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스케치] 불화 명맥을 이어온 이들의 기록, 일섭문도전 《불모(佛母)들의 향연》 개막
[현장 스케치] 불화 명맥을 이어온 이들의 기록, 일섭문도전 《불모(佛母)들의 향연》 개막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8.1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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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열린 오프닝 행사, 많은 인파 모여
3년 만에 열린 불교미술 전시, 참여 작가 남다른 감회 전해
허길량 이사장 “어려운 시기 이기고, 훌륭한 작품 선뵐 수 있어 감사해”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우리나라 불교미술의 명맥을 탄탄하게 보존하며, 불화의 역사를 지키고 현재를 유지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불교미술 일섭문도회 정기 전시회가 시작됐다. 지난 17일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개막식을 갖고, 오는 23일까지 전시를 개최한다. 인사동 전시 이후에는 장소를 옮겨 송광사 성보박물관에서 9월 1일부터 10월 10일까지 다시 한 번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다.

▲ 일섭스님 <칠곡 대원사 석가모니 후불탱화> (사진=일섭문도회 제공)

이번에 열리는 일섭문도전 《불모(佛母)들의 향연》은 ㈔불교미술 일섭문도회의 제4회 전시회다. 일섭문도회는 2012년부터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개최해오다가, 팬데믹 확산으로 2018년 제 3회 정기전을 선보이고, 전시회를 열지 못했다. 올해부터 사회적으로 ‘위드코로나’ 기조가 확산되면서 제 4회 전시를 준비해 개최하게 됐다. 또한, 올해는 정기전을 열어온 지 10주년이 된 해로 이를 기념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불모(佛母)’란 ‘부처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불상을 조각하는 조각가를 뜻하며 탱화, 단청, 조각 등 불교 미술을 행하는 이들을 아우른다. 이번에 정기 전시회를 선보이는 ㈔불교미술 일섭문도회(이사장 허길량)는 일섭스님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단체다.

우리나라 불교미술은 여러 계파가 존재했지만, 조선시대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그 명맥이 많이 끊겼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섭대불모의 제자들은 일섭스님의 뒤를 이어 마곡사 계룡산파의 맥을 이어 우리나라 불교미술을 보존하고 전승하고 있다. 일섭문도회에는 300여 명의 현역 작가 회원이 함께하고 있으며, 이중 23명의 회원은 전‧현직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17일에 열린 전시 개막식에는 일섭문도회 회원 및 참여 작가들의 전시를 축하하는 많은 인파가 모였다. 중장년층부터 청년, 청소년들도 함께 자리해 불교미술을 향한 다양한 세대의 관심이 느껴지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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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식에서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는 문화계 주요 인사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문화계 주요 인사들도 함께 자리를 빛내며, 그간의 안부를 묻고 덕담을 나눴다. 개막식에는 허길량 일섭문도회 이사장, 김종규 한국문화유산신탁 이사장,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 국가무형문화재 제 120호 석장 이재순 대한석상 대표, 이은영 서울문화투데이 발행인 등이 참석했다. 개막식은 일섭문도회 총무를 맡고 있는 홍석화 에이치컬쳐테크놀로지 대표의 사회로 진행됐다.

주요 내빈들의 테이프 커팅식을 시작으로 허길량 이사장의 인사말과 문화계 인사들의 축사, 이상현 대금연주자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허 이사장은 “날씨가 더운 와중에서 자리에 참석하고, 또 팬데믹으로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함께 전시에 힘을 쏟아준 일섭문도회 회원과 문화계 인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싶다”라며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그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좋은 작품들이 또 창작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다시 한 번 좋은 작품으로 전시에 참가해준 문도회 회원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싶다”라고 진심의 뜻을 표했다.

김종규 이사장은 전시장을 가득 메운 불교 미술 작품과 허 이사장의 작품을 보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후배, 북촌 김익홍 선생이 생각났다는 이야기로 축사를 시작했다. 김 이사장은 “전시장 입구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에서 쉬이 눈을 뗄 수 없었다”라며 “우리나라 불교미술은 1500년 전통을 갖고 있는 예술로 우리나라 문화의 자존심이자 근간이다. 작품을 보면서 고려불화, 단군화상이 떠올랐다. 불모(佛母)들의 역사 속에서 우리네 문화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라며 불화가 가진 우리네 뿌리와도 같은 역할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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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운 허길량 <관세음보상> 69X89X221cm 느티나무(과목)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통 회화를 지켜온 자부심과 어려움 나눈 자리

개막식에서는 특별한 행사도 진행됐다. 이번 전시 기획을 위해 일섭문도회 재무 이사로 일한 김현숙 이사의 공로를 치하하는 감사패 증정식이 열렸다. 허 이사장은 이번 전시를 준비함에 있어서 겪었던 어려움과 그 과정 속에서 내 일처럼 함께 뛰어준 김 재무이사에게 뜨거운 감사인사를 전했다.

허 이사장은 “전시를 준비할 때 회원들에게 직접 발로 뛰면서 연락하고, 후원사를 모집할 Ei 정말 자신의 일처럼 임해준 김 재무이사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라며 “김 재무이사는 원래 우리 문도회 회원인데, 이번에 전시를 위해 업무를 맡아 임해줬고, 전시 기획에 있어 탄탄한 재정을 확보해서 이번 전시를 풍성하게 만들어줬다”라며 감격의 말을 전했다.

이어 허 이사장은 “역대 정기 전시회에서 방송에 광고를 내보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전시회는 그것이 가능했다. 아시는 한 스님께선 방송에 나오는 광고를 보고 제게 먼저 연락을 해주기도 했는데 그 때 정말 기분이 좋았다”라는 생생한 일화도 전했다.

▲인사말을 전하는 허길량 일섭문도회 이사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감사패 증정식이 진행되는 동안 허 이사장은 전시 준비과정의 어려움과 불교미술을 이어온 시간들이 떠오른 듯, 말을 쉽게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감사패를 받는 김 재무이사 역시 눈물을 흘려, 장내에 많은 참석자들이 그들의 노고에 공감하며 응원을 전했다. 국민문화유산신탁 김 이사장은 현장에서 김 재무이사의 노고를 치하하며 작은 지원금을 전달했다.

이어진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은 허 이사장의 눈물에 공감을 전하고 전통예술이 지니고 있는 힘듦과 어려움을 언급하며, 그 가운데서도 불교미술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일섭문도회에 존경을 표했다. 이 회장은 “불교 신자가 아니기에 불교미술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전시 도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까지 뚜렷한 계보를 가지고 전통문화를 이어오고 있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졌다”라며 “팬데믹 뿐만 아니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전통 예술인들이 여러 어려움을 겪는 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품을 이어온 불모들의 전시를 보니, 작품에 담긴 세상을 향한 강한 의지와 요구들을 읽어볼 수 있었다”라며 전통예술을 위한 국가와 정부의 관심이 더욱 강화되길 바란다는 뜻을 덧붙였다.

▲정병국 <관음> 100X70cm 한지, 아교, 안료, 금니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불교미술 전통과 현대, 미래 아울러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 대중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던 일섭스님의 작품 <칠곡 대원사 석가모니 후불탱화>가 공개된다. 이 탱화는 현재 칠곡의 대원사로 옮기기 전 대구 남산동 대원사에 있던 후불탱화다. 석가모니와 문수, 보현, 관음, 지장보살 등 4보살을 모시고 사천왕과 제석천왕, 대범천왕을 외호중으로 해 10대 제자를 위쪽으로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일섭문도회의 스승인 금용 일섭대불모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금호 약효스님, 보응 문성스님의 전통을 계승해 근대 불교미술을 중흥시킨 불모다. 불화, 개금, 단청, 조각 등 다양한 방면으로 두루 능통해 금어(金魚)라는 명칭을 받았다.

▲소전 김경애 <범내려온다> 145X75cm 광목, 안료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에는 일섭문도회 회원의 10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불화 뿐 만 아니라 불교 조각도 함께 아우르고 있어 불교미술의 다양한 결을 느껴볼 수 있는 자리다. 전시는 총 2개의 층에서 진행되는데, 1층 전시 공간에는 전통적 기법으로 완성된 작품이 전시 돼 있다. 2층에는 상대적으로 현대적인 기법과 시도들이 녹아있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2층 작품 중에는 추상적인 형태의 불교 미술 작품이나. 창문에 걸 수 있는 예술 작품을 활용한 인테리어 작품등 도 전시된다. 전통적인 도상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 불교미술의 새로운 면을 느껴볼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 전통의 기법을 추구하는 불교 미술과 현대의 기법이 가미된 작품을 보게 되는 것은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불기2986년(서기1959년) 제작된 일섭스님의 작품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도 함께 자리하고 있어, 일섭문도회가 꾸준하게 이어온 불교 미술의 역사와 시간성을 짐작하게 한다.

▲전시장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
▲전시장을 찾은 많은 관람객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전시장에는 참여 작가의 제자 같은 청년들도 많이 찾아와, 전통예술을 향한 다음세대의 관심도 느껴볼 수 있는 자리가 조성됐다. 또한, 불교를 공부하러 온 외국인도 지인과 함께 참석하며 현재 불교미술이 가지고 있는 입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이사장은 불교미술이란, 마음 자세와 신심이 바탕이 됐을 때 한걸음 더 증진할 수 있다고 말한바 있다. 종교를 떠나, 사회 이곳저곳이 어려운 시기에 이번 전시는 불모들이 전하는 청명한 에너지가 전달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