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김주홍의 [Live], ‘삶’과 ‘소리’의 진솔한 결합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김주홍의 [Live], ‘삶’과 ‘소리’의 진솔한 결합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2.11.0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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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진도에 가선, 노래 좀 부른다는 말은 삼가야 한다. 예전부터 전해온 전라남도 세 지역과 연관한 말에 덧붙여서, 진도를 꼭 집어넣어야 딱 맞다. “여수에서 돈 자랑 말고, 순천에서 얼굴 자랑 말고, 벌교에서 주먹 자랑 말고, 진도에선 노래(자랑)하지 말라!” 

진도는 소리의 고장이다. 1980년대 중반, 민요를 채집하는 팀들과 함께 전라남도의 여러 곳을 돌았다. 다른 지역서도 노래 잘하는 어르신이 많았지만, 진도에서 만난 어르신들은 모두 다 대단했다.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몇 분은 명창이라고 해야 할 수준이었다. 

진도에서 들었던 소리 중에서, 조공례(曺功禮, 1925~1997)의 ‘남도들노래’는 잊을 수 없다.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인지리. 교육방송 프로그램 ‘어린이 국악교실’(1991년)의 구성작가 겸 리포터로 찾았다. 조공례 명창댁 마루에서 들었던 노래는, 내가 세상 여러 곳에서 들었던 노래와 다르고 좋았다. 판소리와 다른 들노래의 맛을 어떻게 말할까? 판소리가 분장을 많이 한 배우의 모습과 같다면, 들노래는 화장하지 않아도 민낯의 생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김주홍의 국악내력 

김주홍 (노름마치예술단 예술감독)은 진도 출신이다. 김주홍 [Live] (2022. 11. 4. 서울남산국악당)의 공연을 보면서, 나는 오래도록 내 마음의 어딘가에 존재했으나, 그동안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진도사람의 풋풋한 노래’를 다시 접한 기분이 들었다. 진도의 아마추어 토속노래를 기반으로 해서, 거기에 프로페셔널의 기량이 합쳐져 있었다. 마음에 오래도록 봉인(封印)되었던 진도 특유의 정서가 확 느껴져서 내가 지금 진도 어디쯤 와 있는 기분 마저 들었다. 

김주홍은 원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판소리를 전공했다. 그러나 일찍이 풍물에 재주가 있었고, 학교에 들어오기 전부터 전문예인으로 활동했다. ‘이광수와 굿패 노름마치’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1994년 ‘국악의 해’의 이들이 떠오른다. 이광수명인을 중심으로 김운태, 한용수, 김주홍, 이봉교 등이 어우러진 팀이었다. 이 때 공연을 할 때 태평소를 불었고, 때론 뒷풀이 자리 등에서 노래로 합류한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장사익이다. 1997년경부터였을까? 김주홍은 후배와 함께 사물놀이 형태의 노름마치를 만들었다. 그렇게 사반세기가 흘렀다. 

젊은 김주홍은 김덕수명인과 이광수명인의 대를 이어서 풍물을 가지고 세계의 곳곳을 돌아다녔다. 2000년대 이후, 세계의 월드뮤직 관련 페스티벌에 일찍 참여해서 길을 닦아놓으면서 큰 성과를 낸 팀으로 ‘김주홍과 노름마치’를 가장 먼저 뽑아야 한다. 2010년대, 세계 곳곳의 월드뮤직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이 한국에서 여러 팀 중에서 가장 사랑해서 초청한 팀이 노름마치라는 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김주홍의 이번 공연은, 김주홍의 노래를 듣는 자리였다. 김주홍은 무대에서 자신의 앞에 늘 있던 장구가 없어서 허전하고 불안하다고 말했지만, 장구를 버린 그의 노래 속에서 그의 삶이 느껴졌다. 공연의 타이들의 [Live]는 그가 들려주는 노래의 생음악이기도 했지만, 그 노래 속에는 그간 그가 살아왔던 모든 것들, 곧 그의 삶 [live]을 느낄 수 있었다.  

김주홍이 무대에서 노래하면서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진도에 계신 김주홍의 아버지가 혹시 내가 예전에 만났던 그 분이 아닐까?’ 이런 착각을 하면서, 진도사람의 정(情)이 느껴지는 노래에 빠졌다. 그러면서 ‘소리꾼 김주홍’을 ‘소리꾼 장사익’과 비교해보고 싶어졌다. 오래전 내가 이런 말을 했다. “대한민국에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한국적으로 노래하는 이는 장사익이다.” 노래에 등급이 있다면, 장사익은 이제 저 맨 위에 있고, 김주홍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한국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건 ‘국악적’인 것과는 다르다. 전통음악의 특성을 드러내는 노래라기보다는, 한국인의 정서에 부합하는 노래라는 뜻이다. 

장사익의 충청도느낌, 김주홍의 전라도느낌 

장사익이 ‘충청남도적 느낌’이라면, 김주홍은 ‘전라남도적 느낌’이다. 한국이 오래전 도시화되어서 지역성은 거의 사라졌지만, 이렇게 두 명의 소리꾼이 자신이 태어난 기반의 정서를 기반으로 노래를 한다는 것이, 매우 대단하고 매우 고맙다. 

장사익을 ‘삼식이’라고 한다면, 김주홍은 ‘용팔이’였다. 장사익이 ‘놀고 싶은’ 사람의 노래라면, 김주홍의 노래는 한 때 ‘놀아 봤던’ 사람의 노래다. 장사익의 소리가 찔레꽃과 같이 순수하다면, 김주홍의 소리는 목화꽃(綿花) 같다고나 할까? 장사익의 노래가 ‘토속적 순수’에 기반을 한다면, 김주홍의 노래는 ‘토속적 에로’(?)라고도 이름 붙이고 싶다. 김주홍은 목화밭도 가보고, 물레방아간도 가본 경험이 있는 남녀상열지사의 은밀한 즐거움이 잘 담긴 노래였다. 

장사익의 노래 ’아버지‘가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회한(悔恨)’이라면, 감주홍의 노래 ’아버지의 춤‘은 달랐다. 살아계신 아버지께 쑥스러워 못했던 사랑과 존경의 고백을, 진도 앞바다를 향해서 외치는 ‘살가운 고성(高聲)’이었다. 

김주홍이 노래를 부를 때, 자꾸 시선이 가는 쪽이 있다. 바로 장구를 치는 이호원이다. 노름마치로 뭉친 두 사람은 어떤 인연을 어떻게 표현할까? 마치 삼촌과 조카, 형님과 동생, 스승와 제자 등을 모두 포함하고 모두 떠난 음악적 교감이 느껴졌다. 김주홍이 장구를 치지 않으니, 이호원의 장구가 더욱 김주홍의 노래에 찰떡처럼 달라붙는 느낌이 더 했다. 대한민국에 장구 잘 치는 사람이 많아도, 김주홍 노래의 장구반주로서는 이호원이 최고 였다. 

앞으로 장사익처럼, 김주홍도 매년 소리판을 열었으면 좋겠다. 장사익의 공연에서 늘 만나는 음악팀이 존재하는 것처럼, 김주홍의 공연에서도 이번 공연팀들이 늘 함께 하길 바란다. 노래의 편곡은 이준삼(베이스)과 오영빈(건반)이 나눠서 한 듯 한데, 그들은 김주홍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소릿길을 잘 아는 듯 했다. 장사익의 소리판에 ‘해금하는 하고운’이 있다면, 김주홍의 소리판에는 ‘가야금하는 오혜영’이 있다는 말도 가능하게 했다. 이렇게 다른 국악기가 두 사람의 다른 매력을 더 증폭시켜주는 느낌이다. 

한국노래의 역사의 맥락을 살핀다면, 장사익은 가요 베이스(기반)요, 김주홍은 민요 베이스임이 확실하다. 장사익의 노래가 고복수, 남인수에서 출발해서 배호로까지 이어진다면, 김주홍은 임방울 김연수에서 출발해서 조상현명창으로 이어지는 맥이 느껴졌다. 물론 소리의 기량으로 따진다면 윗분들이 김주홍보다 더 웃길(윗길, 높은 수준)이지만, 담고 있는 정서가 그렇다는 얘기다. 

김주홍 [live]에서 원 픽을 꼽자면 ‘적벽가’다. 이유는 무얼까? ‘적벽가’를 잘 부르는 판소리 전공자는 참 많다. 그런데 그들의 노래와 다른 것들이 존재하기에 그렇다. 그의 노래는 판소리 전공자들이 때론 간과하는 셋이 확실하게 ‘있었다’. 첫째, 여유가 있다. 둘째, 호흡이 있다. 셋째 대사가 있다. 여유가 없이 계속 이어 붙이려 하는 것, 호흡을 무시하고 소리로만 계속 밀어붙이는 것, 가사의 전달을 간과하면서 자신의 소리 기량을 뽐내려 하는 것, 이게 요즘 일부 판소리전공의 문제인데, 그들이 김주홍의 ‘조자룡 활 쏘는 대목’을 들려주면서, 원래 소리는 이래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