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물결’ 위 연결되는 우리와 세계, 《2022부산비엔날레》 개막
[현장리뷰] ‘물결’ 위 연결되는 우리와 세계, 《2022부산비엔날레》 개막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9.07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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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 외 3곳서, 9.3~11.6
‘이주, 여성, 도시생태계, 기술 변화’ 주요 키워드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기술이 발달하고, 국가 간 이동이 자유로워지고 나서야 사람들은 지구 전체를 한 마을처럼 생각하는 ‘지구촌’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쩌면 기술 발전 이전, 굉장히 오래 전부터 세계는 이미 연결돼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영도공장 전시장, 이미래(b.1988, 한국) <구멍이 많은 풍경: 영도 바다 피부>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물결 위’에서 우리 각자의 몸은 물결과 같은 역사와 환경 위에 놓여 있고, 인간을 비롯한 지구 위 생명과 사물들은 세계의 구성체로 서로 긴밀히 엮여있다. ‘물결 위 우리’를 주제로 한 2022부산비엔날레가 환기시켜주는 감각이다.

부산광역시와 (사)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조직위원장 박형준 부산시장, 이하 조직위)가 공동 주최하는 2022부산비엔날레가 9월 3일 개막해 오는 11월 6일까지 개최된다.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개최 장소는 부산현대미술관을 비롯해 부산항 제1부두 창고, 영도 공장, 초량 주택 총 4곳이다. 공간적 특징을 활용해 비엔날레의 주제와 부산의 역사와 문화를 감각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부산항 제1부두 창고는 이번 부산비엔날레를 통해 처음으로 일반이들에게 공개 된다. 비엔날레에는 25개국 64팀(작가)/80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며, ‘물결 위 우리’를 주제로 총 239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부산항 제 1부두 창고 전시작, 김주영(b.1948, 한국) <제 부두의 고고학  물결은 빛이 되다 바람이 되다 길이 되다 역사가 되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물결’로 상징된 ‘개항-한국전쟁 피난처-도시발전’ 격변의 부산

지난 2일에는 65일간의 대장정을 앞두고, 비엔날레 프리오프닝이 개최됐다. 태풍이 예보된 날씨 속에서도 여러 국가의 취재진이 현장을 찾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가 간 이동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 현재는 방역지침이 나아지고 있어 다수의 해외 작가들이 직접 현장을 찾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2022부산비엔날레의 주제 ‘물결 위 우리’는 바다와 인접한 항구 도시 부산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부산이 가진 역사 문화적 성격을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나아가 바다를 통해 세계로 나아가는 도시인만큼 ‘물결’이라는 주제는 전 지구적인 의미로 확장된다.

▲2022부산비엔날레 프리오프닝 기자간담회에서 김해주 전시감독이 비엔날레 주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김해주 2022부산비엔날레 전시 감독은 “비엔날레 준비과정에서 부산 거리를 거닐고, 운전하면서 마주하는 풍경 속에서 ‘물결’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렸다. 작은 어촌이었던 부산은 바다를 메워 일군 땅 위의 항구로 시작해 급격한 인구의 유입과 함께 언덕을 채운 집들로 모습을 갖추며 점차 도시가 된 곳이다. 부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한 언덕을 넘을 때마다 도시풍경과 바다의 풍경이 번갈아서 마주할 수 있다. 또한, 고층 빌딩의 수직선과 사람, 물류의 이동을 위해 도시를 가로지르는 수평의 고가도로와 대교가 교차한다. 이런 복잡한 구조를 갖춘 부산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 ‘물결’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물결이 굽이치고 흐르듯이 부산의 현재와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봤다”라며 주제가 갖고 있는 상징을 설명했다.

이렇게 물결은 부산의 상징이 돼 힘을 갖는다. 여기서 부산비엔날레는 그 물결 위의 우리로 시선을 옮겨간다. 이 물결을 타고 함께 살아온 이들은 누구였는지 돌아보고, 지금 이 물결 위에는 누가 서 있는지 조망한다. 결국 부산에서 시작된 물결은 항구를 통해 세계로 뻗어나간다.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 속에서 우리는 물결을 타고 세계와 연결되고 서로를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전시를 이루는 총 네 개의 주요 키워드는 ▲이주 ▲여성 그리고 여성 노동자 ▲도시 생태계 ▲기술 변화와 로컬리티다. 프리오프닝 기자간담회에선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네 개의 키워드가 어떻게 연결성을 가질지에 대한 의문이 드러났다. 심지어 키워드별로 전시공간을 설정하거나, 작품을 배치하지 않았다는 김 감독의 설명에서 취재진들은 더 큰 의구심을 표했다.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작, 피아 뢰니케(b.1974, 덴마크) <미래의 수평선>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김 감독은 “네 개의 키워드가 개별적으로 분리돼 전시 공간을 상징하거나, 작품을 설명하진 않는다. 하지만 전시를 보면 알겠지만, 작품에 이 네 개의 키워드들이 모두 교차하고 있다”라며 자신감 있는 답을 전했다.

‘이주’는 개항(1876)과 한국전쟁(1950-1953), 산업화를 거쳐 급속하게 확장된 부산 도시 인구 대부분이 타지에서 유입됐다는 점을 주목한다. ‘여성 그리고 여성 노동자’는 부산의 산업화 과정에 기여했으나, 역사의 그늘의 가려진 이야기를 끌어내는 주제다. ‘도시 생태계’는 산, 강 바다의 다양한 자연 지형 위에 압축적인 성장과 변화를 겪은 부산의 공간에서 오늘날 전 지구적인 환경파괴와 그로부터 영향받는 삶들을 돌아본다. 마지막으로 ‘기술 변화와 로컬리티’는 기술의 도입과 근대화의 과정이 도시의 형성에 미친 영향들을 역사적으로 돌아보며, 변화하는 기술은 앞으로 지역의 장소성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고 인간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 물어본다.

김 감독은 전시가 펼쳐지는 미술관 외 3개의 장소가 가진 특징에 대해선 간략한 설명을 전했다. ‘부산항 제 1부두 창고’와 ‘영도 공장’은 근대 부산의 시작과 노동, 이동을 담는다. 초량 주택가는 부산의 주요 도시 풍경인 산복도로를 품고 있다.

▲부산항 제 1부두 창고 전시장 전경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부산과 여성, 여성과 이주, 산업과 이주…교차되는 4개의 주제

25개국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외국인이 바라본 ‘부산’에 대한 시각을 전하기도 하고, 국경을 뛰어넘어 소통할 수 있는 주제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한 부산에서 활동해오고 있는 중견 작가들의 참여는 부산비엔날레만이 품어낼 수 있는 특별함을 선사한다.

부산에서 태어나 성인이 될 때까지 부산을 벗어난 적이 없던 감민경(b.1970, 한국) 작가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총 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부산 현대미술관 1층에 전시된 <동숙의 노래>, <0시의 땅>, <파도>는 작가가 기억하고 있는 부산의 모습이 파편화돼 하나의 이미지를 형상화 한다.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작, 감민경(b.1970, 한국) <동숙의 노래>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동숙의 노래’는 부산 출신 가수 문주란의 데뷔곡(1966년) 제목이다. 작가는 그 시절을 살았던 감민경 작가의 어머니의 모습을 ‘동숙’이라는 여인으로 상징화하며 부산의 한 시절을 짚어낸다. <동숙의 노래>에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부산 산복도로의 모습이나 건물이 담겨있는데, 거대한 작품 속 이미지들은 행복한 유년과 사랑을 드러내기도 하면서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도시 풍경 속 서민들의 배고픔과 한 시절의 역경과 슬픔을 전하기도 한다.

목탄을 사용해 작업한 감 작가의 작품은 흐릿해진 듯한 과거의 기억을 효과적으로 끌어올린다. 그 시절과 공간을 겪지 않은 이들에게도 한 시대가 가지고 있던 정서와 기억을 전하는 작품이다.

감 작가는 “비엔날레 참가 제안을 받고, 감독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내 작업의 바탕이 되고 있는 부산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공간들도 많아, 기억에 의존해 작업을 했고, 내 작업의 바탕이 되는 이미지와 서사를 돌아볼 수 있는 8개월을 보냈다”라고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부산항 제 1부두 창고 전시작, 히라 나비(b.1987, 파키스탄) <땅의 경계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부산현대미술관을 벗어난 3개의 외부 공간은 공간이 가진 아우라를 통해서 작품의 의미와 비엔날레의 주제를 더욱 확실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부산항 제 1부두 창고에 설치된 히라 나비(b.1987, 파키스탄) 작가의 <땅의 경계에서 죽어가는 모든 것들>은 30분 33초의 단채널 비디오 작품으로 파키스탄 가다니 폐선 처리장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큐 픽션 형식으로 풀어낸다. 선박의 이동을 따라서 작품을 진행되는데, 이 작품 속 선박이 부산도 거쳐 가는 배여서 영상 속엔 부산의 모습이 등장하기도 한다.

김 감독은 “히라 나비 작가와 연락을 했을 때, 작품 속 장면에 대해서 알고 제안을 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선박’이라는 소재와 ‘이동’을 다룬 작품에서 ‘부산’이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놀라움을 느꼈다”라고 말했다.

▲산복도로 초량 전시장 전경, 작은 2층 주택에 송민정(b.1985, 한국) <커스텀>이 설치돼 있다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초량 주택가에 마련된 작은 전시 공간 또한 이색적인 감각을 전한다. 2층의 아주 작은 주택에 설치된 송민정(b.1985, 한국) 작가 작품 <커스텀>은 한국인 남편을 따라 부산으로 이주한 일본 여성 하루코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택가 안에 모바일 디바이스를 설치하고, 가상세계 속 인물의 이야기를 전한다. 송민정은 물리적인 것과 비물리적인 것의 관계가 혼합된 세계에서 ‘이동’의 의미를 추적하며 현재를 인식하는 작품을 만든다. 그의 작품은 시간의 흔적이 선명하게 새겨진 초량 산복도로의 주택가에서 가상의 서사와 함께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새로운 세계를 직조해낸다. 그의 작품은 낡은 주택이 주는 아우라 속에서 더욱 선명한 형태를 갖는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전하고 있는 샌디 로드리게스(b.1975, 미국)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부산비엔날레 주최 측은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것에서 나아가 관람객들이 좀 더 다양하게 비엔날레의 주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온라인 저널을 발행하고, 아티스트 토크&렉처, 워크숍, 퍼포먼스 등이 진행된다. 프리 오프닝 당일에는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장에서 작품을 공개하는 오토봉 엥캉가(b. 1974, 나이지리아)의 퍼포먼스가 열렸다. <나즈막한 봉헌> 작품을 이용해 선보이는 퍼포먼스는 두 명의 여성 아티스트가 긴 나무 막대를 어깨에 지고 균형을 맞추며, 미술관을 도는 행위다.

땅과 물의 역사를 추적하는 설치 작품을 통해 환경오염과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설득력 있는 질문, 치유를 위한 시스템 구축에 대해 힘을 쏟는다. 지구 상 땅과 물을 부르는 엥캉가의 퍼포먼스는 국가를 넘어서 완성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염원을 담는다.

▲ 오토봉 엥캉가(b. 1974, 나이지리아)의 퍼포먼스 현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연결될 것 같지 않은 네 가지의 키워드는 부산비엔날레가 이뤄지는 4개의 공간을 모두 돌아보는 순간, 물결이 모여 바다가 되듯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간과 세계를 마주하게 한다. 얼핏 현 시대가 주목하고 있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2022부산비엔날레는 현 시대와 부산의 장소성, ‘물결’의 이미지를 잘 융합해 이번 축제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을 드러내고 있다. 부산 중심지와 떨어진 4개의 전시 공간 간 이동이 어려울 수 있지만, 모든 공간이 어우러졌을 때의 감각은 새로운 경험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