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류의 예술로(路)]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한국행정의 마인드셋
[장석류의 예술로(路)]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한국행정의 마인드셋
  • 장석류 예술경영비평·연구자(행정학Ph.D)
  • 승인 2022.10.1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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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류 예술경영비평·연구자(행정학Ph.D)

고정 마인드셋(Fixed mindset)과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

얼마 전 중학교 3학년인 딸 아이의 중간고사 기간이었다. 시험 결과가 좋으면 상기된 목소리로 먼저 전화가 온다. 그렇지 않으면 전화기는 조용하다. 그런 날은 오늘은 원하는 만큼 결과가 안 나왔구나 한다. 시험이 끝나고 아이의 자가 채점된 시험지를 한번 훑어보았다. 자신있게 동그라미를 그린 문제가 있고, 사선이 찍 그어져 아쉬움이 담긴 문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맞은 문제와, 틀린 문제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다.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딸 아이가 일생을 살아가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석학인 캐럴 드웩은 오랜 연구를 통해 단순하지만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한다. 마인드셋이 많은 것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질은 타고 난 것이라는 믿음이 바로 고정 마인드셋이다. 지능, 개성, 도덕성이 정해져 있다면 이왕이면 충분히 보유하고 있는 듯 보여야 한다. 그래서 고정 마인드셋은 똑똑해 보이려는 욕망으로 이끈다. 실패는 가치가 없으므로 도전 상황을 피하려 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성공에 위협을 느낀다. 이에 비해 성장 마인드셋은 당신이 현재 가진 자질이 단지 성장을 위한 출발점일 뿐이며, 노력이나 전략, 또는 도움을 통해 얼마든지 길러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성장 마인드셋은 배우려는 욕망으로 이끈다. 도전 상황을 받아들이고, 실패와 비평으로부터 배우며, 다른 사람들의 성공으로부터 영감을 얻는다(Carol S. Dweck, 2006). 부모들이 자녀를 칭찬할 때, 결과 중심의 고정 마인드셋이 아니라 성장 마인드셋을 이용해 과정에 대해 칭찬하면 아이의 성장에 확연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연구결과들이 많다.

행정이 가진 마음가짐은 고정 마인드셋이 강할까, 성장 마인드셋이 강할까?

이러한 마인드셋의 관점에서 행정을 본다면 행정은 고정 마인드셋이 강할까, 성장 마인드셋이 강할까. 행정이 만나는 분야는 다양하다. 행정은 그 다양한 분야에 대해 제너럴리스트의 성향으로 자신의 분야를 담당한다. 행정인이 성장해 갈 때, 만나는 평가는 많다. 개인이 받는 성과평가, 내가 소속되어 있는 팀과 조직이 받는 평가, 그리고 각종 감사 등을 통해 일의 결과들을 피드백 받는다. 또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통해서도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런 평가들은 대체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눈에 띄는 결과에 대한 평가이지 과정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못 받는다. 그래서 행정인은 낮은 평가 점수와 실패라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 자신의 능력이나 자질이 부족했다는 쪽으로 마인드셋이 작동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고정 마인드셋은 ‘과정’을 즐길 수 있도록 놔두지 않는다. 당장 ‘결과’부터 내놓으라고 닦달한다. 모든 상황이 평가의 대상이 되니, 별것 아닌 것을 쥐고도 엄청난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상대를 속이기도 한다. 줄을 타고 나를 보호해줄 우산을 찾기도 하고, 좀비가 되어 남 탓을 하며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사람을 물기도 한다. 이러한 고정 마인드셋 토양에서 길러진 행정인은 ‘나를 더 성장하게끔 해주는 사람’보다는 ‘자신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사람’을 더 선택하게 된다. 특히 고정 마인드셋이 강한 유형이 리더가 되었을 때 주변을 추종자로 채우면서, ‘배우려 하지 않는 자’가 되는 현장의 사례는 적지 않다. 실패로부터 배우거나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자신의 자존심만을 찾으려고 한다. 조직이 현재 가진 마인드셋 정도를 측정해볼 수 있다. 생각보다 고정 마인드셋을 경계하며, 성장 마인드셋을 가진 행정인도 많다. 하지만 행정의 기질이 기본적으로 도전과 비판에 대해 방어적인 고정 마인드셋이 강한 것도 사실이다.

축적의 시간을 허용할 수 있는 정책의 믿음

행정이 헌법과 법률로서 맺어진 사회계약에 따라 두 아이를 만났다. 한 명은 문화예술이고, 한 명은 문화산업이다. 내가 너에게 귀한 국민의 세금을 얼마나 많이 지원했는데, 하면서 매번 결과를 가지고 평가하며 두 아이를 만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한 명은 답답해서 못 살겠다며 집 나가 독립하겠다고 하고, 한 명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알아서 잘하고 있으니 간섭 좀 하지 마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못난 행정은 집 나가면 고생이라고 소리를 지를 수도 있다. 얼마 전 문화부는 안타깝게도 성장하는 고등학생이 그린 카툰에 대중문화산업과에서 협박성 보도자료를 내었다.

마인드셋은 사람이 가진 믿음의 힘을 밝히고자 하는 전통적 심리학의 계보를 잇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행정의 마인드셋은 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얼마나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행정 또한, 믿음을 제대로 받으면서 성장하지 못해 누구를 믿어보는 마음가짐이 어려울 수 있다. 성장 마인드셋 이면에는 믿음의 힘이 있다. 믿음이 아닌 의심을 전제로 한국 행정이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것은 아닌지 질문해봐야 할 때이다. 행정이 정책의 과정에서 예술인을 믿지 않으면, 예술인도 행정을 믿지 않는다. 어쩌면 한국행정과 문화예술은 서로를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고정 마인드셋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모른다. 행정이 문화예술, 과학기술 분야를 만나는 것은 국가의 창의성을 마주하는 영역이다. 창의성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창의력을 기르는 최고의 요소’에 대한 의견이 대체로 일치한다. 성장 마인드셋에서 길러지는 ‘인내심’과 ‘회복력’이다. 문화행정의 요체는 결국 축적의 시간을 담아낼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하고, 믿음을 가지고 이를 가꿔가는 힘이 아닐까 한다. 믿음의 힘을 가진 정책이 문화와 예술, 그리고 국가의 창의성을 성장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