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서울공예박물관 기증특별전《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 한국 1세대 대표 공예가 생애 기려
[현장스케치] 서울공예박물관 기증특별전《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 한국 1세대 대표 공예가 생애 기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09.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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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지 공예가 작품 및 기록물 기증 기념
박물관 전시1동 3층 기획전시실, 11.27까지
유리지 공예가 유족, ‘서울시 공예상’ 제정 후원 결정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예술, 가족, 생활 속 공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던 유리지 공예가의 기증특별전시가 열렸다. 서울공예박물관(관장 김수정)이 오는 11월 27일까지 한국 현대 금속공예 발전에 헌신한 故유리지(1945-2013) 공예 작가의 전 생애 대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다.

▲유리지, 물장구 I, 1994-95, 은(92.5), 15x8x16cm
▲유리지, 물장구 I, 1994-95, 은(92.5), 15x8x16cm (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이번 특별 전시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는 유리지 작가의 대표작품 및 기록물 기증을 기념해 열렸다. 유리지는 한국 현대공예를 대표하는 1세대 작가로서 1970년대 미국 유학 이후 국내 현대 금속공예의 성립과 발전 과정에 크게 기여한 공예가이자 교육자, 미술관인이다. 또한. 한국 추상미술 1세대인 유영국(1916-2002)의 장녀이기도 하다.

유리지는 작품 활동과 함께 1981년부터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전공 교수로 재직했고, 2004년 우리나라 최초 금속공예 전문 미술관인 ‘치우금속공예관’을 설립해 2010년부터는 관장을 역임하며 한국 현대금속공예를 연구·전시하고 차세대 공예가의 활동을 지원하는 데에 힘 써왔다.

2013년 갑작스럽게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유리지를 기리기 위해, 유족들은 ‘치우금속공예관’을 ‘유리지공예관’으로 바꿔 현재까지 운영해왔다. 또한, 2013년부터는 ‘올해의 금속공예가상’을 제정해 현대금속공예 분야에서 10년 이상 꾸준히 활약해온 중견 작가들을 대상으로 매년 2인의 수상자를 선정하고, 작업을 응원했다.

▲전시장에 설치된 유리지 공예가 젊었을 적 사진 (사진=서울문화투데이)

故유리지 유족, 작품 기증 및 서울시 공예상 후원

전시 개막에 앞서 지난 26일에는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 언론간담회가 열렸다. 간담회에선 전시 개요와 구성을 설명하고, 유리지 공예가 유족이 후원을 결정한 ‘서울시 공예상’ 제적의 대략적인 계획을 발표했다.

한국 추상화가 1세대 故유영국 화백의 가족이기도 한 故유리지 공예가 유족은 이번 기증과 더불어 한국 공예발전에 깊은 뜻을 가졌던 유리지의 유지를 이어 ‘서울시 공예상’ 제정과 운영에 후원 의사를 밝혔다. 이에 박물관은 한국 공예작가의 활동을 지원하고자 노력한 유리지의 뜻을 기려 향후 20년간 우수한 한국공예가를 선정·시상하는 ‘공예분야 작가상’ 제정하기로 결정했다.

유족들은 총 6억 규모의 서울시 공예상의 상금을 기부했고, 앞으로 서울공예박물관은 수상작가 선정, 시상식 및 기념전시 개최 등을 맡아 서울시 공예상을 운영해나간다는 계획을 밝혔다. 공예 재료분야별 세 분야씩 1인 격년 시상한다는 설명이다.

간담회에서 박물관 측은 “내년 하반기 제정 목표로, 올해 안에 ‘서울시 공예상’ 준비 위원회를 꾸려 명확한 계획을 세워 순차적으로 시행사항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속삭임, 1981, 동, 황동, 은(92.5), 문스톤, 사진, 아크릴, 18.5x24x11cm
▲유리지, 속삭임, 1981, 동, 황동, 은(92.5), 문스톤, 사진, 아크릴, 18.5x24x11cm (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취재진에선 유리지공예관의 기증의사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졌고, 앞으로 유리지공예관의 운영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김수정 관장은 서울공예박물관 개관 준비 단계부터 여러 공예가의 작업실과 공간을 찾아다니면서 박물관 운영계획을 밝혀왔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개관 전 유리지 공예관에도 자주 찾아뵀고, 올 여름 지금까지 유리지 작가의 작품과 자료를 관리해 온 유족이 작품 수증을 결정했다”라며 “작품 기증 후에도 유리지공예관은 계속 운영되나, 기념관 형식의 공간으로 바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서울공예박물관이 기증받은 유리지 공예가 주요작품은 총 126건 327점으로 37억 28백만원 상당에 달한다. 기증 작품에는 유리지의 시대별 대표작품과 더불어 유리지와의 협업으로 유자야(여동생, 섬유공예가, 前 고은보석 대표, 現 유리지공예관 관장)가 제작·판매했던 귀금속 장신구와 칠보은기, 황금찻잔 등의 고급 금속공예 제품 컬렉션도 포함됐다.

▲튤립 다기세트, 1988, 은(99), 칠보 (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제공)

공예가 작업실 통한 스토리 있는 전시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는 한국 1세대 금속공예가 유리지의 전 생애를 기리는 동시에 공예가의 삶과 생각을 느껴볼 수 있는 구성으로 기획됐다. 동시에 이번 전시에서는 유리지의 기증 작품을 비롯하여 개관 전후 서울공예박물관에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기증한 이봉주(국가 무형문화재 유기장 명예보유자) 등 금속공예가 9인(김승희(1947-), 김여옥(1945-), 서도식(1956-), 신혜림(1971-), 이봉주(1926-), 정영관(1958-2020), 정용진(1965-), 조성혜(1953-), 최현칠(1939-))의 다양한 작품도 선보인다. 금속공예만이 가지고 있는 미학, 익숙한 듯 낯선 금속공예 제작 과정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획이다.

▲금속공예가 9인의 작업대와 작품 전시 전경 (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이번 전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은 공예가들의 작업대를 전시장으로 직접 가지고 온 것이다. 유리지 외 9인의 금속공예가의 작업대 뿐 만 아니라, 유리지의 작업대도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금과 은을 다루기도 하는 금속 공예는 작업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잘한 가루도 꽤 큰 값을 지닌다. 때문에 금속공예가들의 작업대에는 금가루, 은가루를 따로 받을 수 있는 서랍이나 가죽 깔개 같은 장치를 찾아볼 수 있다. 금속을 자르거나 연마시키기 위해 작품들을 고정하는 거치대 등도 눈길을 끈다.

유리지 작가의 전시는 총 총 4부로 구성돼, 그의 전 생애 작품과 우리의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예가의 역할을 살펴본다. ‘1부. 유리지를 추억하며’에서는 유리지의 우면동 작업실을 중심으로 가족의 이야기와 초기 작품을 소개하며, 그의 작업실을 재현했고, 실제 유리지가 사용했던 작업 도구 등을 선보인다. ‘2부. 바람에 기대어’에서는 1980–90년대 구름, 바람과 바다 등 자연을 추상적으로 형상화한 유리지의 작품을 중정적으로 선보인다. ‘타인을 위한 예술’로의 공예에 충실하고자 했던 유리지의 작품관을 만나볼 수 있다.

▲유리지 작업시 재현 공간 (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제공)

‘3부. 흐르는 물’에서는 생명의 순환에 대한 유리지의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제작된 다양한 장례용구를 선보인다. 유리지는 2000년대 초반 부친 유영국의 죽음을 준비하며 본격적으로 장례의식을 위한 작품을 제작했다. 전시장에 설치된 <상여>는 실제 유영국 작가와 유리지 작가 장례 때 사용한 작품이다.

이 공간에서는 유리지 작가가 생전 마지막으로 제작했던 <기형(氣 形) 붓걸이>이도 만나볼 수 있다. 실제 붓을 걸어서 사용할 수 있는 작품은 유리지 작가가 남동생에게 선물로 준 것이다.

마지막 ‘4부. 고은 보석’에서는 기증자 유자야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운영했던 금속공예 공방 겸 상점의 제작품으로 채워졌다. 유리지의 설계, 자문과 제작 감리를 통해 완성된 뛰어난 조형미의 귀금속 장신구와 칠보은기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대중을 위한 금속 장신구임에도 유리지가 지향한 형상인 자연의 추상성들이 곳곳에 녹아 있다. 은에 칠보 장식을 입힌 주전자 세트, 구절판 등의 식기는 서양의 느낌과 한국적 느낌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이 공간에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고가 작품인 <황금잔>을 만나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금을 재료로 사용한 것 이외에 잔이 입술에 닿는 부분이 굉장히 편안하고 부드럽게 제작됐다는 특징이 있다.

▲유리지, 상여, 2001 (사진=서울문화투데이)

1세대 금속공예가 유리지를 만나고 배우다

유리지의 아버지 유영국 화백은 장녀인 유리지에게, 딸이나 여성으로서의 삶의 책무나 방향보다 ‘공예가’와 ‘예술가’로서의 삶을 이끌어줬다고 한다. 아버지와 딸의 그러한 소통은 이번 전시 1부에서 소개되는 유리지의 가족을 위한 작품과 유영국 작가와 함께 한 드로잉, 아버지를 위한 지팡이 등에서 더욱 깊이 있게 느껴볼 수 있다.

유리지는 구름, 바람, 바다 같은 자연의 형상을 작품 안으로 녹여냈다. 그의 작품 면면에는 생기 있는 곡선이 담겨져 있다. 유리지 작가는 ‘반원’을 자신이 주요하게 사용하는 형상으로 삼았는데, 작품 속에 담긴 공예가의 특징을 찾아보는 것도 전시의 재미를 더한다.

차가운 물성을 지니고 있는 금속 임에도 자연과 가까운 형상과 흐름을 지니고 있는 점이 유리지의 작품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준다. 금속이지만 따뜻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유리지는 자연이나 공간과 어우러지는 외부 조형물 작업도 한 공예가였다. 전시에서는 외부 조형물의 설계도와 사진 등으로 그의 작품 경향을 선보인다.

▲유리지, 유수(流水), 2010, 은(92.5), 금부, 호두나무, 옻칠, 접시-6x50.5x27, 6x54.2x28, 화병-18x17x15cm
▲유리지, 유수(流水), 2010, 은(92.5), 금부, 호두나무, 옻칠, 접시-6x50.5x27, 6x54.2x28, 화병-18x17x15cm (사진=서울공예박물관 제공)

유리지는 서울대 공예교수로 재직하는 등 후대의 금속공예가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지향은 ‘서울시 공예상’ 제정에도 녹아 있지만, 이번 전시 곳곳에서도 느껴볼 수 있다. 박물관은 전시작품 별로 하단에 서랍을 마련해 작품의 설계도나 재료, 공구 등을 함께 전시한다. 작품을 보는 이에게 어떤 방식으로 금속공예가 제작되는 지 선명하게 전달해주는 장치다.

《사유思惟하는 공예가 유리지》는 유리지 공예가의 예술관과 철학 등을 모두 담고 있다. 한 사람이 쌓아온 금속 공예의 역사와 그 역사의 흐름과 방향을 모두 느껴볼 수 있는 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