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관현맹인전통예술단과 장애인예술지원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관현맹인전통예술단과 장애인예술지원
  • 주재근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
  • 승인 2022.09.0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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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
▲주재근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

“조선조 전기 세종시대 맹인음악가의 관현맹인 제도를 현대에 이은 관현맹인전통예술단, 문화체육관광부 신설되어야 할 장애인예술과에서”

눈이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하지 못하는 3중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대학에서 교육을 받고 한평생 맹인 복지 사업에 헌신한 헬렌 켈러(1880~1968)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위인이다.   

헬렌 켈러가 최고의 명문 대학 하버드 대학을 입학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었던 것에는 부모님 못지 않은 훌륭한 스승 설리반(1886~1936)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팝가수 스티비원더, 클래식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 하모니카 연주자 전재덕 등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 중에는 소리에 대한 청력과 음력이 뛰어난 음악가들이 많다. 

맹인의 뛰어난 음악성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는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안보이는 것 만큼 들리는 것에 대한 집중력과 소리에 대한 사고력이 일반인보다 더 나을 것이라 짐작은 가능하다.
역사적으로 세계의 여러 왕조 국가는 왕실의 각종 행사에 필요한 음악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왕실음악단이 있다. 왕실음악단 중에서도 맹인들로 구성된 악단을 구성한 왕조는 조선이 유일하다고 하겠다.

여성, 노비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화복지를 실현한 세종은 음악성이 뛰어난 맹인들을 궁중음악 연주 악사로 채용하여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른바 관현맹인(管絃盲人) 제도를 두게 된 것인데 관현맹인은 여러 궁중 잔치 가운데 왕비나 대왕대비 등 여성이 주빈이 되는 내연(內宴)에서 음악과 궁중 정재(춤)의 반주를 하였다.

『세종실록』 29년 4월 9일에 당시 궁중음악 기관인 관습도감(慣習都監)에 이미 관현맹인이 활동하였다는 기록이 처음 보이고, 1630년(인조 8) 당시 대왕대비인 인목대비의 경수연(慶壽宴)잔치를 기록한 『풍정도감의궤』 에도 보인다. 또한 1744년(영조 20) 경희궁 광명전에서의 잔치를 기록한 『갑자진연의궤』에는 피리 5명, 대금 2명, 해금 2명, 거문고 1명, 비파 2명, 초적 1명 등 관현맹인 13명이 연주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 세종대 문신이자 음악가인 박연의 시문집을 엮은 『난계유고(蘭溪遺稿)』에는 궁중의 악사로 맹인을 쓰게 된 배경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옛날의 제왕은 모두 장님을 사용하여 악사를 삼아서 현송(絃誦)의 임무를 맡겼으니, 그들은 눈이 없어도 소리를 살피기 때문이며, 또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렇듯 관현맹인 제도의 효용성에도 불구하고 조선 왕조가 사라지면서 더 이상 존속되지 못하고 역사적 기록으로만 남게 되었다. 시력을 잃은 세종과 관현맹인 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국악학자 고 권오성 교수의 발의로 국악을 중심으로 한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 2011년 창단되었다. 세종의 음악적 업적을 잇는 관현맹인예술단은 실로암복지재단의 최동익 이사장의 헌신적 지원과 변종혁 예술감독의 노력으로 일반인 국악 단체 보다 훨씬 많은 예술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캐나다, 일본 등 해외공연과 고궁(창덕궁)에서 우리 음악듣기 등 기획공연, 교도소 위문 공연, 정기연주회를 비롯해 유투브 공연 등에서 단원들의 활동상은 일반인들은 물론 일반 장애인에게도 큰 감동을 안겨 주고 있다.

이번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 57 ‘공정하고 사각지대 없는 예술인 지원체계 확립’에 세부 실행과제로 ‘장애예술활성화’ 사업이 명시되어 있다.

장애인체육에 대한 지원 정책과 인프라 구축은 이제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큼 뛰어나며 정부 기구인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체육과에서 전담하고 있다. 장애인체육과와 같은 기능을 장애인예술과를 신설하여 담당하게 한다면 우리나라 장애인예술은 눈에 띄게 발전할 것이다. 

장애예술인 예술진흥을 위한 장·단기 발전계획 수립, 장애예술인 예술환경의 조성 및 지원체계 개선, 장애예술인 예술활동 프로그램의 개발과 장애예술인 단체의 육성 및 지원, 장애예술인 지도자의 양성·배치 및 장애예술인 예술 관련 전문 인력의 양성, 장애예술인 복지 등 장애예술과에서 담당할 내용이어야 하고 실행되어야 할 것이다.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마음과 생각이다. 장애를 갖고 있으나 좋은 예술을 직접 해 보고 감상하게 되면 차츰 좋은 마음이 싹트고, 기쁜 마음이 자라나게 된다. 장애인예술 활동은 국민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