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조명의 공공성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조명의 공공성
  • 백지혜 디자인 스튜디오라인 대표, 서울시좋은빛위원회 위원
  • 승인 2022.10.1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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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은 재능과 비전, 책임의 결합으로 인류와 건축 환경에 일관적이고 중요한 기여를 한 생존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특정 건축물에 국한하지 않고 건축가의 건축세계를 평가하여 선정한다고 한다. 올해의 수상자 디에베도 프랑시스 케레는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태생으로, 공동체와 지역주의, 그리고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로 설명되어지는 사회적 건축가이다. 테드 강연에서 그는 그의 유년 시절, 자신에게 고향마을 사람들이 동전 한 닢 씩 쥐여 준 신성한 예우는 평생의 작업 에너지가 되었고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공동체성의 실체를 고유의 필요와 기능에 따른 건축 어휘로 녹여내려는 노력을 해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의 건축의 특징은 진흙에 콘크리트를 섞은 벽돌과 같은 사방에 널린 흔한 재료를 사용하고 자연재 사이로 햇살이 시처럼 쏟아지는, 친근하고 서정적인 공간을 만들어낸다. 또한, 지역 공동체를 설득하여 시공자와 주민이 협력해서 만들 수 있는 공생하는 건축으로 설계하고, 지어진 후에는 공동체 구성원이 직접 유지 관리 할 수 있도록 교육까지 해준다.

이러한 주민의 참여에 의한 지속 가능성은 도시경관사업에서 매우 필수적인 부분이다. 골목길 담벼락 도색이나 화단, 쉼터 조성 등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관리하지 않으면 낡아 흉물로 전락하거나 쓰레기더미로 변해버린다. 따라서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도시 경관사업은 프로젝트 초기부터 주변 거주민이나 상인들을 참여시켜 적극적인 협력을 이끌어 내고 있으며 경관협정을 맺어 사후 유지관리의 주체가 되도록 유도한다.

야간경관은 담벼락 도색작업이나 화단조성사업이 가지고 있는 주민 참여의 필요를 모두 가지고 있다. 설치된 조명기구는 시간이 흐르면서 언젠가는 그 수명을 다하게 되며 연출이라도 들어가면 그것을 운용하는 주체가 반드시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전문 관리자의 인건비나 에너지 사용에 대한 비용도 지속적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사용자의 관심, 비용, 어느 것 하나만 없어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

코로나라는 역병은 해외에 나가는 기회를 차단했지만 그만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관자원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 여행객이 늘며 밤까지 머물게 하여 경제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야간명소 만들기가 한창이다. 이러한 야간경관 명소화 사업은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경관적 가치를 발굴, 재평가 받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과감히 투자된 초기비용이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면 유지 관리가 어려워 금방 매몰비용이 되어 버리기도 한다.

안타까운 일은 야간경관의 사업 방향이 지역공동체의 실체나 지속 가능함과는 거리가 멀게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디자인 추세가 고유의 필요와 기능에 따른 공동체성을 담아내고 공생과 지속가능함을 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여전히 일시적이고 유행에 따른 관광 상품을 양산해 내고 있다.

"조명계획, ‘아름다운 어둠’ 만드는 노력"

계곡의 출렁다리는 주변이 캄캄하여 볼 것 하나 없어도 색색으로 조명을 밝혀 생태계를 위협하고, 수목이 풍부한 공원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명은 사라지고 구경거리용 조명이 현란하게 반짝거린다. 주변의 경관이나 지역 공동체의 이야기를 담은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만약 그러한 노력을 했더라면 이렇게 모든 출렁다리가 똑같을 수는 없다.

강이나 호수를 가로지르는 교량의 조명도 크게 다르지 않다. 유지보수도 만만치 않은데 미디어보드가 되어 어디서 누가 보는지 상관없이 의미 없는 콘텐츠 영상을 표출한다. 다리 고유의 형태적인 특성은 온데간데없이 묻혀버려 어느 지역의 다리인지 어떤 개념을 담아 디자인 된 건지 알 수가 없다. 전국의 다리 야간이미지는 서너가지로 통일되고 만다.

조명기술의 발달로 훨씬 풍부한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만큼 빛이 주는 고전적인 기능 , 형태를 강조하여 드러내고 보이는 것의 위계를 만들며 매번 다르게 보여져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경험이 어려워졌다.

조명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건축주로부터 미디어파사드를 포함한 조명계획을 해줄 것을 요구받는 일이 빈번해졌다. 미디어파사드라는 현대 도시의 매력적인 야간경관요소를 계획하는 것은 당연히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프로젝트에 따라서 건축주에게 다시 한번 고려해 볼 것을 조언한다. 주변 빛환경과 어울리지 않거나 - 주변이 너무 밝아도, 또 너무 어두워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 이미 건축적으로 완성도가 높아 미디어파사드라는 펑면의 도화지가 디자인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위험이 있거나 아니면, 일년에 1억 이상의 미디어 파사드 유지관리비를 과감히 투자할 수 없다면 다시 한번 고려해 보시라고 이야기 한다.

잘 디자인된 조명만으로 건축물의 가치를 드러내고 명소화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조명을 계획한다는 것은 빛공해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사실 방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람의 안전, 보안 그리고 매력적인 빛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므로 해가 되는 빛요소를 애써 계획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아름다운 어둠”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을 한다. 밝아서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 어두워도 편안하다,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공간, 현란한 매력이 아닌 가식 없고 우아한 도시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는 도시의 밤을 만들어 내고 싶다.

야간경관에 관여하는 모든 사람들은 조명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성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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