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문제는 밝기가 아니야~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문제는 밝기가 아니야~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2.09.07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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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호롱불에 의지해 생활하던 시절 어두운 골목길이나 광장을 비추던 것은 횃불이었다. 어두웠다 밝아지길 반복하는 횃불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밝게 비추는 면이 좁아 근처 담벼락 아래도 밝게 비추지 못했다. 이후 식물에서 얻은 기름을 사용하기 시작했으나 이전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최초의 가로등은 1897년에 세워진 장명등으로 전기가 아닌 석유를 사용하여 불을 밝힌 등이었다. 이 등이 보급된 이후 사람들은 이전에는 어떻게 밤거리를 걸어 다녔냐는 말을 할 정도로 획기적인 밝기를 제공했고 당시 한성부에서는 일몰 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달이 없는 날에는 반드시 문 앞에 장명등을 걸어두고 불을 밝히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그리고 1900년 4월10일, 최초로 전기에 의한 가로등 3개가 미국 전차회사에 의해 종로에 세워지게 된다.

‘이때의 가로등은 한국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어떤 사람은 개벽 이래 가장 신기한 빛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그 빛을 보고 달아나기도 했다. 평양에서 올라와 이완용의 집에 불려갔던 어느 어린 기생은 그 빛을 보고 기절해버렸다.’ (한국 최초 101장면, 김은신)

유행가 가사에 나와 있듯이 초기의 가로등은 희미했다. 우선 전기공급이 불안정하고 광량도 부족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불량한 조명기구였지만 밤거리 안전을 기대하기엔 충분했다. 형광램프에서 수은램프로 그리고 나트륨램프로의 가로등 광원의 변화는 밝기는 물론이고 효율과 비용의 엄청난 기술적 광원의 진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도시경관적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나트륨램프가 메탈할라이드램프로 교체되면서 였다. 수은램프 아래에서 푸르스름한 빛을 띠었던 가로수가 나트륨등 아래서 주황색을 띠다가 초록의 본색을 찾은 것이 메탈할라이드램프 아래에서 였다. 메탈할라이드램프는 도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요소들의 본연의 색을 찾아주었고 그 결과 밝기도 개선된 효과를 가져왔다. 짐작컨대 이 후엔 ‘희미한’ 혹은 ‘창백한‘ 가로등이란 가사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발달된 조명기술,
밝기나 선명함 기준 판단할 필요 없애버려

최근 도입되고 있는 가로등의 광원은 엘이디램프, 그것은 빛의 질과 양, 효율, 유지보수 등 모든 조명기술의 진화를 가속화하고 획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내고 있을 뿐 아니라 - 엘이디기술의 발달은 아직도 진행중 이다. - 여기에 스마트함까지 얹어 도시의 가로, 보도, 자전거로, 산책로에 도입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더욱 선명해진 거리에서 사람들은 또 다른 방식의 안전하지 못함을 경험한다. 여러 겹의 조명기구 속에서 순간적으로 경험한 과한 밝기는 밝기 적응의 타임을 놓쳐 멈칫하게 만들기도 하고 적당히 어두워 숨을 수 있었던 공원벤치는 이젠 무대처럼 밝혀져 앉아 있기 민망해졌다. 아니 오히려 밝음에 드러난 나에게 뜻하지 않는 위험이 생길까봐 두려움이 생기기도 한다.

모든 것이 드러나는 공원에서 우리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시각적 정보를 하나도 빠짐 없이 보아야하고 그 대신 어둠에 놓인 작은 풀들은 여간해서는 눈에 담기 어려워졌다.

한강공원에 가면 쉽게 이를 경험할 수 있다. 자전거길의 과한 밝음이 공원의 어우러진 나무, 꽃을 어둠으로 몰아넣는다. 야간에 운동기구를 사용하기 위하여는 썬그라스라도 써야할 판이다. 그리곤 주변의 벤치로 돌아올 땐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어둠에로의 적응 기간이..

사회적 기능을 위한 조명설치 기준은 권장조도이다. 도로와 보행로, 자전거길, 공원의 주공간과 산책로, 오픈스페이스 중 광장등 각 공간별 권장조도는 명확하다. 하지만 자전거길 옆의 산책로의 밝기는 각각 어떻게 적용하는 것이 맞을지 조화로운 밝기를 찾는 일은 권장된 바가 없다. 경관조명에 있어서 우선적으로 검토하는 일은 주변의 빛환경이다. 주변과의 관계 안에서 계획을 시작하게 된다. 그런데 때로 아주 가깝게 이웃하는 공간간의 관계, 조화는 간과하는 일들이 생긴다. 즉 밝기 기준에만 충실하게 맞춘 결과 안전하지 않은 환경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도시 야간경관을 위한 조명기구는 밝음을 제공하는 도구에서 나아가 도시 생활에 있어서 필요한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에너지를 공급하며 이정표의 역할을 하는 중요한 플랫폼이 되었다. 발달된 조명기술은 더 이상 밝기나 선명함의 기준에 치우쳐서 보여지는 것을 판단할 필요를 없애버렸다.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도시공간의 기능들에 적합한 보다 합리적인 밝기계획이 가능하도록 가이드 역시 진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는 그의 산문집 ‘그늘에 대하여’에서 양갱이는 어두운 공간에서 먹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뿌옇고 흐린 표면의 색을 겨우 알아볼 정도의 어둠 속에서 양갱이를 먹어야 입에 넣었을 때 그 미끈한 촉감과 입 속에서 녹는 달콤함이 맛에 색다른 깊이를 덧보탠다고 했다.

도시의 조명은 밝기, 권장조도라는 틀에서 이젠 좀 더 자유로워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