품에서 부모세대의 감성을 존중하면서, 그들도 객석에 즐기게 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현명한 전략이었을까? ‘국악’을 기반으로 한 가족뮤지컬을 지향하는 작품이라면, 지금의 단계보다는 좀 더 ‘국악적’으로 손을 보면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강치(동해)와 함께 기억할 수 있는 뮤지컬 넘버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즈의 마법사’가 Somewhere over the rainbow(무지개 너머 어딘가에)를 통해서, 지금까지 생명력을 계속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강치전에서 동해가 부르는 서정성이 가득한 노래를 통해서, ‘평화와 공존’ ‘사과와 다짐’을 제대로 느꼈으면 참 좋겠다.

대한민국의 여러 지역에 문화재단이 참 많다. 그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지역콘텐츠 또한 참 많다. 그런 작품은 때론 그 지역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타 지역엔 입성도 못한 작품이 꽤 많았다.

‘강치전’은 매우 특이한 성공사례이다. 지역문화재단이 계발해 낸 최초의 ‘글로컬(glocal) 콘텐츠’가 아닐까? 강치전은 글로벌과 로컬의 두 측면에서 볼 때, 모두 만족할 요소가 있다. 첫째, 로컬에서 로컬의 문제를 바르게 인식했다는 점이 그렇고, 둘째 로컬에서 제작해서 글로벌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