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이건용 개인전 《Reborn(재탄생)》, 신체드로잉으로 표현한 지금 시대의 생태
[현장리뷰] 이건용 개인전 《Reborn(재탄생)》, 신체드로잉으로 표현한 지금 시대의 생태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8.19 18: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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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안갤러리, 8.25~10.29
환경위기 암시한 신작 공개
프리즈‧키아프, 파리, 뉴욕 전시 앞둔 국내 개인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한국 행위예술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최근 미술 시장에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이건용 작가 국내 개인전이 열린다. 리안갤러리 서울에서 오는 8월 25일부터 10월 29일까지 개최된다. 이건용은 이번 전시에서 기존의 신체드로잉에 변주를 가한 다양한 스케일의 회화 및 설치 작품 20여 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9월 키아프‧프리즈 아트페어, 313프로젝트가 주관하는 10월 프랑스 파리 전시, 내년 7월 뉴욕 페이스 갤러리 전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 등 굵직한 전시들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개최된다. 이건용에게 미술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만큼 이번 개인전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작품 제작방법을 재현하는 이건용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환경‧생태 문제 주목한 이미지 위 ‘Bodyscape’

이건용은 이번 전시에서 캔버스에 사진을 전사해 그 위에 신체드로잉을 펼치는 작업을 다시 한 번 소환한다. 작가는 2016년 즈음 지하철의 여성, 대구지하철 참사 장소의 사진 등을 캔버스에 전사해 그 위에 신체드로잉(Bodyscape) 방법론을 펼친 바 있다. 예술가의 신체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장소가 어떻게 관계 맺고 소통할 수 있는 지를 고민한 작업이었다.

이번 신작들도 과거에 했던 전사 작업과 비슷한 맥락에서 이어진다. 바탕이 된 사진들을 쓰레기 더미, 바다, 북극곰 가족의 모습 등이다. 친자연적인 소재, 나무, 자연 등이 중심이 된 사진들이다. 이건용은 이번 신작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 이후 우리 모두가 주목해야 하는 생태환경, 자연, 기후위기 등의 문제를 자신의 세계로 가져왔다.

▲ 이건용 개인전 《Reborn(재탄생)》 전시작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건용의 <Bodyscape> 연작은 1976년 제 5회 ST전에서 발표한 ‘그리기의 방법(The Method Drawing)’을 통해 제작된다. 이 방법이 발표됐을 당시 한국 사회는 독재정권 아래에 있었고, 당시 이건용의 신체드로잉은 독재 권력을 은유하고 이에 대항하는 예술가의 의미를 내포했다. 외부적인 힘으로 제약되는 신체의 활동과 이것에서 해방되는 과정 속 지각과 존재의 확인이 담겨있다. <Bodyscape> 연작은 1976년 이후로 끊임없이 변화를 거듭했다. 작품의 규모가 커지고, 사용되는 색깔이 다채로워지는 방향이었다. 1976년 제작된 ‘그리기의 방법’은 항상 시대와 함께 생동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Bodyscape> 연작은 또 한 번의 변화를 거듭해, 시대의 물음에 응답한다. 이건용의 <Bodyscape> 신작은 팬데믹 이후 빠르게 닥쳐오고 있는 기후‧생태 위기, 자연문제 등에 대한 작가의 고민을 담고 있다. 빠르게 녹고 있는 빙하 위를 아슬아슬하게 겪고 있는 북극곰 가족 위에 그려진 작가의 드로잉은, 지금 시대의 ‘권력’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고민하게 한다.

1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건용은 “원래 이 세계는 조화로운 세계였으나 기술의 발전으로 다가온 기계화, 디지털화, 도시화, 인간 통제 등으로 세계의 부조화가 시작됐다. 근대화로 시작된 이 흐름 속에서 인간은 과거보다 더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고, 포화상태의 지구를 만들어왔다”라며 “코로나 팬데믹은 이러한 인간의 태도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었다. 기후변화, 전염병으로 인한 빈곤 문제 등, 이렇게 가다보면 최후의 지구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나 또한 각성을 하게 되고, 반성을 많이 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 팬데믹, 가속화된 기후 위기 등을 맞이하면서 지구상 모든 존재들은 극한의 생태 환경을 마주하게 됐다. 이건용은 이 세계의 권력과 힘의 이동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이 시대에 맞는 신체드로잉을 펼치고 있다.

▲ 이건용 개인전 《Reborn(재탄생)》 전시작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북극곰들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어미와 자식 북극곰 3마리가 있는 사진, 수컷과 암컷 북극곰 사진 위에 신체드로잉을 해 제작한 작품을 보면서 이건용 작가가 한 말이다. 이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리안갤러리 지하층에 실제 지하층에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안혜령 리안 갤러리 대표는 “작가님이 북극곰 위의 작업을 하면서 ‘엄마 북극곰이 아이들에게, 얘들아 빨리 가지 말고 하트 보고 가야지라고 말을 하고 있다’라는 얘기를 했다. 작품을 하시는 과정 또한 하나의 의미가 느껴졌다”라는 얘기를 전했다.

실사 사진 위에 신체드로잉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게 한다. 긴 붓으로 물감을 찍어내는 방법으로 바다 위에 신체드로잉을 한 작품을 보고, 한 취재진은 새똥이 묻은 것 같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고, 이에 이건용 작가는 새가 날아가는 것 같지 않느냐는 답을 전하기도 했다.

지하층에 전시된 온몸을 축으로 거대한 반원을 그리는 기법으로 눈 내리는 바닷가에 드로잉을 펼친 작업도 인상적이다. 이 작품에는 금색이 사용됐는데, 취재진이 금색이 사용된 것은 이례적인 것 같다며 질문을 전하자, 이 작가는 “물감 구매를 도와주는 이가 있는데, 이번에 금색 물감도 함께 가져다줬다. 받았기에 한 번 사용해봤는데, 그 빛깔이 또 색다른 아름다움이 있는 것 같았다”라고 답했다.

▲ 이건용 개인전 《Reborn(재탄생)》 전시작 (사진=서울문화투데이) 

Reborn(재탄생), 또 한 번의 시작

이건용 작가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뜨겁다. 특히 해외 미술관과 갤러리에서도 많은 관심을 전하고 있다. 리안갤러리 안 대표는 “해외에선 한국의 회화를 생각했을 때, 대게 단색화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다. 이건용 작가의 작품은 그런 경향과는 조금 다르게 역동성과 에너지가 담겨있다. 해외에서 그 점에 주목하고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19일 기자간담회에선 ‘Reborn(재탄생)’이라는 전시 제목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작가는 바깥에서 파생된 선을 회화 안으로 넣는 내 신체드로잉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며, 현 시대의 의미와 문제 등을 담고자 했다고 답했다.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작품 제작방법을 재현하는 이건용 작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건용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이제 8살일 뿐이고, 아직 실현되지 못한 아이디어가 많다’라고 얘기하며, 최근 본지 <서울문화투데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도 이번 리안갤러리 전시를 시작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풀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건용은 작품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어떤 드로잉 방법으로 창작했는지 재현해보였고, 벽에 걸린 작품을 내려서 보여주고 만지는 등 역동적으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진중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은은하게 유머감 있는 태도로 자신의 생각을 자신감 있게 전해보였다. 국내 행위예술 1세대 작가의 여전한 에너지는 작가 자신과 작품 면면에 그대로 담겨있는 듯 했다. 이번 전시는 이건용이 꾸준히 추구해 온 작품 철학과 그 철학의 새로운 방향을 선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