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bOK(복)’에 대한 각색의 평문들
[이근수의 무용평론]‘bOK(복)’에 대한 각색의 평문들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09.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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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리케이댄스’ 창립 20주년 기념작으로 공개된 이경은의 <‘bOK(복)’, 6.17~19, 아르코 대극장)>이 평론가들로부터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그중 춤웹진, 댄스포럼, 춤, 춤과 사람들, 서울문화투데이에 실린 글 다섯 편을 골라서 읽었다. 최고의 호평에서 최악의 혹평까지 평론가들의 다양한 평가가 드러난 글을 읽으면서 의문이 떠올랐다. ‘리뷰를 쓸 때 평론가들은 얼마나 많이 팸플릿에 의존할까?’ 다소 엉뚱하지만, 해묵은 의문이었다. ‘bOK’의 공연 팸플릿은 네 쪽이다. 1면과 4면엔 출연자와 스태프명단, 공연 일정과 무용단 소개가 있고 3면엔 안무자의 기획 의도가, 4면은 텍스트로 채워진 단출한 구조였다. 

‘김*라’ 춤평론가의 글에는 ‘텍스트에 의하면’이란 표현이 거듭 등장한다. 텍스트의 주제어는 역신과 역병이다. 처용설화에 코로나를 오버랩 시킨 안경모의 글엔 난무(亂舞), 희롱, 오방잡색, 네 가랑이, 바뀐 몸통 등 우울한 어휘가 난무한다. 텍스트가 출발점이 되어 실제로 펼쳐지는 무대에 이를 대입하려 할 때 공연의 실체를 놓치는 위험이 있다. ‘김*라’는 코로나 종식을 앞두고 잘살아보자는 의지를 보이는 작품으로 ‘bOK’을 규정하고 감염병으로 암울했던 상황과 이를 춤 백신으로 극복하려는 의지로 작품을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이 벽에 부딪힐 때 평론가는 혼란스럽고 평가의 방향은 표류하게 될 것이다. ‘몸의 서사가 애매한 작품.’ ‘몸 담론의 빈약한 실천’, ‘중구난방으로 표류하는 작품의 방향성’... 평론가가 내린 평가 결과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텍스트에 의존한 또 하나의 리뷰가 ‘박*경’의 글이다. 2백자 원고지 13장에 달하는 글의 절반 이상을 처용설화와 코로나 역병을 다루고 있는 텍스트 소개에 할애하고 있다. 그는 “‘bOK’을 춤을 백신 삼아 우울한 시기를 이겨낸 이경은과 리케이대스 단원들이 곧 다가올 미래(코로나 19 종식)를 맞이하는 춤 작품”으로 해석하고 “전체 구조의 시작과 끝이 처용설화의 틀을 유지함으로써 고전적이며 통상적인 이야기로 마무리된”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텍스트에 몰입하여 리케이댄스의 20주년 기념작이 갖는 의미를 축소한 것이 아쉬웠다.

선입견이 될 수 있는 텍스트 중심 리뷰의 함정

‘김*연’평론가의 글은 텍스트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시각에서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는 면에서 고무적이다. 텍스트에 강조된 처용설화는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그는 ’bOK‘을 “추상적이지 않고 뚜렷한 주제 의식이 내재 되어 있어 선명한 작품세계를 드러내는 이경은의 정체성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평가한다. 그는 또한 “무대에 등장하는 여러 층위의 인물들이 현실 세계를 구성하는 인물들이며 각 층의 인물군들과 함께 즐김의 모습을 만들며 몸과 춤, 그리고 우리라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려 한”것이 감동으로 전해졌음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장*원‘무용평론가는 이경은을 “에너제틱하고 경쾌한 작품 경향을 보이면서 진중한 메시지를 전하는”무용가로 정의하고 ’bOK‘이 리케이댄스 20주년 기념작임을 환기시킨다. 그는 또한 “‘모든 존재는 축복이다.’라는 명제 아래 몸 자체의 가치에 주목하여 각기 다른 몸들이 서로 공존하고 움직일 때 상호발전되는 감동과 공감을 제시하고자”한 안무 의도에 공감하면서 복주머니 속의 복을 하나씩 풀어놓으며 품게 되는 기대감과 희망이 리케이댄스의 지난 20년과 미래의 방향성을 보여준다고 기술한다. 이러한 주제를 현실의 코로나와 처용설화에 깃들게 한 안무가의 발상은 독창적이고 라이브연주가 주는 정서적 유대감과 밝고 선명한 무대 이미지가 주는 효과를 언급한 ‘장*원’의 글은 포괄적이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준 리뷰였다.  

텍스트는 공연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 중 하나다. 관객들에게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클래식발레나 무용극을 제외하고는 텍스트를 충실히 반영했는지 여부가 작품의 평가기준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창의적인 평론가는 텍스트가 아닌 실제 무대에서 작품의 본질과 메시지를 찾아낸다. 문화부 기자가 쓰는 프리뷰와 평론가가 쓰는 리뷰의 근본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다. ‘bOK’은 복(福)으로 읽히지만, 바탕은 ‘be OK’다. 독립무용단 창단 후 20년 동안 ‘리케이댄스’가 겪어왔던 애환을 돌아보면서 몸과 춤, 인간애를 핵심 가치 삼아 생존해온 무용단의 현재 모습과 미래의 다짐을 관객들에게 ‘I am okay’ 혹은 ‘It would be okay‘란 메시지로 전달하고자 고심한 흔적이 제목에 녹아있다. 80대 여배우인 박정자가 축하의 꽃다발을 들고 등장하는 첫 장면과 그녀가 선창한 ’찔레꽃‘노래가 남녀노소, 장애인과 비장애인 출연자들 모두의 합창이 된 피날레가 이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평론은 창의적 예술이다. 선입견이 될 수 있는 텍스트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그리고 흔들리는 것은 무용가가 아니라 때로는 평론가 자신의 그릇된 시각 때문임을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서울문화투데이에 실린 필자의 리뷰는 7월13일자 신문, <리케이댄스 20년-이경은의 ‘복bOK’>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