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 일본속 우리 역사 이야기]홋카이도 마츠마에 센넨지에 묻혀진 동포이야기
[이수경 일본속 우리 역사 이야기]홋카이도 마츠마에 센넨지에 묻혀진 동포이야기
  • 이수경 도쿄가쿠게이 대학 교수
  • 승인 2022.10.14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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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못한 동포’를 기록하여 기억하며 기리는 마음으로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이수경 도쿄가쿠게이대학 교수

일본 각지에는 아직도 유골이 남겨진 채로 역사 속에 잊혀져 가는 동포들이 많이 있다. 일본의 근대국가 형성 속에서 파생된 제국주의와 일제강점기, 그리고 무모한 중일전쟁, 가혹한 군국주의의 희생이 된 식민지의 가난하고 힘없었던 동포들의 억울한 삶의 흔적은 일부 시민들의 노력으로 기록되고 추모되고 있으나 아직도 숱한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한 조상]으로 잊혀져 가고 있다.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을까?
살아 남은 가해자는 역사 수정과 은폐에 급급하지만 죽어야 했던 망자는 억울함은 커녕 그 존재 조차 기억되지 않고 있다면 그 통한과 설움은 어디서 보상을 받아야 할까? 매번 현장 조사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그 중에서도 작년에 홋카이도와 동북지역 전역 조사를 하다가 홋카이도 마츠마에의 유명 사찰이 간직한 조선인 징용노동자의 사망자 명부( [과거첩])를 접하면서 알게 된 동포들의 흔적, [돌아오지 못한 조상]을 애타게 기다렸고, 그 분들을 기억하는 후손들이 계실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이 지면을 통하여 소개하려고 한다.  

1938년 4월1일에 공포한 [국가총동원법] 실시 이후, 조선의 노무 동원은 할당모집(1938년 5월~1945년), 국민징용(1939년 7월~1945년), 관알선(1942년 2월~1945년) 등으로 구분하게 되는데, 일본 고용주가 요구하는 조선인 인원수를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가 조정·배당하는 형식을 취하였기에 숱한 동포들이 중일전쟁 참전 병력의 대체인력으로 동원을 당한다. 1939년9월 말부터 홋카이도, 치쿠호(筑豊큐슈), 사가(佐賀), 이와키(常磐・北茨城地域)탄광 노동자 모집이 시작되었고,  9월말에서 10월초에 걸쳐 조선인 전시 노동력 2002명이 부산항을 출항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전시 노무자들은 한국과 일본, 남 사할린에 동원된 현황만 보아도 7,524,709명에 이른다.

전시 체제하에서 일본이 패망하는 1945년까지 동포들이 일본에 가장 많았던 해는 징병령과 여자정신근로령이 공포된 1944년으로, 1,936,843명에 이른다. 대규모 노동력은 탄광, 댐, 군수 산업체, 비행장, 광산, 도로 철도 공사 등 다양한 형태로 동원되었고, 열악한 환경과 성과를 서두르는 노동의 착취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다.

홋카이도 유일한 성(城) 마을인 마츠마에 지역의 정토진종(浄土真宗)계 사찰로 유명한 센넨지(専念寺)에 묻혀진 한국인들. 그들도 엄동설한의 환경 속에서 비인간적인 학대 노동 속에서 목숨을 잃은 징용자들이었다.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사찰의 입구로 들어서면 오른 쪽에 마을 사람들이 만든 순난자 위령비(일본어 및 한글 혼용), 그 위령비 좌우로 영어와 중국어로 된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가운데 순난자 위령비는1941-1945년의 2차 대전 때 마츠마에 지역의 군수물자 운반용인 구 국영철도 마츠마에선로 공사에 강제로 연행되었다가 사망한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들의 명복을 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1985년 5월3일 건립).

이 마츠마에선로 공사에는 조선인 노동자나 중국인 노동자도 1000명 정도가 동원이 되었는데, 전시물자 운반을 위한 단기간 건설을 서두르던 중에 가혹한 환경으로 약 50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 중의 11명이 현재 센넨지에 묻혀져 있다.

이 사찰에서 모시는 망자를 적은 과거첩 (過去帳)에는 속세 이름인 속명과 달리 계명 앞에 석(釋)자를   붙이고 있다.  필자는 후쿠시마   노리시게(하코타테 한일친선교류회장) 주지승의 제공으로 과거첩에 기록된 11명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과거첩 속의 통한
전쟁 말기의 마츠마에선로 완성을 서두르던 1944년 (쇼와 19년)의 과거첩에는 한반도 출신 조선인 등의 표기로 10명이 기록되어 있고, 이름도 생년월일도 본적도 미상이지만 같은 고용업체주에 고용된 조선인 池原丁福와 金海四龍이 같다는 표기(々)로 그 10명 옆에 기록되어 있고,당시의 창씨개명(지정복 혹은 김사룡 등)을 감안하면 조선인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1명, 합계 11명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명단은 필자가 과거첩을 옮겨서 작성한 표이다.

전쟁 말기의 시대 상황 탓인지 극히 간단한 기록만 되어 있기에 향후 자세한 출생지나 창씨개명이 아닌 본명 등을 호적에서 확인하는 등의 작업이 필요하다.참고로 센넨지는 37년간을 동포들과 일본 시민들과 함께 법요식을 열어 왔으나 아직까지 유골 반환을 요구하는 유족이 없었다고 한다.
이 과거첩에서 보듯이 공사 업체주는 주로 오이가와와 이와이, 다테이시가 공사를 맡고 있다. 오이가와(及川)와 오이가와(老川)로 오기가 된 것은 당시 시체를 옮긴 사람들로부터 업체 이름을 전해 듣기만 하였기에 들은 대로 기록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조선인 노동자 이름(張本正雄, 金城聖浩, 朝本淳浩) 기재 페이지 윗 쪽 메모에는 「1944년 8월23일에 반도인 유골 3개 분을 갖고 돌아갔다. 이것으로 반도인 이와이구미 사람의 유골은 전달 종료함. 공사업체 두령으로 부터 약소하나마 잘 부탁한다며 사례를 받았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당시 공사 중에 죽은 사람들의 임시 장례식을 치룰 곳으로 이 사찰을 택하였다고 할 수 있다.  

■동포들의 위령제를 지내는 시민들의 모임
전쟁의 잔인함으로 인해 이 같은 억울한 피해자들이 다시는 나오지 않도록 평화를 기도하며 망자의 넋을 기리는 법요식을 올리는 것이 사람된 도리라고 생각한 당시의 주지승 후쿠시마 엔세이 (福島円成, 후쿠시마 노리시게의 조부)의 뜻을 받든 마츠마에쵸 주민들과 재일코리안(한국계, 조총련계 포함)은 1985년 5월3일, 평화 헌법을 기리는 날에 매년 센넨지에 모여서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현재는 그의 손자인 하코다테 한일친선협회 회장을 겸하는 후쿠시마 노리시게(福島憲成, 1947년생)주지를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과 마츠마에불교회 등이 협력하여 매년 위령제를 치르고 있다. 일본인은 물론, 한국계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망자의 넋을 기리는 시민 모임의 행사가 37년간 한결같이 홋카이도 해변가의 고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후쿠시마 주지승이 필자가 2021년 연말에 기획했던 [다문화공생 학술 심포지엄]에서 남긴 말이다. 

■위령비 건립으로부터 37년.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마츠마에쵸에는 한 사람도 없다. 불교회도 민단・조총련도 세대가 바뀌어 건립의 취지나 바램도 희미해지고 참배자도 줄어드는 속에서 앞으로 위령비를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위령제를 어떻게 계승해 갈 것인지가 커다란 과제가 되고 있다. 

홋카이도에서는 많은 유골 반환이 종교단체 및 시민단체에 의하여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센넨지에서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갈등과 대립의 한국계와 조총련계를 아우르며 일본인 시민들이 모여서 37년에 걸쳐 전쟁 반대와 평화를 갈구하는 시민들의 결의의 장을 만들어온 것이다.하지만 후쿠시마 노리시게 주지승도 75세의 고령자이고, 전쟁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물론 지역 주민들의 감소, 시대의 풍화로 인한 위령제의 향후 계속 여부가 염려되고 있다. 그렇기에 전쟁의 실태와 생명의 존엄성, 인권 의식을 학습해 온 전후 차세대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기억 및 기록 작업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법요식 개최에도 한계가 있는 만큼, 그동안 유골을 맡아온 사찰과 한국의 유족 및 관계 기관이 대화를 통하여 그들의 유골을 고향으로 모시는 방안도 모색해 보는 작업도 필요할 것이다. 위의 명부에서 보듯이 그들의 주소나 창씨개명에서 본명을 추측할 수 있는 만큼, 그동안 축적된 데이터로 유족 찾기에 노력하여 억울하게 끌려가서 단 하나 뿐인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분들의 넋이라도 추스리는 것이 근대사를 청산하고 미래를 향하는 우리가 취해야할 도리가 아닐까?

오랫동안 시민들이 지켜 온 노력에 이제는 양국의 정부가 평화 해법으로 답해주길 기대하면서 이 글을 맺으려한다.  

*참고로 이 글은 2022년 6월에 발간된 다음 책에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수경「근대 일본의 제국주의 행보와 전후 평화 지향의 시민력-시민들의 조선인 노동자 기록과 추모-」동의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편『동아시아연구총서 제8권 재일코리안 사회 형성과 시대적 표상』박문사,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