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소리꾼 김준수 “창극단 9년차, 여러 길의 최종 목적지는 ‘소리’”
[Artist Interview]소리꾼 김준수 “창극단 9년차, 여러 길의 최종 목적지는 ‘소리’”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10.06 18: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9년차 국립창극단 소속 배우
‘서편제’로 두 번째 뮤지컬 도전, 이달 23일까지 공연
“영역 넓혀 대중과 소리 잇는 매개체 되고 싶어”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2010년 초연된 뮤지컬 <서편제>가 올해를 마지막으로 12년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청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은 어느 소리꾼 가족의 한(恨) 담긴 일생을 다룬다.  소리에 미친 아버지 유봉 밑에서 자란 송화와 동호는 어머니를 잃은 후 유봉을 따라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판소리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집스러운 음악을 강요하는 아버지와 동호는 끊임없이 부딪힌다. 결국 그는 가족을 떠나 밴드를 꾸리고 자신만의 음악을 완성하지만, 마음 한 편에 자신을 아끼던 누나 송화와, 자신이 아꼈던 소리를 간직하며 살아간다. 

▲뮤지컬 ‘서편제’, 동호 役 김준수 (제공=PAGE1)
▲뮤지컬 ‘서편제’, 동호 役 김준수 (제공=PAGE1)

소리꾼 김준수가 창극이 아닌 뮤지컬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오는 23일까지 서울 강남구 광림아트센터 BBCH홀에서 마지막으로 공연하는 뮤지컬 <서편제>에서 주인공 동호 역을 맡았다. 김준수의 뮤지컬 도전은 지난 2월 폐막한 뮤지컬 ‘곤 투모로우’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내년 1월이면 창극단 입단 10년을 맞지만, 뮤지컬 무대는 아직도 긴장되고 떨린다고 말한다. 

창극단에선 일찌감치 간판스타 자리매김한 김준수가 굳이 뮤지컬이라는 낯선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청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곤 투모로우>에 이어 두 번째 뮤지컬 무대인데, 조금 익숙해졌나?

아직 창극만큼은 익숙하지 않다. 지난 8월 13일 <서편제> 첫 공연이었는데, 아직도 무대에 오르기 전 긴장이 많이 된다. 그래도 처음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더라. 창극은 보통 5~6일, 11회 정도 공연을 하고 그 기간 동안 계속 무대에 오른다. 반면, 뮤지컬은 여러 배우들과 같은 배역을 맡는다. 창극에 비해 회차가 많지 않고, 중간에 쉬는 텀이 생기다보니 매번 처음 무대에 오르는 기분이다. 문이 열릴 때마다 손에서 땀이 난다. 

두 작품 모두 이지나 연출과 함께 하고 있는데, 어떻게 처음 연이 닿게 됐는지?

정말 갑자기 연락을 받았다. <곤 투모로우>의 고종이라는 역할이, 한국적인 움직임과 정서를 품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소리꾼의 목소리로 풀어볼 만한 넘버들이 있다며 배역을 제안하셨다. 평소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관심이 있었고,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였기에 망설임 없이 해보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자신이 있어서라기 보단 언제 올지 모르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곤 투모로우>를 하던 중 제안을 받은 <서편제>는 대학생 때 공연장에서 관객으로 관람했던 작품이었다. 너무나 친숙한 ‘서편제’를 다루는 동시에, 소리꾼의 삶을 이야기하는 극이기에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사실 작품 안에서 동호의 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넘버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이번 기회에 김준수라는 배우가 이전과는 다른 색깔로 관객들 앞에 설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열심히 준비했다.

▲뮤지컬 ‘서편제’ 공연사진, 동호 役 김준수 (제공=PAGE1)
▲뮤지컬 ‘서편제’ 공연사진, 동호 役 김준수 (제공=PAGE1)

뮤지컬 창법으로 넘버를 소화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

연출님은 창법에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시김새라든지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넣어서 편하게 부르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우리 소리에도 고유의 본질이 있듯, 뮤지컬 넘버도 정서적으로 관객들에게 잘 와닿을 수 있는 표현 방식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소리를 해온 내가 다른 뮤지컬 배우님들처럼 노래할 수는 없겠지만, 관람하시는데 있어 이질감이 들지 않게끔 편안하게 다가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기존 동호들과는 달리 소리를 진심으로 좋아하지만 유봉에 대한 반발심으로 떠나는 느낌을 받았는데, 캐릭터를 준비하며 연기적으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는지?

동호라는 인물이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20년 넘게 소리를 하며, 스승님으로부터 배운 가르침과 소리꾼으로서 갖춰야 할 격식을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다. 그걸 깨뜨렸을 때 엄청난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그런데 <서편제>라는 극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지금의 소리꾼들은 다양한 것들을 요구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조건 한 길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이자람 감독님이 선보이는 창작 판소리를 비롯해 여러 가지 다양한 형식을 통해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생기고 있다. 

▲뮤지컬 ‘서편제’ 공연사진, 동호 役 김준수 (제공=PAGE1)
▲뮤지컬 ‘서편제’ 공연사진, 동호 役 김준수 (제공=PAGE1)

내가 좋아서 스스로 시작한 소리지만, 항상 대중의 관심과 동떨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외면 받으며 외로움을 느꼈다. ‘왜 우리 소리는 사람들에게 외면 받아야 할까, 관심 밖에 있는 음악을 나는 왜 하고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저 자신에게 굉장히 많이 했다. 아울러, 그 간격을 줄일 수 있는 소리꾼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간절했다. 큰 부담이 있지만 ‘풍류대장’, ‘불후의 명곡’ 등 다양한 매체 활동을 이어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동호 역시 소리가 싫었던 게 아니라, 아버지가 강요하는 소리가 싫었던 건 아닐까. 그 답답한 과정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마음이 나에게 너무나 와 닿고 공감이 됐다. 무대 위에서 눈물도 많이 나는데, 연기 보단 내 안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일 때가 많다. 안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을 원 없이 폭발시키려 한다.

극 중 오디션 장면에서 소리꾼의 면모를 더해 맛을 살리는 게 인상적이었다.

‘스프링보이즈’ 밴드 오디션 장면에서 원래 팝송을 부르는데, 나는 그 전에 소리를 먼저 한다. 연출님의 배려로 생긴 기회인만큼, 짧은 시간이지만 최대한 다양한 우리 소리를 들려드리고 싶다. 처음엔 ‘적벽가’로 시작했는데 며칠 전엔 춘향가의 ‘어사출두’ 대목을 즉흥적으로 했다. 다음 무대에선 어떤 대목을 하게 될지 아직 나도 모르겠다. 판소리 다섯 바탕을 골고루 들려드리는 게 목표다.(웃음)

우리 판소리 안에는 정말 좋은 눈대목들이 많은데, 소리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아예 정보값이 없기 때문에 찾아보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짧게나마 우리의 소리를 선보이면 궁금증이 생기고 이것이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다. 

실제로 뮤지컬 공연을 보시고 창극단 공연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겨, 선생님들께서도 저의 여러 도전들을 좋게 봐주신다. 얼마 전 ‘귀토’라는 작품을 할 때, 한 선생님께서 “준수야, 네 무대를 보고 꼬마 친구가 소리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 왔어. 너한테 너무 고맙다. 네가 앞으로 더 열심히 해줬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말이 정말 큰 힘이 됐다. 내가 더 열심히 해서 우리 소리를 알리는데 좀 더 보탬이 되고 싶고, 어린 친구들에게도 소리를 하면 여러 재밌는 길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뮤지컬 ‘서편제’ 공연사진, 동호 役 김준수 (제공=PAGE1)
▲뮤지컬 ‘서편제’ 공연사진, 동호 役 김준수 (제공=PAGE1)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인 ‘심청가’ 장면에서는 다른 동호들과 달리 북을 치며 추임새를 넣는데, 그 씬을 연기할 때 어떤 마음인가?

본인의 선택으로 인해 사랑하는 누나와 이별을 하게 됐지만, 몇 십 년 동안 누나를 찾아다니는 동호의 심정과 만나지 못 한 사이에 완성됐을 누나의 소리에 대한 궁금증 등 복합적인 여러 감정이 북소리에 담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리워했던 누나의 소리를 나의 북장단과 맞추며 원 없이 놀지 않았을까. 비록 <서편제>의 장르가 뮤지컬이지만, 소리꾼을 다루는 작품인 만큼 추임새가 나오면 좋을 것 같았다. 추임새는 흐름을 깨는 게 아니라 소리꾼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의 표현이다. 막연히 흥을 돋우려는 목적보다는, 누나의 소리가 담고 있는 세월의 감정에 공감하는 의미가 크다. 

어린 나이에 창극단에 입단해 간판스타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데, 그럼에도 대중하고 멀어진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는지?

그렇다. 처음 소리를 배우고 나서 초등학교 친구들 앞에서 ‘흥보가’ 중 놀보에게 쫓겨나는 대목을 부른 적이 있다. 나는 그 대목의 감정에 빠져 눈물을 보일 정도였는데, 친구들은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너무 속상하더라.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소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고,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 것 같다. 뮤지컬이라는 기회가 왔을 때 두려움과 부담감이 물론 있었지만, 소리를 전혀 모르는 사람과 소리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고리가 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을 더 크게 봤다. 다방면에서의 활동을 통해 대중이 국악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뮤지컬 ‘서편제’ 공연사진, 동호 役 김준수 (제공=PAGE1)
▲뮤지컬 ‘서편제’ 공연사진, 동호 役 김준수 (제공=PAGE1)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창극에서,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뮤지컬에서 작품의 중심이 되는 것은 노래이지만 극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기회가 된다면 노래가 없는 연극에도 한 번 도전해보고 싶다. 노래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로서의 모습을 본 관객들이, 내 연기를 보고 ‘소리꾼이라고 하던데, 저 사람의 소리는 어떨까?’ 이런 궁금증과 기대를 자아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역시 소리와 새로운 장르의 관객들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 1월이면 국립창극단 입단 10주년을 맞는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궁금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 내년에 ‘춘향가’ 완창 판소리라는 소리꾼으로서의 도전도 앞두고 있다. 더불어 지금까지 많은 응원을 보내주신 팬분들을 모시고 소리를 들려드리는 자리도 준비하고 있다. 내년 1월 정도가 될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소리’가 흔들리지 않는 소리꾼이 될 것이다. 내 소리가 단단해야 다른 어떤 분야에 도전해도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렇고 10년 뒤, 20년 뒤에도 ‘뿌리가 단단한 소리꾼’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철학이자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