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세인, 현대공예+현대미술 ‘박성욱·권기자’ 2인전 개최
갤러리세인, 현대공예+현대미술 ‘박성욱·권기자’ 2인전 개최
  • 오형석 객원기자
  • 승인 2022.10.04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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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문화투데이] 갤러리세인이 현대공예와 현대미술, 심미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갤러리세인 기획 프로젝트 12부작 현대공예+현대미술> 릴레이 전시를 기획하였다. 

현대공예 분야에서는 도자, 금속, 섬유, 유리, 옻칠, 목공 등 다양한 기법을 구사하는 공예작가들을 소개해 예술성을 부각시키고, 현대미술 분야에서는 오랜 기간 독창적이고 꾸준한 작업으로 단단히 입지를 굳힌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강효, 신혜림, 오화진, 박기원, 민병헌 등의 작가들로 구성한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한 자리에서 어우러진 공예와 미술을 감상하며, 우리의 일상 속으로 스며들어 온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을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첫 막으로, 현대도예 박성욱 • 현대미술 권기자 작가의 2인전을 개최한다. 깊어가는 가을, 화려한 색채의 향연 속에 향기롭고 따뜻한 차 한잔이 어울리는 계절, 박성욱 도예작가와 권기자 회화작가를 초청해 ‘현대공예+현대미술’의 어울림의 미학을 들여다보며 사색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모든 조형예술 작품의 출발은 ‘손’에서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현대공예와 현대미술에서 손의 노동인 손길, 흔적, 노동이 작품에 고스란히 밴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박성욱 • 권기자 작가는 각각 도자, 회화로 장르가 구분되지만, 손의 노동에서 시작하여 평면과 오브제, 감상과 실용 사이의 경계를 허문다는 점에서 비슷한 맥락을 가진다. 또한 두 작가의 작품에는 시간의 흐름이 스며들어 있어 사물의 본성이나 본질, 자연의 원리를 느낄 수 있다.
‘박성욱 작가’는 자연스럽게 흙물이 흘러내리면서 섞이고 어우러지는 효과를 표현하는 덤벙분청기법으로 도자를 표현한다. 덤벙분청기법은 회흑색의 태토를 백토물에 통째로 담갔다 빼서 표면을 장식하는 기법이다. 자연스레 흘러내린 화장토와 유약이 겹쳐지면서 지난 행위의 흔적과 축적된 시간의 미를 보여준다. 

분청사기를 재해석하는 입체 작업과 분청사기의 편을 그리드 형태로 평면에 고정시켜 완성한 회화적인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우연히 발견한 도자의 조각에서 영감을 받은 도자의 파편들이 작가의 손에서 새롭게 해석되어 새로운 기억을 담은 작품 편(片)으로 완성된다. 하나 하나의 조각들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과거의 시간과 공간 속 편들을 현재의 작품으로 끌어와 한 평면에서 다채로운 미감을 갖게 된다. 

‘권기자 작가’는 다채로운 형태와 색으로 집적된 물감의 찌꺼기들로 축적된 시간의 흐름을 회화에 녹여낸다. 권기자 작가의 말을 빌리면 <Time accumulation>는 계획에 없던 우연의 산물이다. 캔버스의 위쪽에서 아래로 물감을 흘려내리는 작업 과정에서 바닥으로. 흘러 떨어진 물감 찌꺼기들을 다시 작업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캔버스 프레임 밖으로 떨어진 물감 찌꺼기들의 축적은 추상회화의 대표적 표현방식처럼 순간적인 감정과 필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물감 찌꺼기들은 우연한 인연으로 작가의 손을 통해 새롭게 조형화된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흐르고 쌓인 시간을 연상할 수 있다. 인생에서 현재라는 단면은 과거부터 흘러온 시간들의 축적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조각들을 선택 또는 수용하여 현재의 우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작가의 작품은 시간의 흐름 속에 축적된 인생을 반영한다. 물감들의 축적은 시각적 즐거움을 주면서도 말라 굳어진 물감을 펴고 자르고 다듬고 겹쳐 만든 작가의 손의 노동을 통한 감각적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권기자 작가의 회화와 박성욱 작가의 도자는 시간의 집적과 반복을 통하여 물성과 자신의 내면세계를 합일해가는 과정 속에서 사유의 흔적을 담아낸다. 두 작가가 만들어내는 인위적이지 않은 우연함 속 자연의 원리를 천천히 느끼며, 기다림과 순응의 여유로움을 느껴 보자. 이번 전시를 통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우리 본연의 속도를 찾기를 바란다. 또한 도자와 회화, 감상과 실용이라는 경계를 구분하는 관습적 태도를 다시 관조하는 기회로 삼아 보자

□ 평론

김종근 미술평론가

권기자 작품에는 회화의 개념에 대한 화면구성을 거부하는 저항적 시선이 작품 전체에서 일관되게 전형적으로 발견된다. 자연을 주제로 하지만, 그 자연을 한정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좀 더 폭넓은 의미로 확장, 해석하면서 자연을 예술의욕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물감을 흘려 보내는 것이다. 그리하여 화면을 휩쓸듯이 그리기도, 물감을 뚝뚝 떨어뜨리거나 흘러내리며 장엄한 화폭을 연출하는 타시즘(Tachism) 미술에 권기자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합류한 것이다. 권기자의 화폭에 이 물감의 흘러내리기는 최소한의 규칙과 자연스레 맡겨진 형태로 창조되는 순수한 과정을 완전하게 거친다.
다분히 서정적 추상화풍을 떠올리는 우연한 효과, 구름과 같은 이미지들을 화폭 속에 담는 우주의 생성과 순환, 그리고 빛 등을 지속적으로 분명하게 구축하고 제시한다.
그의 의도적 행위는 물감의 우연한 속성과 어울리며 생생한 리듬감 넘치는 형상에서 또 다른 자연속 지층의 단면을 상상하게 한다.화폭에 불규칙적으로 그러나 자연스럽게 그어진 선들은 마치 직조된 반복 무늬의 타피스트리를 떠올리는 의외의 즐거움을 가져다 준다.
그것은 무수히 많은 선들이 한 줄씩 모여 생생한 리듬 층으로 퇴적암처럼 또 다른 내면의 숨결을 보는 듯한 낯선 즐거움이다.
이미 오래전 작가는 작업의 초기부터 끊임없이 모든 생성과 순환, 흐름을 자연의 질서에 두고 그 질서 속에 숨겨진 생명력과 에너지를 드러내겠다는 의지를 밝힌바 있다.
그가 캔버스 안에 생명과 에너지, 존재와 자연의 운동이 공존하는 이 모든 시리즈를 `자연`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전적으로 모두 타시즘에만 의존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바탕색을 칠한 후 다양한 빛의 아크릴 물감을 붓끝으로 캔버스에 조심스럽게 떨어뜨리는 치밀함과 이성적인 감각을 병행한다.

그 “떨어진 물감들이 서서히 흐르다가 맺히고, 맺히다가 흐르면서 덧붙여지고 겹쳐지면서” 아름다운 선들이 절묘한 느낌으로 탄생한다. 이들이 함께 모여 만든 선들이 거대한 파노라마의 리듬감으로 또 장엄함이 연출되는 것이 바로 권기자 작품의 본질이자 현장이다. 그래서 다양한 형태의 색감도, 다양한 재질감, 우연의 효과가 집합해 추상적 형상이 창조된다.

이미 권기자 작가는 “바이털리즘, 우주에서 자연으로 무한 순환하는 강렬한 색채로 필연성과 우연성을 동시에 담아내면서 현대성”이 잘 담겨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럼에도 작가는 의도적인 흘러내리기의 필력과 거친 붓 터치, 붓에서 뚝뚝 떨어져 생긴 물감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변혁을 시도하여 변혁의 찬사를 받고 있다. 흘러내리기에서 절개하는 그 모든 절차의 시각적 효과가 너무나 아름답고 신선함에 나는 거듭 찬사를 표하고 싶다. 만족하지 않고, 거침없는 용기로 채찍질해서 태어난 그 절개의 신작들을 내가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