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탁의 문화섬 나들이] 예술이 된 《나의 잠》 전시
[황현탁의 문화섬 나들이] 예술이 된 《나의 잠》 전시
  • 황현탁 작가
  • 승인 2022.10.1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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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제 여러 작가 합동 전시회
상상력 기상천외함 비교할 좋은 기회

사람은 전 생애의 3분의 1을 자면서 보낸다. 그만큼 잠은 삶에 있어서 필수적이고 불가피한 것이다. 잠을 주제로 한 전시회를 한다하여 ‘과연 무엇이 전시될까?’ 궁금했다. 옛날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284’에서 개최되고 있는 <나의 잠>(My Sleep) 전시회(2022.7.20~9.12) 얘기다. 전시장을 들어서니 아직도 그곳에선 입구에 체온측정계를 비치해놓고 있다. 엄격히 입장을 제한했던 지난날의 유산이 되었지만, ‘정상입니다’란 소리를 내어줘 전시장을 당당하게 들어섰다.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2막2장에서 “잠은 모든 것을 정화시켜준다. 잠은 두려움과 걱정거리를 사라지게 하고, 하루를 마감하며, 낮 동안의 일로 인한 골치 아픔을 누그러지게 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준다. 잠은 삶이란 축제의 가장 중요한 자양분 공급원이다.”라고 했던 대화가 떠오른다.

가면을 쓴 마네킹 여러 개가 다양한 포즈로 놓여 진 김홍석의 <침묵의 공동체>란 작품이 천정이 높은 왕년의 ‘중앙홀’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각자 앞에 적어 놓은 설명문을 보니 직업도, 그곳에 온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탈북자, 마사지사, 마술사, 경비원, 가정주부, 무용가, 대리기사, 신분을 밝히지 못하는 자 등 다양하고, 일당을 벌려고, 체험을 위해, 무료하여, 미술가의 요청을 받고 온 사람 등 각양각색이다. 누워서 잠자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쪼그리고 앉거나, 가부좌를 하거나, 한 손을 바닥에 집고 비스듬히 앉거나 ‘눈을 붙이는 방법’도 제 각각이다. 잠자는 시간, 형태가 다를 수밖에 없지만, 여럿이 잠 잘 때는 ‘모두가 침묵을 지켜야’ 함을 웅변하고 있다.

▲김홍석 침묵의공동체 (사진=황현탁 제공)
▲김홍석, 침묵의공동체 (사진=황현탁 제공)

워드 워크스의 작품 전시코너에는 “잠은 존재하는 가장 순수한 생명체이며 잠을 못 이루는 자는 가장 죄인이다.”라는 프란츠 카프카, “잠, 얇은 죽음의 조각들-내가 얼마나 그것들을 혐오하는지.”라는 애드가 앨런 포의 말을 각각 한글과 영어로 적어 놓고는 ‘그는 잠들었다.’라고 일갈한다. <좋을 것 같아요>란 이 작품은 잠과 관련된 몇 가지 텍스트를 만들어 바닥에 전시해 놓았다.

▲워드워크스 좋을것 같아요
▲워드워크스, 좋을것 같아요 (사진=황현탁 제공)

최윤석의 <슬립북>은 사람들이 잠들거나 조는 ‘웃음이 절로 나는’ 자연스런 모습의 사진을 담은 비닐파일 여러 개를 전시실에 놓아두었고, 박가인의 ‘팔뚝에 검은 털이 더부룩한 남자에게 안겨 잠자려는 여인의 예쁜 얼굴’이 등장하는 <갈팡질팡하다>, 옷가지, 서적, 잠자리 용품 등이 널브러진 여성의 방을 재현한 <우사단로에서 먼우금로>란 작품도 쉽게 잠을 연상할 수 있었다.

▲박가인, 우사단로에서 먼우금로
▲박가인, 우사단로에서 먼우금로 (사진=황현탁 제공)

D 콜렉티브의 <더 블루>는 9시의 을지로와 청계천의 가계들 영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문 닫힌 가계모습 이미지가 느린 동작으로 지나간다. 9시에 고정된 시계로 보아 잠자러 간 후의 저녁모습인 것 같은데, 햇빛이 든 오전 9시 가계 모습은 나오면서 사람들의 활동모습은 ‘왜 보여주지 않고 있을까?’란 의문이 들었다.

▲이성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
▲이성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 (사진=황현탁 제공)

김대홍의 <잠꼬대>란 설치작품에서는 소리는 들리는데, 우리말도 아니고 어느 나라 말로 잠꼬대를 하는 지 알 수 없어, 스텝에게 ‘어느 나라 말로 잠꼬대하고 있어요?’ 했더니, 웃으면서 ‘저도 몰라요.’ 한다. ‘잠꼬대’하듯 경구(警句)를 전달하고 있는 유비호의 영상작품 <예언자의 말> 역시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알아들을 수 있는 잠꼬대도 있는데, ….

곰은 겨울잠을 자며, 쓸개와 발바닥이 건강에 효험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곰 술과 쓸개즙이 잠과 무슨 관계’인지, 작가(이원우)에게 묻고 싶었다. 그의 <몸부림>이란 로봇작품은 잠자면서 몸부림치는 행태를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몽유로봇>, <진실의 코> 등은 주제인 잠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알아챌 수 없었다. <진실의 코>란 작품은 코 모형 안에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스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이원우, 곰술
▲이원우, 곰술 (사진=황현탁 제공)

가상현실, 로봇 기술을 이용한 카메라, 반사경이 설치된 이성은의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 삶은 꿈이다>란 작품 앞에 서니 나의 움직임이 시차를 두고 거울에 투영되는 것이 신기했다. 최재은의 설치작품 <새벽 그리고 문명>, 팽창콜로니의 <써기 웻 샌드위치>(Soggy Wet Sandwich), 우정수의 <미래는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심우현의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 등의 작품은 나름대로 잠을 상정하였을 것이나, 혼자서는 작가들의 깊은 뜻을 알 수 없었다.

전시기획자 유진상 교수가 예술 감독을 맡은, 회화는 몇 점 안 되는 설치 위주의 작품을 보면서, ‘아, 잠도 작가들이 상상력을 발휘하면 무궁무진하게 작품화할 수 있구나!’란 느낌을 받았다. 전시장 한쪽에는 드러누워 쉴 수 있는 휴게 체험공간도 만들어 놓았고, 온돌에 비해 ‘정신보다 육체를 더 많이 요구하는 침구라는 느낌이 드는’ 침대도 가져다 놓았다. 또 자는 모습에 따라 성격유형을 판별하는 법, 수면상태 자가진단테스트, 건강한 수면을 위한 10계명 등의 설명문도 걸어 놓았다.

▲나의잠전시안내(홈페이지)
▲《나의 잠》 전시 안내(홈페이지) (사진=황현탁 제공)

매슈 워커(Matthew Walker)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할까》란 책에서 잠은 “우리의 뇌와 몸의 건강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유일한 수단”이라고 한다. 또 ‘수면시간 부족은 면역계가 손상되고 암에 걸릴 위험이 두 배 이상 증가한다. 잠을 짧게 자면 관상동맥이 막히고 허약해져 심혈관 질환, 뇌졸중, 울혈성 심장기능 상실로 이어질 수 있고, 잠이 짧아 질 수 록 수명도 짧아진다.’고 한다. “잠은 학습하고, 기억하고, 논리적 판단과 선택을 하는 능력 등 뇌의 다양한 기능들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고 한다. 잠이 ‘만병통치약’이란 얘기다.

과거 권위주의시절 고문의 한 형태로 잠을 재우지 않는 방법으로 시국사범을 취조, 수사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떠오른다. 전시회를 관람할 때마다 ‘번뜩이는 작가들 상상력’에 감탄한다. 특히 같은 주제로 기획된 여러 작가들 합동전시회는 상상력의 기상천외함을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솔 르위트(Sol LeWitt)가 “아이디어는 예술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The idea becomes a machine that makes the art.)”고 했듯, 예술가의 ‘생각과 상상력’이 새로운 작품을 탄생하게 한다. ‘도슨트 설명을 들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의 잠> 전시장을 나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