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9월의 어느 날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9월의 어느 날
  • 윤이현
  • 승인 2022.10.0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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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생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 무의미하게 여겨지곤 한다. ‘태어남은 축하보다는 씁쓸한 격려와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게 더 맞는 일이 아닐까 싶다. 나는 생일이 되면 대단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보다 혼자 편안한 시간을 보내고 그간의 세월을 돌아보는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생일은 더욱 특별한 시간이 될 듯하다. 부모님께서 결혼 30주년을 맞아 내 생일이 낀 2주 동안 해외여행을 떠나시기로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생일에도 저녁 늦은 시간까지 어머니의 일을 맡아서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 시간이 살뜰히 기다려만 진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선물처럼 주어지다니 신선한 한때가 아닐 수 없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집안은 며칠간 시끄러웠다. 여권이 자취를 감춘 탓이었다. 이를 찾기 위해 아버지는 밤마다 손전등을 비춰가며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셨다. 보다 못한 어머니와 나까지 투입됐지만, 여권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간 쌓인 책들과 물건들이 시야를 가로막은 데다 거실은 사방이 책꽂이로 덧대어져서 물건이 숨기에 제격이었다. 여권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우리는 이참에 집안을 정리해보기로 했다. 아버지가 아침에 버릴 물건을 꺼내어 바닥에 쌓아두시면, 나는 그것들을 들고 마당 계단을 내려가 대문을 열고 골목 어귀까지 옮겨 놓았다. 어머니는 거실과 방바닥에 너저분하게 깔린 쓰레기를 쓸어 담으시고 걸레질하기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해묵은 먼지들이 콧속을 파고들며 괴롭히기 시작했다. 초가을의 강한 햇볕에 메말라가는 나뭇잎, 그 아래서 우리 가족은 콧물을 잔뜩 흘려가며 묵은 추억들을 하염없이 정리해 나갔다. 엉킨 먼지와 건조한 바람 그리고 축축한 코. 훗날 20229월의 첫 장면을 떠올려보라면 이 세 가지를 기억해 낼 것 같다.

물건이 정리되고 줄어들수록 새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있었다. 이 집에 이사 온 첫해에 남긴 기록들, 부모님의 상장과 임명장들, 아버지가 화가를 꿈꾸던 시절이 스크랩된 작품집과 돌아가신 할머니의 사진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요일 밤, 정리가 끝날 무렵 부모님께서 내가 인화된 사진 한 꾸러미를 전해주셨다. 거기에는 아주 오래전에 사촌들과 생일 초에 불을 붙여 케이크를 자르던 장면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18년 전의 일이었다. 나는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코에 맺힌 묽은 콧물을 킁킁거리면서도.

네모난 얼굴형에 커다란 눈동자가 빛나던 내가, 짧은 목과 팔다리로 엄마 옆을 꿋꿋이 지키고 있는 작은 영채가 거기에 있었다. 서글픈 희망과 젊음이 가득한 우리 가족 전부가 박제처럼 현상된 사진도 옅은 온기를 머금은 체 쓸쓸히 놓여 있었다. 기억도 나지 않는 참 오래전의 일들이다. 지금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 생일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소중하고 귀한 추억이 되어 남게 될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마도 이 집이 수많은 9월의 가을바람과 햇볕에 메마르고 비틀어질 때 즈음, 버렸던 책의 빈자리가 다시 쌓이고 그 위로 또 다른 기억의 먼지가 수북이 자리를 잡아 다시 코와 목을 틀어막을 때 그즈음이지 않을까 싶다.

올해 9월은 날이 맑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고기미역국과 계란말이를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파란 하늘 아래서 맛있는 케이크를 나눠 먹고 싶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저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더 바랄 것이 없는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싶다. 그런 9월이 온다면. 그렇게 늦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이 올 무렵이면, 서글퍼지는 마음을 내면의 따스함으로 물들일 수 있지 않을까. 9월이 지나면 성숙한 위로를 전할 나를 발견할 수 있게,

 

9월이 지나면 나를 꼭 깨워주세요.’

 

작년에 생일을 기다리며 적었던 칼럼 일부를 발췌했다. 지난해 9월은 다행히 날이 맑았고, 소고기미역국과 계란말이를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바램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케이크를 나눠 먹을 수 있었다.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말해주진 못했어도 말이다. 완벽하진 못했어도 아무튼 나름 쓸쓸하고 따뜻한 위로를 받는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올해 98일에도 역시나 날은 맑았다. 어머니가 미리 끓여두신 소고기미역국을 먹었고, 저녁엔 친구 선호와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며 웃기도 울기도 했었다. 부모님은 무사히 우즈베키스탄에 도착하셨는지 몇 장의 사진을 보내오셨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와 다음 일 년을 버틸 격려를 받는 하루를 보내고, 나 역시 귀가할 수 있었다. 차분한 마음으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노트에 적고 편안하게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하루를 보냈다.

일 년 전의 나는, 사랑으로 깨워지기를 바라며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그러나 지난 22년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더는 9월에 누군가가 깨워주길 기대하지 않는다. 희망에 치여 울고 싶진 않다일어나지 않을 일을 고대하는 건 해맑았던 그 시절에나 가능할 법한 환상임을 나는 알고 말았다. 혼자의 세상에서 깨고 잠자리에 들기를 반복하며 앞으로 남은 무수히 많은 시간을 겪어내려 한다.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아픔과 행복도 기꺼이 받아들이며. 그렇게 아주 먼 날에 오늘을 떠올릴만한 편지나 사진 따위를 보며 추억에 잠겨보려고 한다. 그때에도 나는 여전히 코를 훌쩍이고 있을까? 친구와 울고 웃으며 나눈 고민이 조금은 해결되었을까? 누구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을까? 많은 궁금증을 가슴에 품은 채 오늘도 나는 말 없는 천정을 보며 이불을 끌어와 덮는다.

앞으로의 9월엔 제가 먼저 일어나 당신을 깨워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