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연극계의 거목 이해랑 선생님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 연극계의 거목 이해랑 선생님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2.09.0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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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랑연극상으로 지금도 한국연극계 불 밝혀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비가 마구 쏟아지던 지난 7월 13일 오후 5시 나는 오랜만에 남산에 있는 중앙 국립극장을 찾았다. 참 오랫만에 발 들여 보는 국립극장이다. 그날 그곳에는 두 가지 큰 행사가 마련되어있었다. 하나는 코로나로 인해 한참 동안이나 참여 못 했던 ‘이해랑연극상’ 시상식이 32회째 열리는 뜻깊은 날이었다. 또 한 가지 뜻깊은 행사는 국립극장 해오름 대극장에 <햄릿> 공연이 오랫만에 공연되는 첫날이었다. 그것도 오랜 공사와 공들여 현대화 공연에 걸맞게 대대적인 개보수 공사를 끝내고 올리는 해오름극장의 축제 같은 분위기의 첫 공연인 것이다.

뜻깊은 두 행사를 보기 위해 연극계를 비롯한 한국의 문화계가 총출동한 듯, 행사장은 들뜬 분위기였다. 국립극장 로비와 해오름극장 2층에 차려진 시상식장과 검소하나 풍족하게 차려진 뷔페식 만찬장은 코로나로 인해 갇혀 살던 한국 문화계의 정다운 얼굴들의 행복의한 웃음, 반가움에 기쁜 표정들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랫만에 <행복>이란 단어를 수많은 문화계와 연극, 무용, 음악계, 언론계의 얼굴들에서 읽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줄기차게 쏟아지는 장대 빗발도, 우비 속에 축축이 젖은 불편함도 잊은 채 사람들은 오랜만에 마주하고 악수하며 인사하는 모습에서 사람 사는 맛을 맛보았다. "사람은 이렇게 마주 보며 웃고 반가워하며 행복을 맛보는구나!" 오랜만에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 속에서도 나는

32회째 맞이하는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보며, 특히 이해랑연극상 재단 이사장을 맡고 계신, 이방주 이사장을 비롯하여 세 아드님이 힘을 모아 이끌어가는 이 연극상은 모름지기 한국 연극계의 <기둥을 세우는 일>임이 자명하다.

이번 영광스러운 수상자는 서구적인 외모와 지성미를 갖춘 1959년생 남명렬 배우다. 훤칠한 키에 서구적인 외모를 지닌 데다 섬세한 연기까지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배우는 올해엔 7천만 원이란 거금을 수상한 행운아가 되었다. 아울러 공로상을 수상한 배우로는 일생을 연극무대 위에서 보낸 신구 씨로 그의 나이는 86세로 아직도 현역으로 뛰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참으로 복된 자리였다.

시상식 자리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32회를 이어오며 본상과 공로상 수상자들이 대거 출동한 것이다. 손진책 연출이 새로 단장한 해오름 극장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첫 연극무대로 이해랑상 수상자인 프로듀서 박명성이 제작한 작품은 출연진 또한 이해랑상 수상자 박정자, 손숙, 손봉숙, 유인촌, 길해연 등이 대거 출연하는 무대로 한국 연극계의 계보를 읽는듯한 중장년 연극계의 연기와 역량을 볼 수 있는 뜻깊은 잔치의 자리였다.

이날 따라 특히 이해랑 선생님이 그립고, 자랑스러워지는 것은 감출 수 없는 나의 감정이었다. 초여름, 또는 초가을 이해랑 선생님은 연극인들을 대거 몰고 양평 좀 지나 있는 본인의 별장산턱에서 마음의 잔치를 베풀었다. 내로라 하는 연극인들을 초대해 마음껏 재능을 펼쳐 보이는 마당을 열어 움츠렸던 도시의 생활과 무대 위에서의 옹색한 마음을 훌훌 털어 보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셨던 듯싶다. 나는 독일에서 귀국해 독일연극을 연 한편씩 무대 위에 올리며 평론을 시작하여 한국연극의 한 귀퉁이를 거들어가기 시작할 때였다.

내가 이해랑 선생님께 오늘날까지도 감사한 것은 달걀 껍데기를 막 깨고 나온 병아리 같은 연극계의 새싹으로 나를 알아봐 주시고 틈틈이 가꾸듯 돌보시며 연극이란 큰 그릇에 채워가시던 큰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해랑 선생님이 왜 한국연극계의 거목이 되시는가를 지켜보며 감사할 수 있었다.

1934년 일본 대학 예술과를 졸업, 1946년 극단 신협을 창단하시고 1954년 예술원 회원, 1965년 이해랑 이동극장을 창립하시고, 예총회장을 5선 역임하신 리더십과 1971년 8대 국회의원을 지내시며 예술계와 정치를 연결하신 이해랑 선생님은 당시의 한국 예술계를 대변하신 모름지기 후배 예술가들의 ‘대’ 선배이었다. 스승으로 왜 내가 그토록 선생님을 존경하며 그리워하는지를 사후에까지도 세 아드님들과 방우영 사장이 이끄는 조선일보와 함께 이어가는

<이해랑연극상>으로 우리들의 큰 스승이심을 보여주고 계시다.

대한민국은 정치와 경제, 산업만이 이끌어 온 나라가 아니다. 연극, 무용 미술 음악 판소리 창극 등 전통예술과 창작분야의 예술들이 소리 없는 가운데 이어지고 펼쳐졌으며 문화예술계에서도 그 발전의 저력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가를 우리는 확실히 보고 깨달으며 이어가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