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번역부터 새롭게”…6년 만에 돌아온 연극 ‘트루웨스트’
[현장리뷰]“번역부터 새롭게”…6년 만에 돌아온 연극 ‘트루웨스트’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09.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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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까지 대학로 TOM 2관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연극 ‘트루웨스트’가 6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15일 대학로 TOM 2관에서는 연극 ‘트루웨스트’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이날 자리에는 오만석 연출을 비롯해 배우 윤경호, 오종혁, 이종훈, 채명석, 문태유, 임준혁, 최석진, 유현석, 이승원, 김태범 등이 참석했다. 

▲연극 ‘트루웨스트’(2022)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연극 ‘트루웨스트’(2022)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연극 ‘트루웨스트(True West)’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형제가 서로를 질투하고, 증오하고, 동경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본연의 외로움과 이중성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코믹하게 풀어낸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2010년 정식 첫 라이선스로 선보인 바 있는 이 작품은,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의 천재 극작가 샘 셰퍼드가 1980년 발표했다. 매장된 아이(Buried Child)’, ‘굶주린 층의 저주(Curse of the Starving Class)’와 함께 ‘가정 3부작’으로 불리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가정 3부작’은 물질 만능주의로 황폐해진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가족의 붕괴, 해체, 갈등 등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며 비판한다.

윤경호, 오종혁, 이종훈, 채명석이 사막을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의 방랑자 형 리를 연기한다. 문태유, 임준혁, 최석진, 유현석은 시나리오 작가로 성공해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반듯한 동생 오스틴 역으로 출연한다.

▲연극 ‘트루웨스트’(2022)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연극 ‘트루웨스트’(2022)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초연 당시 ‘리’를 연기했던 오만석은 2015, 2016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 연출을 다시 한 번 맡았다. 오만석 연출은 “각색 위주로 참여했던 이전 시즌과 달리, 이번에는 원작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고자 번역부터 새롭게 다시 했다. 리와 오스틴을 맡은 배우들 역시 새로 참여하는 배우들인 만큼, 색다른 각오로 임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트루웨스트’는 사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부조리극의 성격이 담겨 꽤 애매모호한 지점에 있다. 되게 쉽게 보다가도 이게 무슨 내용을 담는 건지, 무엇을 얘기하는 건지 관객 스스로 거리를 두게 하는 작품이어서 매력적”이라며 “각자의 입장과 상황에서 해석할 여지가 꽤 있고 사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심도 있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가볍게 볼 수 있지만 무겁게도 볼 수 있고 제공해 드릴 게 풍부한 작품이다. 사실주의와 부조리의 경계에서 즐겨줬으면 한다”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연극 ‘트루웨스트’(2022)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연극 ‘트루웨스트’(2022)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트루웨스트’는 극 중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제간의 관계를 통해 가족의 붕괴를 간접적으로 다루고 있다. 

‘리’ 역을 맡은 윤경호는 “아버지는 리에게 영웅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동생 오스틴 앞에서 리는 끊임없이 형으로서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 한다. 폭력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동생을 꼬맹이 취급하며 귀여워하는 모습도 함께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아버지와 많이 닮았을 거라 생각한다.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폭력적이었지만, 자유분방함과 거친 면은 리로 하여금 그를 동경하게 만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경호는 “‘리’를 보면 코요테가 생각난다. 인정받고 싶었으나 버림받은 새끼 사자. 결국 사자가 되지 못해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코요테 같다”라며 “아버지가 동경의 대상이었다면, 엄마는 그리움의 대상일 것이다. 집에 돌아온 것도 엄마에 대한 향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들로서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했지만, 크게 한 탕 해서 금의환향한다면 어머니가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컸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오스틴 역을 맡은 문태유는 “1장에서 9장까지 진행되는 동안, 한 인물 안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만날 수 있다. 이는 오스틴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변하게 되는 순간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어머니는 내가 책임져야 하는 고마운 존재, 아버지는 가족을 버린 원망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사실 동경하며 따르고 싶었던 건 아버지였고, 답답하고 짐스러운 것이 어머니의 존재라고 (오스틴은) 생각했던 것 같다”라며 “아버지의 틀니 얘기를 하면서는 울컥하며 공감하지만, 어머니가 치매로 의심되는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일 땐 냉정히 떠날 거라고 말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오스틴과 리 그리고 부모를 바라보는 시점이 극 중 인물 안에서도 달라지는 만큼, 관객분들도 이를 따라가며 보신다면 더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연극 ‘트루웨스트’(2022)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연극 ‘트루웨스트’(2022)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극 중 오스틴은 리를 따라 사막으로 가고 싶어 한다. 오스틴 역의 임준혁은 “이 극에서 오스틴은 ‘여기서 벗어나 사막으로 가고 싶다’는 얘기를 정말 많이 한다. 오스틴이 말하는 사막은 서부라고 생각한다. 그가 어렸을 때 생각했던, 경제적 부흥이 일어나기 전 서부. 거칠고 자유가 있는 곳. 오스틴이 지금 현실에서 벗어나, 짜인 틀 밖에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길 바라는 열망의 표현인 것 같다”라고 밝혔다.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두 형제의 심리묘사와 더불어 리얼한 액션신이 극의 또 다른 볼거리인 만큼, 리와 오스틴의 연기 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스틴 역의 최석진은 “리가 오스틴을 함부로 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의 말과 행동 안에는 오스틴을 다치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숨어있다. 이는 실제 리와 오스틴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일거라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연극 ‘트루웨스트’는 방대한 대사량을 자랑하는 작품이다. 오스틴 역을 맡은 유현석은 “대사량이 워낙 많은 작품인데, 연출님께선 빨리 대본을 (손에서) 놓고, 연습실에서 놀면서 함께 합을 맞추길 바라셨다. 그래서 많은 양의 대본을 빠른 시간 안에 외워야 했다. 오스틴 배우들끼리는 만나면 ‘어디까지 외웠냐’가 인사였다”라며 “오만석 연출님이 굉장히 긍정적이시다. 나는 할 수 없는데 계속 ‘너 할 수 있어’라고 하셨다. 7장을 밤새서 외워 가면, 내일은 8장 하자고 하시더라. 대사를 빨리 외워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지만, 덕분에 함께 연습하는 시간이 더 즐거웠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연극 ‘트루웨스트’(2022)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연극 ‘트루웨스트’(2022) 공연 사진 ⓒ레드앤블루

연출로서 작품을 이끄는 오만석에 대해 동료 배우들은 “배우를 배려하는 연출”이라고 말했다. 오종혁은 “연습 중간에 허리 부상이 있어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 적이 있다. 배우들부터 연출님까지 연습보다 회복이 먼저라며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그러다 다시 연습을 하러 나왔는데 연출님이 대본을 외우고 계시더라. 왜 외우고 계시냐고 물었더니, 혹시 내가 회복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면 그걸 본인이라도 메꿔야 할 것 같아서라고 하셨다. 다른 연출님들이라면 생각하지 못할 부분인데, 배우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 느껴져서 감사했다”라는 마음을 전했다. 

7년 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윤경호는 “평소 이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던 차에, 오만석 연출님의 제안을 받게 됐다. 항상 무대에 서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관객들을 마주하고 내가 실수 없이 연기를 할 수 있을까, 라는 두려움과 너무 하고 싶다는 설렘 속에서 계속 저울질 하다가 이번에 안 하면 나는 영영 도망갈 것 같다는 생각에 출연을 결정하게 됐다”라며 “본인이 (연출로서) 갖고 있는 해석이 있을 텐데, 이를 강요하지 않고 배우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시고, 배우들의 생각을 우선시하는 분이다. 유쾌한 분위기로 잘 이끌어주신 덕분에, 지금 배우들이 행복하게 공연할 수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편, 연극 ‘트루웨스트’는 11월 13일까지 대학로 TOM(티오엠) 2관에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