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이예진의 ‘능란한 손’, 유민희의 ‘영민한 귀’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이예진의 ‘능란한 손’, 유민희의 ‘영민한 귀’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2.09.0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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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부산시립국악관현악단 with 아창제(8. 19.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에선 그간 아창제에서 발표된 여러 작품 중에서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 할 다섯 작품이 재연되었다. 특히 두 명의 여성 작곡가의 작품에 관심이 쏠렸다. 유민희 작곡의 ‘마음의 전쟁’(2013)과 이예진 작곡의 ‘기우’(2019)는 한국창작음악사에 길이 남을 작품이다. 

아창제(아르코창작음악제)에서 만나는 국악관현악 작품에선 작곡가의 내면이 진솔하게 전달된다. 이런 발판이 된 작품이 ‘마음의 전쟁’이다. 작곡가의 작곡적인 기술 이상으로, 작곡가의 내면적 진정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웠다. 작곡가 유민희가 그런 발판을 만든 셈이다. 

이예진 작곡의 ‘기우(祈雨)’는 타악기 독주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이다. 타악기 연주자 김인수가 협연했다. 김인수는 감각을 겸비한 아카데믹한 타악연주가이다. 그의 협연이 끝났을 때,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을 가득 채운 박수가 지금도 생생하다. 

이예진과 유민희. 각각 어떤 작곡가일까? 이예진은 추진력이다. 악상을 잘 시작해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개해간다. 끌고 나가는 힘이 좋다. 거기서 작품의 밀도가 나온다. 이예진의 작품은 악보만 봐도 끌린다. 곳곳에 정성이 배어있다. 악보를 소장하고 싶다. 이예진이 잘 채울 줄 아는 작곡가이다. 그녀의 ‘능란한 손’에 감탄한다. 

유민희는 사고력이다. 생각을 주저하지 않고 표출한다. 그 안에서 국악기를 참 잘 살려낸다. 국악기 특유의 선법에 대한 활용과 국악기의 활용도가 매우 높다. 유민희의 악보를 보면 이걸 빨리 실제 음악으로 듣고 싶어진다. 유민희는 잘 들을 줄 아는 작곡가다. 그녀의 ‘영민한 귀’에 감탄한다. 

이예진과 유민희를 만약 연출가에 비유한다면, 그 연출방식이 확연히 다르다. 추진력 중심의 이예진은 주인공을 만들어서 확실하게 집중한다. 똑똑한 연출가이다. 사고력 중심의 유민희는 모든 배역을 다 살리려 한다. 다감한 연출가이다. 

이예진의 밀도, 유민희의 채도 

이예진의 작품에선 밀도(密度)가 옹골차다. ‘기우’가 밀도의 정점이다. 제1회 국제 박영희 작곡상(2016)을 받은 수상작으로, 그녀를 21세기 주목할 여성작곡가의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선 주목할 타악기는 ‘대고’이다. 이예진의 작품에선 ‘흥과 신명’이란 이름으로 대고를 난타(亂打)하지 않는다. 대고와 공과 같은 타악기를 통해서 ‘사유의 힘’을 느끼게 한다. 악곡의 처음에서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악상부터 출발해, 악곡의 후반에 모든 국악기가 각각 비가 내리는 광경은 매우 숭고하고 외경스럽게까지 비친다. 

유민희의 작품에선 채도(彩度)가 이채롭다. ‘Frida Kahio를 위한 발라드(고통받는 영혼을 위한 기도)’(2016)는 국내와 해외에서 꾸준히 연주된다. 2022실내악축제에서도 재연되었다. (8. 21. 서울돈화문국악당) 

이 작품에서 주목할 타악기는 ‘축’이다. 그건 ‘부러진 척추’를 의미하는 듯 보인다. 아악에만 쓰이는 축이란 타악기가 여기선 고통받는 한 여성을 대변한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프리다칼로의 찬란한 색감이 국악기를 통해 새롭게 전이(轉移)된 느낌이다. 국악기는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픔과 고통으로 소리친다.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매우 찬란하다. 

두 명의 작곡가를 상찬(賞讚)하는 이유는 무얼까? 국악창작의 아쉬움을 지적하고자 함이기도 하다. 국악계에서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한 부류의 작곡가가 있다. 나는 그들을 ‘피아노 편향 작곡가’라 부르고 싶다. 현란한 화성을 구사하며, 관객에게 구애(求愛)한다. 그들이 만들어내고자 하는 음악적 치장에 때론 국악기가 들러리를 서고 있어서 불편하다. 그들은 작곡적인 능력이 높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국악기를 제대로 바라볼 줄 아는 안목이 아쉽다. 

서양음악을 전공한 한 부류의 작곡가들은 악곡을 전개하는 구성력(아이디어)이 좋고, 작곡적인 기술이 뛰어나서 혹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작품의 유통기한은 매우 한정적이다. 국악창작도 알게 모르게 시류를 탄다. ‘미래가 기억할 오늘의 우리 음악’이 아창제의 목표라면, 유민희와 이예진의 작품처럼 국악기에 대한 존중이 깊숙이 배어있는 작품의 가치를 더욱 알릴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