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뷰]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가족과 함께 할 더 나은 날을 기다렸던 화가
[현장 리뷰] 《MMCA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가족과 함께 할 더 나은 날을 기다렸던 화가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8.17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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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서울관, 내년 4월 23일까지
이건희 컬렉션 80여점, 국현 소장품 90 여점
이중섭 작품 1940, 50년대로 나눠 소개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우리나라 국민에게 익숙한 화가이자, 평탄치는 않았던 그의 삶 이야기 때문에 더욱 많은 대중에게 사랑 받은 화가 이중섭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다. 2021년 고(故) 이건희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작품 1,488점 중 이중섭의 작품 8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중섭 작품 중 10점으로 전시를 구성해 총 9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32.8×20.3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사진=MMCA 제공)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을 MMCA 서울관에서 지난 12일 개막해 내년 4월 23일까지 개최한다. 지난 10일에는 전시 개막전 언론공개회가 있었다.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관심과 국민화가 이중섭에 대한 관심이 겹쳐져 뜨거운 취재 열기가 느껴지는 현장이었다.

지난해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이중섭의 작품은 국내외 작가를 통틀어 유영국, 파블로 피카소에 이어 가장 많고, 회화 및 드로잉의 비중에 있어서는 가장 높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우현정 학예사는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에서 이중섭의 작품은 세 번째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작품 장르별로 구분하면 조금 다른 양상이 있는데 유영국은 판화 작품이 많고, 피카소는 도자기 작품이 많다. 이중섭 작품은 회화 및 드로잉 작품이 다수고, 특히 이중섭의 은지화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라고 상세한 설명을 전했다.

▲지난 8월 10일 열린 언론 공개회, 우현정 학예사가 전시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건희 컬렉션 기증과 국현 연구 성과 어우러진 전시

국현은 기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 소장품 <부부>(1953)와 <투계>(1953) 등 11점에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통한 104점을 더해 총 115점의 이중섭 소장품을 보유하게 됐다. 특히, 1940년대 제작된 엽서화 40점이 대거 소장됐고, 3점에 머물던 은지화가 총 30점으로 늘어났다. 전시에서 엽서화는 36점, 은지화는 27점을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이건희 컬렉션 기증으로 한층 더 풍부한 자료를 얻게 된 국현의 그간 학술적 성과를 소장품을 통해 공개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우 학예사는 “지난 2016년 MMCA 덕수궁관에서 개최했던 《이중섭, 백년의 신화》 전시 당시 연구가 이번 기획에 많은 도움이 됐다”라며 “이건희 컬렉션 기증을 통해 다수의 이중섭 작품을 보유하게 된 국현의 수집과 연구 성과가 집약돼 있다. 이번 전시가 이중섭 연구의 또 다른 시작이 되길 바라며, 여러 후속 연구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전시 출품작에는 <닭과 병아리>(1950년대 전반)와 <물놀이 하는 아이들>(1950년대 전반)과 같이 이건희컬렉션을 통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 2점 및 1980년대 호암미술관 전시 이후 오랜만에 공개되는 <춤추는 가족>(1950년대 전반)과 <손과 새들>(1950년대 전반) 2점이 있다.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1950년대, 종이에 유채, 25.8×19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MMCA 제공)

특히 ‘소’, ‘가족’, ‘아이들’과 같은 도상을 즐겨 그렸던 이중섭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형태를 가진 작품을 여러 점 그리기도 했는데, 이번 기증을 통해 국현이 가지고 있던 기 소장품과 맥을 같이 하는 동명의 작품이 공개된다.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했던 서귀포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1950년대, 국현 소장),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1950년대 전반, 국현 이건희 컬렉션)다. 이 두 작품은 전시장에 나란히 배치 돼 있어, 두 작품 사이 이중섭의 변화와 시간들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은 현재 3점 더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소장처가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다. 이번 이건희 컬렉션으로 기증된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는 1954년 이중섭이 일본에 있던 큰 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됐던 것이다. 공개된 두 작품 이외에 현존하는 세 작품 중 하나는 둘째 아들 태성에게 보냈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닭과 병아리〉 ,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유채, 30.5×51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사진=MMCA 제공)

이중섭 작품, 연대기적 구성 전시

이중섭은 작품에 서명을 남겼을 뿐, 특별히 창작연도를 기입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만으로는 제작연도를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중섭은 대부분의 작품을 일본에 있는 두 아들과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이름 남덕)에게 편지로 붙여, 우편 소인을 통해서 창작 시기를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이중섭은 표지화, 삽화 같은 출판미술도 자주 그렸는데 출판물의 발행일로 창작연도를 유추할 수 있다.

국현은 오랜 시간 쌓아온 이중섭 소장품 연구를 통해, 이번 전시를 연대기적 구성으로 기획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시대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 이중섭(1916년~1956년)의 작품세계를 1940년대와 1950년대로 나누어 소개한다. 1940년대는 이중섭이 일본 유학 시기부터 원산에 머무를 당시 작업한 연필화와 엽서화를, 1950년대는 제주도, 통영, 서울, 대구에서 그린 전성기의 작품 및 은지화, 편지화 등을 선보인다. 전시는 재료와 연대를 조합해 예술가 이중섭과 인간 이중섭을 고루 반영하며, 그의 삶과 예술세계 면면을 다채롭게 보여주는 데 힘을 실었다.

▲〈상상의 동물과 사람들〉, 1940, 종이에 먹지그림, 채색, 9×14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사진=MMCA 제공)

1940년대 주요 작품으로는 문화학원에서 만나 훗날 부부가 되는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1940년부터 1943년까지 보낸 엽서화를 비롯해 여인상과 소년상을 그린 연필화 등이 있다. 이 당시 작품의 특징으로는 밑그림의 흔적이 작품 안에 남아있는 등 매체 실험의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우 학예사는 “이중섭은 비슷한 도상을 여러 번 그리면서 연습을 하고 선을 그리는 방법도 계속 발전시켜나갔다. 1940년대 연필화 등에서는 말을 그린 선이 뚝뚝 끊겨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후 채색이 된 엽서화에선 조금 더 힘 있는 선을 그려내거나 면을 그리고 윤곽선을 입히는 몰골법과 비슷한 기법을 사용하기도 한다”라고 작품에 대해서 설명했다.

우 학예사는 특히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국적 정서를 갖고 있는 이중섭’이라는 특징에 대해 다시 한 번 느껴 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중섭은 소, 말, 닭 등 우리네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도상들로 화면을 구성했기 때문에 도상으로부터 한국적 정서가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 준비 과정 중 연필화와 엽서화를 전체적으로 살피면서 이중섭이 고려벽화를 토대로 한 창작법을 연구했다고 느낄 수 있었다”라며 “이중섭은 월남전에 북한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고, 성장과정에서 고려벽화를 쉽게 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엽서화를 보면 오리와 연꽃 등 고려상감청자를 연상할 수 있는 도상을 사용했고, 몰골법과 구륵법이 드러나는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라고 이중섭 회화에서 드러나는 동‧서양의 조화이자 한국의 정서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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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에게 보낸 편지〉, 1954, 종이에 잉크, 색연필, 26.5×2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MMCA 제공)

1950년대 주요 작품으로 새와 닭, 소, 아이들, 가족을 그린 회화 작품과 더불어 출판미술, 은지화, 편지화, 말년에 그린 풍경화 등이 소개 된다. 이중섭은 1950년 부산으로 월남한 뒤 1956년 사망하기 전까지 제주도, 통영, 대구, 서울 등지를 옮겨 다니며 작업을 지속했다.

특히 공예가 유강열의 초청을 받아 옮겨간 통영에서 1953년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머물며 소 연작 등 대표작들을 제작했고,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 열린 《이중섭 작품전》(1955)을 앞두고는 매일 작품을 그려낼 만큼 열성적인 시간을 보냈다.

동시에 이 시기에는 일본에 있는 가족을 향한 이중섭의 뜨거운 사랑이 녹아있는 작품들이 많다. 이중섭의 왕성했던 창작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편지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전시 후반부에는 이중섭이 그린 편지화를 모아놓은 섹션이 있다. <부인에게 보낸 편지>(1954) 작품에는 가족들을 그리고 있는 이중섭과 가족과 만나 껴안고 있는 이중섭의 모습이 담겨 있다. 작품 아래에는 일본어로 적힌 편지글을 해석해 공개한다. “내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라고 맺어지는 편지에선 가족을 향한 이중섭의 남다른 사랑이 느껴진다. 또한,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화에는 “아주 잘 그렸어요! 또 잘 그려서 보내주세요. 아빠 중섭”이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전시에 공개된 아카이빙 영상 중 이중섭과 소설가 김이석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에 공개된 아카이빙 영상 중 이중섭과 소설가 김이석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실제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지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1951년 제주에 정착해 1,2년을 함께 지내고, 1952년 6월 아내와 두 아들이 일본의 제 3차 송환선을 타고 건너간 이후에는 만날 수 없었다. 1953년 7월 이중섭이 지인을 통해 선원증을 받아 일본에 잠시 다녀온 이후, 1956년 무연고자로 사망할 때까지 이중섭은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중섭은 항상 그림을 그릴 때면 작품을 열심히 그려서 가족들을 만나러 갈 것이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 사람이었다.

우 학예사는 “1953년에 이중섭이 마사코 여사를 만나 70여 점의 작은 에스키스를 건네며, 이 것들은 내가 나중에 대형 작품으로 완성하기 위해 그린 것들이라며 잘 보관해달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사실 이중섭은 거처를 계속 옮기며,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소품이 많은 작가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자신이 대작을 그릴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살았던 작가라고 본다”라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좀 더 나은 미래를 고민했을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가족을 그리는 화가〉, 1950년대 전반, 은지에 새김, 유채, 15.2×8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사진=MMCA 제공)

이중섭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는 시도

이중섭은 ‘국민 화가’로 칭해질 만큼, 우리나라 국민에게 익숙한 작가다. 그의 작품 또한 대중에게 익숙해 이중섭의 작품을 단순히 선보이는 것만으로 색다른 시선과 연구의 성과를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전시는 좀 더 다양해진 미술관의 이중섭 소장 작품으로 진행한 연구를 담백하게 선보이는 것으로 전시의 결을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

연대기적 구성을 통해, 이중섭이 펼쳐온 매체 실험과 도상의 연속성, 공간에 대한 실험들이 녹아있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은지화 중 현실과 ‘그림’이라는 환상 속의 공간을 한 화면에 표현한 <가족을 그리는 화가>를 공개한다.

이중섭의 그림에서 곱슬거리는 앞머리를 가지고 있는 인물은 마사코 여사이고, 길쭉한 얼굴에 턱수염이 있는 남자는 이중섭 자신을 표현하는 도상이다. <가족을 그리는 화가>에는 턱수염이 있는 남자가 두 사람 등장한다. 한명은 마사코와 가족을 껴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고, 한 명은 남자 아이 허벅지에 붓을 가져다 대고 있다. 즉, 이 그림은 이중섭이 붓을 들고 행복한 가족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때를 표현한 것으로 다른 차원의 세계를 평면 작업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시는 이렇게 작품 안에 드러나고 있는 이중섭의 실험들을 차례로 선보이고, 말년에 건강이 좋지 않았을 당시의 그림인 <정릉 풍경> 등을 선보이며, 이중섭 전 생애의 변화를 세밀하게 더듬는다.

▲전시장에 설치된 대형 미디어 월, 은지화를 세밀하게 선보인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장에 설치된 대형 미디어 월, 은지화를 세밀하게 선보인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에는 대형 미디어 월을 통해 이중섭의 소품 은지화를 확대해 선보인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은지화의 새겨진 선들을 좀 더 세밀하게 관람할 수 있고, 은지화에 드러나는 음각을 입체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

또한, 이 미디어 월은 대형 작품을 그리고자 했던 이중섭의 이뤄지지 못한 소망을 후세가 이룬다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우 학예사는 “1953년 마사코여사에게 에스키스를 건넨 이중섭을 떠올리며, 우리 후세가 그의 꿈을 이뤄주고자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은 빈칸으로 남아있던 우리네 미술사의 공백을 메꾸는 역할을 하고, 미술 연구에 많은 발전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한, 한 사람의 수장고에 있던 작품이 국민에게 공개되면서 국민은 ‘국민 화가’라고 여겼던 이중섭에 대해서도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게 됐다. 전시를 기획한 우 학예사는 이번 전시를 이중섭이라는 한 사람의 생애 속 시간 여행이라고 표현한다. 그의 그림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시대를 담아 지금 이 순간으로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