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책, 마음의 길 내기6. 가벼움과 무거움의 모순과 역설
[예술가의 세상을 보는 창] 책, 마음의 길 내기6. 가벼움과 무거움의 모순과 역설
  •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 승인 2022.09.07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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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저
▲유승현 아트스페이스U대표, 설치도예가

폭우가 쏟아진 올해 여름은 배수의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험하는 계절이었다. 서울의 한복판에서 건널목을 건너는데 몸이 떠내려갈 듯한 물의 흐름을 느꼈다는 게 말이 되는가? 해마다 반복되는 장맛비와 물의 계절은 내년에도 다시 올 거다. 자연재해가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은 아이러니지만 대기권이 불안정할수록 하늘은 깊어만 가기에 책을 읽기 좋은 계절이 살랑살랑 오고 있다. 필자가 속한 독서모임에서 밀란 쿤데라의 장편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를 다시 읽게 되었다. 근 20년 만에 읽은 책의 내용은 예전과 다르게 성숙하고도 묘한 감정이 올라왔기에 이번 칼럼에 등장시켜본다.

체코의 음악가였던 부모를 둔 밀란 쿤데라는 한때 음악을 수학했고 시인이며 소설가이자 드라마작가로도 활동했다. 문학도로 불문학 번역을 한 적도 있으며 영화아카데미에서 일할 정도로 다양한 예술 경험을 지닌 르네상스 형 작가이다. 세계 명작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에서 방황하는 4명의 남녀관계를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하고 있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의미와 무의미, 삶 속에서의 발견되는 우연과 필연, 시간의 흐름 속에서의 반복적인 행위와 윤회적인 시선 등을 ‘사랑’이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풀어낸다. 소설 속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토마시는 운명적 만남으로 자신을 믿고 있는 여자가 부담스럽다. 그러나 늘 다른 여자를 만나고 있는 토마시를 끝까지 믿고 싶은 운명론적 테레자도 등장한다.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는 사비나와 그런 사비나에게 매료된 토마스 네명이며 삶에 있어 가벼움을 향하는 사비나와 토마스, 이들에 비해 무거움을 지향하는 테레자와 프란츠의 이분법적 이야기이다. 관계에 있어 가벼움의 명사, 토마시. 여자와 섹스는 하지만 결코 잠을 자지 않는 토마시는 테레사를 만나 아침까지 손을 잡고 잠을 자게 되면서 모든 것이 변화하게 된다. 책에서 테레사는 무거움을 대변한다. 토마시와의 만남을 운명으로 여기고 그와 사랑을 하지만 토마시가 만나는 여자들에게 질투를 경험하며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사랑을 하기에 미워하는 마음과 질투로 인한 감정의 혼재로 삶의 무게감이 더해가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의 모순과 역설

가벼움과 무거움은 모순과 역설을 지니고 있다. 저자는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인간이 삶의 의미를 찾는 한편 가벼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의 주요 모티브는 *니체의 영원 회귀인데 모든 것이 영원의 책임을 지는 덕에 영원 회귀를 가장 무거운 짐이라고 말했다. 저자의 영원한 회귀에 대한 언급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의 문제를 돌아보게 만든다.우리의 삶은 일회적이며 무거움과 가벼움을 갈등하는 존재로 영원성이 무거움으로 연결되고 일회성은 가벼움으로 표현되는데 이 대립은 맞고 틀리고가 아니며 좋고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벼운 것이 저속한 것이 아니라는 점, 무거운 것이 고상한 것만은 아니라고 저자는 은유하고 있다.바람둥이 토마시는 애인들에게 이런 표현을 한다. 두 사람 중 누구도 상대방의 인생과 자유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우지 않는, 감상이 배제된 관계만이 두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고. 그들은 서로 사랑했는데도 상대방에게 하나의 지옥을 선사했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

책속 니체의 영원 회귀의 주장은 “인생은 한낮의 그림자 같은 것, 산다는 것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우리는 처음부터 죽은 것과 다름없어서 삶이 잔혹하거나 아름답거나 찬란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시대가 급변하더라도 인간은 자신이 열망하는 것을 놓지 않고 그걸 계속 쫓아가기 마련인데 그것을 놓치더라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고 책은 강조한다. 무거움과 가벼움 또한, 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본질 중의 하나인데 테레자는 유년시절 어머니와의 관계로 현재의 성격과 행동을 이루게 되고 상황이 인물을 만들어 낸 것에 반해 토마시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상황을 만들어내는 주도적인 인물로 자신의 성욕을 주체하지 못하고 매번 즐기는 인물로 상반되게 묘사된다. 또 어떤 한 사건이 우연에 얽혀 있다면 그 사건은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는 것일까? 우연의 연속은 필연이고 운명인 건가? 그것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결국 완전한 가벼움도 완전한 무거움도 없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서로에게 흡수되거나 시대적인 상황에 따하 변하기 때문인데 인간의 본질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인생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우리 삶에서 무엇이 무거운 것인지, 가벼운 것인지. 우연과 운명 사이에 대하여, 육체와 영혼, 섹스와 사랑, 일회성과 영원 회귀의 대립에 대해 각자 고민해 보라는 것이다. 우연히 누군가를 만나 평생을 같이하기로 했지만, 운명의 사랑으로 무게를 갖게 되고. 영원한 사랑을 얻고자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테레자의 경우를 보면 그녀의 희생을 무조건 옳다고 할 수만은 없다. 세상의 현상에 딱 떨어지는 정답은 없다. 책의 흐름 중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는 우리의 삶에 아름답고 빛나는 기쁨을 선사하기 때문인데 알고보면 가장 아프고 고통스러운 슬픔을 동반한다.

혹시 어떤 일을 행할 때 답을 몰라서 고민한다면 ‘한번 사라지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인생’ 이 문장을 생각해보자.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라면 답은 있다. 책의 내용이 매우 섹슈얼리티하며 자극적이고 선정적일 수 있으나 인간본질과 내면에 대한 탐구로 풀어가기에 매우 철학적인 책이다. 가벼운 것은 무겁고 무거운 것은 가벼워진다.

*영원 회귀- 니체가 그의 저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내세운 근본사상으로 영원한 시간은 원형을 이루고 그 안에서 우주와 인생은 영원히 되풀이 된다고 강조하는 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