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탁의 문화섬 나들이] 창경궁과 종묘 지맥 잇기 90년 만에 완공
[황현탁의 문화섬 나들이] 창경궁과 종묘 지맥 잇기 90년 만에 완공
  • 황현탁 작가
  • 승인 2022.09.0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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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궁궐의 일제흔적지우기 계속해야
▲황현탁 작가

창경궁과 종묘는 원래 연결되어 있었으며, 국왕은 종묘의 북신문(北神門)을 통해 종묘를 참배하였다. 조선총독부는 강제합병 후인 1912년 경성부 시구개수(市區改修)계획을 세우고 종묘 뒤를 관통하는 간선도로 개설을 추진하였다. 순종 등 조선왕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32년 도로를 개통하여 창덕궁, 창경궁과 종묘를 연결하는 지맥이 끊어지고 이 지역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서울시는 2007년 ‘녹지문화축사업계획’을 세워 2010년부터 정비사업에 나서 2022년 7월에 녹지복원사업을 완공하였다. 교통량을 처리하기 위해 터널을 만들고 터널 위를 녹지공원화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원남동 사거리에서 창덕궁 낙선재 앞까지 터널 길이는 340m다. 종묘에는 담장 508m를 설치하였고, 녹지공원에는 일반보행자들을 위한 보행로도 만들어 놓았다. 다만 종묘의 북문인 북신문은 아직 개방하지 않고 있는데, 공사감리단 관계자에 따르면 종묘사직 뒤편에 일반관람객들이 드나드는 것은 신위에 대한 예(禮)가 아니라고 하여 개방하지 않고 있단다. 종묘, 창경궁 관람객들과 녹지공원 일반보행자들을 구분, 관리하는 초소는 이미 설치하여 놓았다.

일본은 1927년 조선왕조의 제일 법궁(法宮)이었던 경복궁 안에 조선에 대한 일제통치요람이었던 총독부청사를 건립한다. 정문이었던 광화문도 당연히 동쪽으로 옮겼다. 이 건물은 해방과 더불어 미 군정청이 사용하다가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되자 정부청사인 ‘중앙청’으로 사용되었다.

▲(좌측부터) 조선의궁궐, 종묘창경궁복원조감도(율곡로감리단제공), 복원지역지도 (사진=황현탁 제공)

6.25 한국전쟁 기간 중에는 수도 서울의 함락과 수복에 따라 태극기를 게양했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는 불운을 겪었다. 1968년에는 광화문이 복원되었으며, 1997년에는 조선총독부청사가 철거된다. 이후 궁궐 내 전각들이 본격적으로 복원되고 있으며, 아직도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 광화문 앞 월대, 궁궐 안 계조당 등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다.

조선시대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동궐(東闕), 경희궁을 서궐(西闕)로 부르기도 했는데, 경희궁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고종 때 임진왜란 후 소실되었던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경희궁의 전각들을 해체하여 재사용하기도 하였으며, 궁터는 조선총독부 소유가 되어 경성중학교로 사용되면서 궁궐이 훼손되었다.

▲(좌측부터) 종묘창경궁연결터널,
▲(좌측부터) 종묘 창경궁 연결 터널, 북신문과 안내초소 (사진=황현탁 제공)

정문인 흥화문(興化門)은 원래 지금의 구세군회관 자리에 동향으로 세워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도로확장으로 뒤로 옮겨졌다가 1932년 조선 초대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찰 박문사로 옮겨 정문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에는 그 자리에 들어선 영빈관,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쓰다가 1988년 현재의 자리에 옮겨 세웠다. 경희궁 안에 있던 경성중학교에서 개교한 서울중고등학교가 1980년 서초구로 이전된 후 궁궐내의 전각들이 보수, 중수되고 있다. 아직도 일제강점기에 파놓았던 벙커는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뒤편 언덕에 그대로 남아있다. 길이 107m, 폭 9.3m, 높이 5.8m, 면적 1,379㎡의 1,2층 구조로 된 벙커는 경성중앙전신국 별관 지하전신국 용도로 1944년에 축조되었다고 한다. 박물관은 특별한 계기에 일반에게 공개하고 있다.

▲흥화문 (사진=황현탁 제공)
▲흥화문 (사진=황현탁 제공)

1909년 창경궁에 동·식물원이 개설되면서 창경원(昌慶苑)이 된다. 국권을 찬탈한 일제의 제안과 기술을 제공받아 설치된 것이다. 궁궐이 유원지가 된 우리나라 최초의 ‘테마파크’로 백성을 위한 놀이공간이지만, 조선왕실에 대한 모욕인 것이다. 이후 1983년 서울대공원이 개장되면서 동·식물원이 그곳으로 이전하고 본래의 이름을 되찾게 되었다. 창경궁은 수년에 걸친 복원 작업을 거처 1986년 일반관람이 재개되었다.

▲지난 1월 대공사중인 광화문 앞
▲월대공사중인 광화문 앞  (사진=황현탁 제공)

광복 후 7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조선의 궁궐들 복원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나라의 정통성을 회복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도시화의 진전으로 많은 구역이 복원을 할 수 없을 만큼 바뀐 곳도 있어 완전한 복원은 불가능하다. 특히 서울의 한가운데 자리한 덕수궁은 대한문이 뒤로 물려 세워졌고 환구단 자리에는 호텔이 들어서 옛 모습을 복구하기가 불가능하다. 완전한 복구는 어렵더라도 역사적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고 후손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은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