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Interview]창작오페라 <순이삼촌> 강혜명 예술총감독 “꿰뚫린 심장을 예술로 어루만지다”
[Culture-Interview]창작오페라 <순이삼촌> 강혜명 예술총감독 “꿰뚫린 심장을 예술로 어루만지다”
  • 이은영 발행인‧진보연 기자‧김재성 사진기자
  • 승인 2022.08.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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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순이삼촌’, 9.3~4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공연
여순 사건 다룬 오페라 ‘1948년 침묵’, 역사의 예술적 조명의 시작
사실성 높이려 따른 징슈필·보칼리제 형식, 관객 공감 이끌어
“오페라로 말하는 비극적 역사, 이념과 사상을 넘어 아픔에 공감하는 과정”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진보연 기자/김재성 사진기자]“어진아, 오 내 아이들아,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길 바랐네. 아, 험악한 세상이 너희를 데려갔구나. 죄 없는 너희를 앗아가고 말았네”

제주는 4.3사건을 겪으며 말 그대로 황폐화됐다. 정신적ㆍ물질적 피해 뿐 아니라 전통적인 제주공동체가 철저히 파괴됐다. 너무 많은 사람이 무고하게 죽어갔음에도, 오랜 시간 이를 언급하는 건 금기였다.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입에 올리기 꺼리던 그 일을 소설로 남긴 사람이 있다. 바로 제주 출신의 소설가 현기영이다. 현기영 작가는 1979년 첫 소설집 <순이삼촌>에서 제주 4ㆍ3사건을 다뤘다는 이유로 보안사에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해야만 했다. 하지만 현 작가의 용기가 발단이 되어, 4ㆍ3사건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오페라 <순이삼촌> 공연 장면
▲오페라 <순이삼촌> 공연 장면

지난 2020년, 제주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은 창작오페라로 제작됐다. 이 작품은 10·19 여순 사건을 조명한 <1948 침묵>을 연출한 바 있는 소프라노 강혜명의 주도로 시작됐다. 그는 주인공 순이삼촌 역을 맡았을 뿐 아니라 현기영 원작소설을 각색하고 연출까지 맡은 예술총감독이다. 

극 중 강혜명이 맡은 순이삼촌은 학살이 있었던 옴팡밭에서 두 아이를 잃고 본인은 임신한 몸으로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다가 30년 뒤 옴팡밭에서 자살한다. 작품 중 하이라이트는 후반부의 ‘어진아 내 아들아’ 부분이다. 강혜명은 옴팡밭에 묻혀있는 아이들에게 “어진아, 오 내 아이들아,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길 바랐네. 아, 험악한 세상이 너희를 데려갔구나. 죄 없는 너희를 앗아가고 말았네”라는 노래를 전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한다. 

오는 27일과 28일 대전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김효근 아트팝 오페라 <안드로메다>와, 10월 19일 여순사건 발발일에 맞춰 예울마루에서 공연되는 <1948년 침묵> 공연을 앞두고 있는 강혜명은 서울과 제주, 대전, 여수를 오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서울에서 처음 선보이는 <순이삼촌> 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소프라노 강혜명은 어쩌다 정명을 찾지 못한 채 70년 넘게 표류 중인 4ㆍ3사건을 오페라로 만들게 됐을까? 그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페라 <순이삼촌> 예술총감독, 소프라노 강혜명 ⓒ김재성 사진기자
▲오페라 <순이삼촌> 예술총감독, 소프라노 강혜명 ⓒ김재성 사진기자

오페라 <순이삼촌>이 무대에 오르기까지 여러모로 쉽지 않았을 것 같다.

4ㆍ3 유가족 홍보대사를 맡고, 이 일에 막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당시부터 전화를 많이 받았다. 강혜명이라는 성악가, 예술가는 제주도민 전체가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하나의 아이콘이 돼야 하는데, 너무 한쪽에 편향된 것 같은 이미지를 주기 시작하면 이에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원망과 질타를 받을 수 있으니 괜히 나서지 말라는 내용이 주였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내가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건의 당사자인 제주도마저 4ㆍ3 사건을 이념 편향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 이 일이 이념적,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왔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예술로써 조명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2018년, 4ㆍ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문화예술 자문위원을 맡았다. 4ㆍ3은 70주년을 계기로 전국화 되며 굉장히 많은 변화를 맞게 됐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오페라나 클래식 쪽으로 프로그램을 확장해 진행해볼 것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시도되지 않았던 방식이기에 적극적으로 추진되지 않았고 결국 실행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에 실망하지 않고 이때부터 꾸준히 문을 두드렸고, 그러던 중 여순에서 <1948년 침묵>이라는 작품을 먼저 제안 받게 됐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당시 내가 받은 건 대본도 아닌 시나리오에 불과했다. 이를 무대화하기 위해선 많은 작업이 필요한 상태였으나, 여수 측이 가진 예산이 턱없이 부족했고 결국 직접 나섰다. 각색과 작사 모두 내가 했고, 원작자의 승인을 받아 70주년이 되던 2018년 10월 19일 여수 예울마루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공연에 4ㆍ3 관계자분들을 초대했다.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어느 면에선 비슷한 비극의 역사를 오페라로 조명했을 때, 어떤 효과와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 공연을 보고난 후 4ㆍ3재단에서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1948년 침묵>을 처음 선보일 당시 인터뷰를 통해 ‘(여순항쟁) 유족분들에게 빚을 갚으러 왔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여순 항쟁은 제주 4·3민중항쟁을 진압하기 위한 출동명령을 거부하고 단독정부를 저지하기 위해 전라남도 여수 주둔 국방경비대 14연대 소속 군인들을 시작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1948년 침묵>을 계기로 <순이삼촌>을 만들게 됐으니 나로썬 또 한 번의 빚을 지게 된 셈이다. 

“제주의 예술가로서 사명감을 느껴 이 작품을 만들게 됐다”라며 제작 배경을 전한 바 있는데, 4ㆍ3 유가족이라고 알고 있다.

친할머니의 아버지(진외증조부)께서 4ㆍ3 당시 돌아가셨는데, 정확히는 국가 공권력이 아니라 산에서 내려온 남로당계 사람들에 의해 희생 당하셨다. 처음 유족회 활동을 시작했을 때, 우리 가족의 사연을 듣고 다른 유족분들이 많이 놀라시더라. 4ㆍ3 유족회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대부분은 국가 공권력에 의해 살해당한 분들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입장의 차이로 양쪽 유족회는 그동안 화합하지 못했다. 그런데 오페라 <순이삼촌>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밤에는 공비들이 쌀을 달라고 죽창으로 위협하고, 그 다음날엔 경찰이 쌀을 줬다며 총부리를 들이댄다.” 당시 제주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유족회 회장님이 “강 선생 같은 분이 유족 홍보대사를 맡아주고 활동하는 것이 진정한 화합과 상생을 이루는 길”이라고 말씀해주셨다. 가해자인 그들도 넓게 보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트라우마를 지닌 희생자이다. <순이삼촌>은 이념 편향적인 작품이 아니다. 유족의 아픔에 공감하는 작품이다. 아울러, 4ㆍ3은 우리와 상관없는 과거, 바다건너 섬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화는 인류가 공동으로 추구해야 하는 절대적 가치이기에, 제주에서 일어났던 비극의 역사를 우리는 조금 더 무게감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간의 거리를 예술로 좁히는 역할을 이 작품을 통해 내가 하고 싶다. 

오페라 <순이삼촌>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이 작품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바가 있다. 많은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움과 쉼의 공간이 되어주는 지금의 제주도가 있기까지, 이들이 겪어내야 했던 비극적 세월의 무게와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다. 먼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통일 이후에 우리나라가 어떤 국가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답은 4ㆍ3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그마한 섬에서 이념 차이 때문에 어마어마한 학살과 피해가 벌어졌고, 이를 극복한 끝에 지금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일상을 갖게 된 것이다. 제주도민 스스로도 이에 대해 굉장한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 정방폭포, 함덕해수욕장, 표선해수욕장, 관덕정 등은 대부분 4ㆍ3 당시 학살이 일어났던 유적지이다. 1년 12달 중 4월 한 달 만큼은, 제주도를 찾는 이들이 그 땅을 일군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오페라 <순이삼촌>이 미력하게나마 이에 기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페라 <순이삼촌> 예술총감독, 소프라노 강혜명 ⓒ김재성 사진기자

제주교향악단과 제주합창단을 비롯해 전원 4·3 희생자 유족들로 구성된 제주4·3평화합창단, 극단 가람, 밀물현대무용단, 어린이클럽 노래하자춤추자 등 230여명이 출연하는 대작이다. 제주에서의 공연에 이어 지난해 12월 경기아트센터에서 타 지역민들에게 첫 선을 보였는데, 소회가 남달랐을 것 같다.

첫 시험대라고 생각했다. 올해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경기아트센터에서의 공연 이전에 이미 확정된 일정이었다. 그러한 상태에서 경기도 공연이 결정된 것이었으니, 여기서 잘 하지 않으면 내년에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준비했던 것 같다. 200명이 넘는 대군이 움직이는 공연인데, 한 명 한 명의 움직임이 새삼 감동으로 다가와 치미는 울음을 참기 힘들 정도였다. 

경기아트센터에서의 첫 공연에 제주도에서 강우일 주교님, 현기영 작가님, 제주4ㆍ3평화재단 이사장님이 다 보러 오셨는데, 제주가 아닌 지역에서 4ㆍ3을 이야기하는데 누가 관심을 가져줄까? 하는 걱정을 하시더라. 하지만 공연은 전석 매진으로, 자리가 없어서 곤란할 정도였다. 

공연을 관람하신 제주도 분들은 ‘4ㆍ3을 이야기하는데 제주도 사투리가 공연장에 울려퍼졌다’는 사실에 감격해 눈물을 보이셨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사실 제주도민 사이에서는 섬이라는 지역적 한계와 역사적 배경이 더해져 그동안 굉장히 억압받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공연 예술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오페라라는 장르에서 4ㆍ3을 이야기하고, 역사가 전하는 제대로 된 메시지를 제주도 사투리로 전달하는 오로지 제주만을 다루는 무대이니 감동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음악적으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어떤 것인가?

대중에게 거부감이 적은 방식으로 4ㆍ3을 알리기 위해 고민한 끝에, 오페라를 가사와 대사로 섞어 구성하는 징슈필(Singspiel) 형식을 택했다. 오페라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어색함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연극적 요소를 강화했다.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을 때 음악으로 표현하는 구성 방식이다. 때문에 학살 장면에서 장교도 가수에서 배우로 바꿨다. 

두 아이의 시신을 본 어미의 심정을 표현한 보칼리제(Vocalise) 형식의 ‘광란의 아리아’도 이 작품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음악 중 하나이다. ‘광란의 아리아’는 최정훈 작곡가에게 초연부터 주문했던 곡인데 작년에 새로 추가됐다. 자기 자식의 죽음을 본 엄마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내가 울고불고 다 할 테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음악을 써달라고 했다. 극사실주의를 강조하고 싶었다. 그 바탕이 너무 깊고 짙은 아픔이기 때문에, 이를 예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최정훈 작곡가가 엄청 고생을 했다. 나 때문에 ‘강혜명 가위’에 눌리는 것 같았다고 하더라.(웃음)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나를 미워하고 원망하는 그 느낌으로 곡을 써달라’고 말했다. 원망도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너무 좋은 파트너가 됐다. 

내가 잘하고 잘 아는 ‘오페라’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장르적 특성보다 음악과 연극적 요소가 어우러진 예술로 받아들여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 예술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위로를 주고, 이로 하여금 4ㆍ3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오페라 <순이삼촌> 2막 공연 중 열연을 펼치는 순이삼촌 역의 강혜명 소프라노

<순이삼촌>을 오페라로 만들고 싶어 연고도 없는 현기영 작가에게 무작정 찾아갔다고 밝힌 바 있다. ‘신중히 결정하라’며 몇 번이나 재고할 기회를 주신 끝에 (작품 제작을) 허락받았을 때의 기분은 성취감 그 이상이었을 것 같다.

<순이삼촌>이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이걸로 뭘 만들어보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굉장히 많고, 현기영 작가님은 힘을 주고 싶어서 대부분 허락을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나에겐 몇 번이고 재고의 기회를 주시더라. 한 번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되는 일이니 숙고하라는 작가님의 배려였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했고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 두 번째 작가님을 찾아 뵐 땐 나의 공연 티켓을 함께 드렸다. 그 과정에서 <1948년 침묵> 소식을 들으셨고, 세 번째에 비로소 승낙을 받게 됐다. 선생님께선 ‘오페라 <순이삼촌>을 통해 4ㆍ3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당부하셨다. 그 미션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다. 

현기영 작가님은 오페라 <순이삼촌>에 가장 큰 지지를 보내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다. 강요배 작가님과 강정효 사진가님의 작품을 오페라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던 것도 현기영 작가님 덕분이었다. 오페라가 자본이 많이 들어가는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다 보니 작품이 좋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 것 같다. 

▲오페라 <순이삼촌> 예술총감독, 소프라노 강혜명 ⓒ김재성 사진기자<br>
▲오페라 <순이삼촌> 예술총감독, 소프라노 강혜명 ⓒ김재성 사진기자

성악가로서 이번 공연의 총감독까지 맡았다. 출연과 함께 감독을 맡는 예는 오페라계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든 경우인데.

처음엔 직접 무대에 올라 노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단지 4ㆍ3을 노래하는 무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했을 뿐이다. 내가 기획 단계부터 함께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각본 작업도 하게 된 거고. 그런데 대본을 각색을 하고, 4ㆍ3을 공부하다보니 과연 어떤 연출가에게 이 작품을 맡길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유명한 연출가 분들은 다들 바쁘신데, 그분들이 과연 제주도에 몇 달 동안 체류하면서 유족의 채록을 듣고 4ㆍ3을 제주도민의 시각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온전히 소화해줄까?라는 의구심이었다. 그런데 이 작품의 대본을 쓰신 김수열 작가님께서 ‘내가 옆에서 서포트를 해줄 테니, 네가 그리는 그림대로 연출을 직접 하는 게 어떻겠니’라고 제안을 해주셨다. 그래서 용기를 내게 됐다. 

노래는 할 생각이 없었는데 제가 설득했던 선생님들께서 이번엔 ‘네가 가장 잘 하는 노래로 무대에 서는 것까지가 완전한 책임’이라는 말로 저를 설득하셨다. 나 또한 창작오페라 초연의 무게와 부담감, 불확실성을 알고 있었기에 다른 성악가에게 이 무거운 짐을 지우기보다 내가 직접 소화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욕심이 아닌 책임감으로 무대에 서게 된 거다. 

더불어, 내가 인복이 참 많은 사람이다. 어떤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스태프부터 출연진까지 내가 최종 컨펌만 하면 되는 상태로 일을 다 만들어준다. 게다가 이제 3년 차다 보니, 대부분은 자리가 잡힌 상태다. 각본 작업을 할 때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맡은 순이삼촌과 다른 출연진이 겹치는 씬이 거의 없다. 과거의 일이니까. 아마 다른 사람들과 계속 호흡을 맞추며 합창을 해야 하는 역할이었다면, 출연과 연출을 함께 하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예술감독으로서 연주자로서, 작품을 대하는 자신만의 철학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지금 내 마음 속에 가장 크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제주’이다. 다른 단장님이나 관계자분들이 ‘너무 지역색을 강조하지 마라, 그럼 너는 지역 대표밖에 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나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곳이 제주도이다. 그래서 이런 작품도 만들었고, 후속작으로 만들고 있는 제주도 콘텐츠는 부종휴 선생과 꼬마탐험대의 만장굴 탐사 이야기이다. 오는 12월 3일 만장굴이 천연기념물로 등재된 날에 맞춰 제주도에서 초연 예정이다. 문화예술로 제주도의 가치를 알리고, 제주도민의 자긍심을 높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기여하는 것이 지금 나에겐 가장 큰 가치이다. 

시작은 제주이지만, 여순 사건을 다루는 작품에 참여한 것처럼 나아가 우리나라의 각 지역이 갖고 있는 고유의 스토리를 기반으로 문화예술적으로 조명할 수 있다면, 다양한 소재를 다뤄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