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한국인의 풍류와 엇박자의 멋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한국인의 풍류와 엇박자의 멋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2.11.09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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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뜻하지않은 참사로 꽃다운 나이에 이 세상을 떠난 젊은 영령들의 평안함을 빕니다 -
사람들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단조로운 일상으로 보이지만 그 안의 내면의 흐름을 살펴보면 어찌 그리 다양하고 다차원적이며, 사람의 수만큼이나 각양각색임을 인지할 때에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하물며 한국인의 모습 속의 다양함은 더 나아가 세계 속의 자리하고 있는 각국의, 각인종의 문화와 그 표현의 양상을 볼 때에 그 다양함이 배가해 우리를 매료시킨다.

특히 그들의 일상을 통해 쌓여 이루어낸 언어와 문학, 음악에 실려 표현되는 춤과 노래, 그것이 바탕이 되어 파생되는 여러 형태의 예술, 시대에 발맞추어 발전하는 2차, 3차원의 예술, 그 형태와 발전의 양상이 다양함은 말할 것도 없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내려오며 각 시대가 파생시켜온 다양함의 모습은 각양각색이다. 특히 각 민족이 시대를 거쳐오며 나름의 문화예술 속에 만들어 온 풍류, 시간의 쌓임과 더불어 변화되어, 풍류의 모습은 그 민족의 품성과 역사를 이어가며 그들만의 독자성을 지닌다. 세계 속의 문화의 다양성을 무늬로 엮어 넣으며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가며 온통 다양하고 다채로운 세상을 유지하는 것이다.

여기에 새롭게 세상에 떠오르는 K-문화, 한국인의 한 문화는 세상을 열광시키며 한국인의 신명과 그 멋진 절제의 멋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풍류의 진면목을 느끼게 해준다. 세상이 새롭게 떠오른 한류를 즐기며 환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풍류의 진면목은 한국인의 자유분방한 신명의 활력과 조선시대 고매한 궁중문화 속에서 다져지고 다스려진 절제와ㅡ성리학의 고매한 정신으로 다스려진 절제의 승화된 정신력으로 무장해서 한국문화의 두 축을 이루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문화, 큰 한문화의 두 축을 굳이 나누어 설명하자면 민속의 신명과 자유분방한 큰 스케일의 탈춤과 굿의 재현 속에서 감지되는 신명은 한문화의 흐름 속에 큰 축을 이루며 활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왔다. 그러한 민속의 자유분방한 활력은 근 오백 년의 세월 속에 다져진 고매한 정신의 궁중문화 속에 굽이굽이 다져졌다. 억압에 가까운 절제의 굴레 속에 다져지며 활력과 절제의 양면성을 유지하며 한문화의 두 축을 조화롭게 유지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K문화, 한문화, 또는 칸 문화 <한극>의 두 줄기 큰 흐름의 기본인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한문화의 풍류 속에 두 큰 줄기의 축을 우리는 신명과 절제로 설명할 수 있다. 아울러 이 두 축의 양극성을 절묘하게 엮으며 자연스러우면서도 그 활력을 놓치지 않는 방편으로 우리는 우리 음악의 엇박자의 근원에서 그 힘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악기 중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며 우리 음악을 이끌고 있는 장구와 태평소의 소리를 들을 때 , 이 엇박자의 멋을 감지하지 못하면 한류의 근본을 감지하기 어려운 것이다. 아울러 풍류의 진면목도 놓치며 그 근본을 찾지 못하는 채 헤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민속의 악기로 그 근본을 지속하며 장구를 배우거나 피리 대금 등을 배울 때 우리 풍류의 근원인 엇박자와 정박자의 관계를 잘 터득하며 배우면 그에 따르는 춤이나 다른 류의 음악을 빨리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박자를 지키며 정박자의 멋을 최대한으로 살린 남미의 탱고 춤에서 정박자의 백미를 엿보는 것이다. 요즈음 한국인의 새로운 유행을 가져온 남미의 춤, 쟈이브, 차차차, 탱고 등을 보면 스페인의 플라멩코를 뺨칠 만큼 정박자의 근본과 기틀을 능가하는 또 다른 형태의 풍류에 열광하는 것이다.

1996년 베네수엘라에서 ITI 총회가있을때 경험을 적어본다. 당시 세계 ITI 회장으로 김정옥 회장을 등극시키기 위해 한국 ITI는 만반의 준비를 하여 갔다. 참가 인원도 많았다. 그 백미는 국수호춤단과 함께하여 대단한 환영과 극찬을 받았다. 그리하여 남미의 축을 이루고 있는 베네수엘라 음악 교사들이 우리 춤의 엇박자를 배우기 위해 일주일의 코스를 열었을 때다. 남미의 정박자를 배우고자 한 한국의 춤꾼들은 남미의 정확, 단호한 정박자를 익히는데 땀을 흘리는 반면 베네수엘라 음악교사 출신들은 우리나라 엇박자를 익히는데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두 손 번쩍 들며 포기하는 진풍경을 경험했다. 인간도 식물과 같이 박자감도 몸에 익혀 타고난 듯 살아가는 것임을 절감하였다.

이제 우리 풍류의 근원을 터득하였으니 한류의 근원의 힘이 어디에 기인하고 있음을 제대로 파악하고 그 힘을 이제 제대로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의 <한극>, 한문화, K 문화의 기본을 돈독히 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예술교육이 어떻게 설정되어야 함을 다시 돌아볼 때다. 한 문화, 한극, K 문화의 기본 설정을 다시 하며 한문화의 풍류의 근원을 살펴 새로운 한문화 <한극>의 지표를 올바로 설정할 때라고 본다.

이는 앞으로의 한국문화의 올바른 방향을 세울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K 문화를 찬양한다고 들떠 다시 어영부영한다면 진정한 한국의 한문화 <한극>의 뿌리는 제대로 찾지 못하는 채 우리 교육 속에서 우리 풍류의 고매함은 그 뿌리를 다시 잃은 채 또다시 긴 세월을 헤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