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비평]창작오페라 '순이삼촌', 검붉은 눈물은 평화의 꽃이 되다
[공연비평]창작오페라 '순이삼촌', 검붉은 눈물은 평화의 꽃이 되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22.10.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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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걸친 대작.음악.연출.출연진들의 혼신을 다한 무대
이은영 서울문화투데이 발행인 겸 대표
이은영 서울문화투데이 발행인 겸 대표

‘그날, 음력 섣달 열여드렛날 동백은 노란 꽃술 속에 처절한 검은 핏물을 꼭꼭 눌러담았다. 검붉은 비극은 여러 날, 아주 많은 여러 날에 걸쳐 제주 전역에서 일어났다’ 제주4.3을 다룬 장작오페라 <순이삼촌>을 보고 나오면서 떠올랐던 말이다. 

지난 9월 3일과 4일 양일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올려진 소설가 현기영 원작의 <순이삼촌>은 관객들에게 제주4.3의 짙은 아픔을 전이시켰다. 그동안 이데올로기로 파생된 어쩔 수 없는 한 사건으로만 치부돼 왔던 4.3의 아픈 진실이 예술로 승화되면서 관객들에게 그 실상이 생생히 전달됐다. 공연장을 나서는 관객들의 눈시울은 붉어져 있었고, 가슴 먹먹한 감동이었다고 했다. 

총 4막으로 이뤄진 <순이삼촌>은 1948년 제주 조천면 북촌리에서 벌어진 토벌대의 집단 학살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을 그렸다. 예술총감독에 강혜명 소프라노, 최정훈 작곡, 제주교향악단(지휘 김홍식)과 제주합창단을 비롯해 전원 4.3희생자 유족들로 구성된 제주4.3평화합창단, 극단 가람, 밀물현대무용단, 어린이클럽 노래하자춤추자(클럽 자자)등 230여명이 출연하는 대작이다. ‘어진아’, ‘살아시난 다 살아진다’를 비롯 ‘예나제나 죽은 마을’, ‘이름 없는 이의 노래’ 등 주요 아리아와 프롤로그, 합창곡으로 이루어졌다. 

 ‘4.3 민주항쟁사를 널리 알린 작가’, ‘제주를 대표하는 화가’로 불리는 강요배 작가의 작품도 배경과 막간의 스크린으로 삽입돼 무대효과는 물론 작품의 깊이를 더했다. 1980년대 후반, 한겨레신문에 현기영의 연재소설 <바람 타는 섬>의 삽화를 그리면서 현기영 소설과 인연을 맺었다. 작가는 몇 년 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때의 연재를 통해 ‘4.3 항쟁은 강렬한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이후 1995년 제주4·3항쟁 연작으로 전시를 열어 미술작품으로 4.3을 처음으로 알렸기에 이번 오페라에 참여한 의미가 크다. 

“인간으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참혹한 고통...” 막이 오르기 전 프롤로그로 불려진 테너 이정원의 ‘독창, 그날의 기억’은 제주4.3의 아픔이 이 한 곡으로 응축됐다고 느껴졌다. 공연 주최측은 작가 현기영에 대한 헌정곡이라고 밝혔다. 그 누구도 감히 4.3에 대해 말하지도, 글로 쓸 수도 없던 엄혹한 시절, 현기영이 글을 통해 세상에 알림으로써 4.3은 공론의 장으로 나오게 됐다. 이로 인해 작가는 모진 고문과 감옥살이, 책의 판매금지까지 당했다. 노래는 그가 용기 내어 집필할 당시 느꼈을 고뇌와 고향 제주의 아픔을 알리기 위한 처절한 심정을 녹여냈다.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은 원작이 문학적으로도 빼어난 작품으로, 이에 충실한 것 만으로도 절반의 성공이다. 작품은 원작을 잘 녹여냈다. 제주방언을 생생히 살려낸 대본, 제주의 자연과 당시와 현재의 생활상과 문화를 아리아와 대사 등 여러 장치를 통해 오페라 <순이삼촌>은 날아 올랐다.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의 총감독이자 주연 '순이삼촌' 역을 맡은 강혜명 소프라노.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의 총감독이자 주연 '순이삼촌' 역을 맡은 강혜명 소프라노.(사진=제주4.3평화재단)

오페라는 현기영 선생의 잔잔한 나레이션으로 비극의 서막을 알린다. 소설 《순이삼촌》의 한 대목으로 관객들을 그날의 현장으로 들어서게 했다. 

1막 ‘태사룬 땅을 밟다’는 주인공 상수의 아리아 ‘예나제나 죽은 마을’로 시작한다. 상수 역의 테너 김신규는 4.3 유족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아리아를 부르는 그의 눈시울이 유난히 붉어보였다. 그의 아리아는 1막에 이어 4막 마무리까지 안정적인 노래로 흡인력이 있었다. 큰아버지 역의 베이스 심기복의 아리아 ‘죽어도 벌써 죽었을 사람’은 묵직한 슬픔과 비장함을 잘 드러냈다. 

2막 ‘북촌, 이승과 저승사이’는 전쟁같은 모진 고난의 시간이다. 까마귀의 흉물스러운 소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토벌대인 서북청년단이 들이닥칠 것을 예고하는 징조이자, 곧 무참한 학살의 상징이었다. ‘까마귀=토벌대’라는 중의적 의미도 담았다. 공포스런 현실의 전조곡인 까마귀 소리는 ‘그날’ 비극의 서막이었다. 뒤이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소리는 한순간에 비극으로 돌변한다. 극명한 반전으로 참혹함의 효과는 극대화됐다. 순이삼촌의 옴팡밭 학살장면의 광기어린 총소리가 난무한 가운데 먹잇감을 발견한 수많은 까마귀떼의 요란한 날개짓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특히 순이삼촌이 죽은 아이들을 발견하고 부른 ‘광란의 아리아’는 외마디 비명으로. “아아아아아....아흐~~~~”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슬품에 울음마저 제대로 울지 못 하는 어미의 처절한 표현은 단연 압권이었다. 오페라 총연출이자 순이삼촌 역의 강혜명은 이 부분을 작곡자에게 집요하게 요구해 지난해 공연부터 들어갔다고 했다. 탁월한 곡과 표현이었다. 

2막의 끝부분의 ‘살아시난 다 살아진다’. 할머니역의 메조소프라노 최승현의 비통한 아리아는 죽은 자에 대한 애통과 살아남은 자의 고통의 언어로 깊은 울림이 있었다. 

3막 ‘1948년 마침내 해제된 소개령’. 3막 초입의 아이들의 2인극은 ‘살아시난 다 살아진다’라는 비통한 아리아처럼 산 사람들은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이들을 통해 부각시켰다. 아이들은 공포의 순간을 잊고, 천진하게 배고픔을 잊기 위해 좋아하는 음식 이름을 대며 논다. 이 장면을 통해 전체적으로 극의 무거움을 잠시 덜어내 활력을 주는 동시에, 자연스레 제주 향토음식이 소개된 것도 유의미했다. 

잠시의 평화는 순이삼촌의 옴팡밭으로 이어진다. 동네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서도 집단학살로 시체가 즐비했던 자신의 옴팡밭에서 구덕 속 아이를 돌보며 농사를 짓는 순이삼촌. 두 아이의 돌무덤을 쓰다듬으며 살아남은 자, 또 다른 생명인 뱃속 아이를 위해 순이삼촌이 모진 삶을 견뎌왔던 것을 설명해 준다. 가슴을 짓누르는 그 날의 공포와 아픔으로 환청과 환각에 시달리던 순이삼촌의 그동안 이해 못할 여러 일들의 실마리가 풀린다. 이 장면에서 고통 속에 죽어간 원혼들의 무용 퍼포먼스와 까마귀떼의 등장은 앞서 언급한 토벌대의 상징으로 장치해 일관성 있는 연출로 손색이 없었다.

오페라 '순이삼촌'의 한 장면.(사진=제주4.3평화재단)

4막, ‘넋은 넋반에 혼은 혼반에’. 순이삼촌이 약을 먹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순간 총소리가 울린 것은 30여년 전 이미 그는 죽은 목숨이었다는 것을 역설한다. 이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어 푸른 대나무에 죽은 자의 영혼을 상징하는 기매(넋전)를 만장처럼 달아 휘날리며 등장한 문석범 휘어퍼포먼스의 “휘어~휘어~~~”는 짐승의 울부짖음 그것이었다. 살풀이 춤과 함께 기매(넋전)이 무대 중앙에 늘어뜨린 진혼의 입체적 연출은 산자의 통한과 회한을 나타내기에 더없이 훌륭했다. 무대의 피날레는 합창곡 ‘이름없는 이의 노래’가 울려퍼진 가운데, 희생자들의 이름을 자막으로 올려 무고한 희생을 기억하고자 했다. 

오페라는 전반적으로 잘 짜여진 스토리와 전개, 가수들과 배우, 음악 모든 면에서 훌륭했다. 아리아들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데 한 몫을 단단히 했다. 음악과 효과음, 합창단의 앙상블, 무용, 기매(넋전)퍼포먼스는 탄탄한 구성으로 공포와 고통, 철저히 강요된 침묵의 한을 입체적으로 잘 표현했다. 

가수들과 배우들의 노래 ·연기도 탄탄하고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순이삼촌>은 ‘오페라’라는 방식을 취하고 있지만, 장르적 특성보다 음악과 연극적 요소가 어우러졌다. 때문에 실제 학살 장면에서 장교도 가수에서 배우로 바꿨다고 한다. 그 효과는 톡톡히 나타났다. 장교의 연기는 얄미울 정도로 일품이었다. 고모부역의 바리톤 김성국은 제주방언과 이북사투리를 교차해 가며 구사했다. 이북사투리가 유족들에게 트라우마로 작용한 부분이 가수들의 연기에서도 잘 표현됐다. 아이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매 장면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역할 연기를 잘 유지해 냈다. 

오페라 '순이삼촌'의 다양한 장면들.(사진=제주4.3평화재단)

무대의 배경과 오브제도 빈틈없이 꽉차게 만든 연출의 치밀함이 돋보였다. 특히 옴팡밭 뒤의 팽나무를 세운 것은 아주 훌륭한 무대연출로 꼽을 수 있겠다. 팽나무는 제주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주의 상징적인 나무로 참혹한 역사의 현장을 똑똑히 나이테에 기록해 놓았을 것이다. 팽나무에게 말을 거는 바람에게도 이를 전했으리라. 음향과 조명은 불온한 징조의 긴장감을 높이고 시공간감을 살리는데 적절했다. 

그럼에도 몇 몇 거슬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오페라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마이크와 MR반주 사용, 3막의 다소 산만한 구성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미한 지적일 수도 있겠지만 순이삼촌의 아리아 중 “어진아...내 아이들아~” 이 부분에서 ‘내 아이들’보다 ‘내 새끼’라고 표현했으면 자식잃은 어미의 감정 극대화로 흡인력이 더 있을 것 같다. 대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교훈을 좀 더 다른 기법을 사용할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 봄직하다. 이런 부분들에 대한 개선들이 있다면 더 완성도 높은 작품으로 자리매김 할 것 같다. 현기영 선생의 바람대로 일본과 미국까지 전세계 무대에도 당당히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세계사를 돌아보면 우리와 같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곳들은 도처에 있다. 우리 근현대사에도 몇몇 사건들이 존재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러한 사건들에 대해 가장 널리 환기시키고 기억하게 하는 것은 예술의 힘이다. 그래서 예술로 화해와 치유,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는 제주4 ·3유족들의 의지로 만들어진 이번 <순이삼촌>에 큰 박수를 보낸다. 원작자인 현기영 선생에게는 존경과, 작품을 만들기 위해 고생한 제작진과 출연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이 원고는 제주4.3평화재단의 계간지 《4.3》(9월호)에도 함께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