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무용단 창단 60주년 기념공연, ‘2022 무용극 호동’
[이근수의 무용평론]국립무용단 창단 60주년 기념공연, ‘2022 무용극 호동’
  •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 승인 2022.11.09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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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무용극’을 보며 다시 생각하는 국립무용단의 정체성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국립무용단이 창단된 지 60년이 되었다. 기념공연으로 선택된 작품은 ‘2022 무용극 호동’(10,27~29, 해오름극장)이다. 임성남에 이어 1973년부터 예술 감독을 맡았던 송범이 안무한 ‘왕자 호동’(1974)을 현대식으로 비틀어 재창작하면서 ‘왕자’란 단어를 빼고 ‘미래의 무용극’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도미부인’, ‘은하수’와 함께 국립무용단의 역사가 된 대표적인 무용극을 현재로 소환하면서 원작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기획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국립무용단이 바라보고 있는 미래의 무용극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고구려 대무신왕이 낙랑을 병합하기 위하여 아들 호동과 낙랑공주(서희)의 결혼을 이용한다. 전쟁의 목적은 달성하나 공주는 부왕인 최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호동은 자결한다는 역사적 사건에 바탕을 둔 것은 원작과 동일하다. 달라진 것은 원작이 삼국사기(고구려 본기)에 기록된 사건을 충실하게 극화한 데 비해 ‘2022 무용극 호동’은 사건 자체보다 그 뒤에 숨겨진 인물들의 심상을 표현하려 시도했다는 것이다. “호동만이 왕자가 아니고 권력자인 왕의 명령에 따라 전장에 나서 목숨을 바쳐야 하는 백성들이 모두 호동이다. 서희는 호동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나(alter ego)를 상징한다. 자명고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내면의 울림이고 이를 찢는 행위는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것이 대본과 연출을 맡은 ‘이지나’가 해석한 새로운 텍스트고 3인의 공동안무자(정소연, 송지영, 송설)가 동조하고 있는 작품의 메시지다. 대본과 연출을 국립무용단원들의 몸을 빌려 표현하고자 한 65분 공연은 8개 장면으로 구성된다. 

상체를 벗은 한 남자가 무대 한가운데 누워 몸을 뒤척이고 있다. 부왕의 전쟁에 반대하면서 고뇌하는 왕자 호동의 모습이다. 꿈틀거리며 그가 일어나고 좌우로 등장한 무더기 남녀들 속에 섞여 함께 춤을 춘다. 백성이고 군인인 무용수들은 모두 간편하게 재단된 흰색 옷을 입고 있다. 군복을 연상시키는 단출한 복장에서 시작해서 디자인을 조금씩 변용하지만, 의상은 모두 흰 빛 일색이다. 야수와 같이 가슴을 드러낸 우람한 체구의 대무신왕이 등장한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무대는 전율하고 사람들은 기계처럼 움직여진다. 호동과 서희가 부왕들의 뜻에 따라 맺어지지만 그들의 춤은 제한적이다. 무대를 압도하는 캐릭터는 절대군주인 대무신왕이고 호동과 서희가 함께 어울리는 춤은 곧 무리가 이루는 군무 속에 묻혀버린다. 송곳처럼 공중에서 낙하하는 수많은 원통형 철제 막대, 좌우에서 비스듬히 내리꽂히는 강렬한 조명 빛, 전장의 북소리를 연상시키는 짧은 비트의 전자음악 소리는 절대적인 왕권이 지배하는 억압된 사회를 보여준다. 갈등을 겪는 사람들의 심리상태보다 왕권 자체가 강조되면서 심리극을 전개하고자 한 기획 의도는 찾을 수 없다. 무용수들의 감정이 배제된 춤으로 채워지는 무대에서 군무의 매력은 빛을 잃고 무용극의 클라이맥스조차 모호해진다. 

대본과 안무자의 신선한 의도와는 달리 ‘2022 무용극 호동’은 다음과 같은 약점을 드러낸다. 텍스트 면에서 볼 때 이지나의 대본은 역사적 기록과 어긋난다. “만약 당신이 능히 나라의 무기고에 들어가 북과 풀피리를 베고 부수면 나는 예로써 맞이하겠지만 그러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않겠소”, “호동은 왕에게 권해 낙랑을 습격했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호동의 행적이다. 16세 소년을 부왕과 갈등을 겪는 반전론자로 변신시킨 것은 비현실적이기도 하지만 역사의 왜곡 혹은 원작의 훼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무대 구성 요소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음악, 의상, 조명, 춤 등에서 한국무용이 갖는 전통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뮤지컬 무대나 현대무용화를 지향하고 있다. 미래의 한국무용이 이렇게 변화해야 한다는 것을 납득하기는 쉽지 않다. 제작 방식 면에서 볼 때 이 작품은 ‘토너먼트’(2014, 안성수, 정구호, 윤성주)와 ‘맨 메이드’(2018, 신창호, 김상덕)를 떠올리게 한다. 두 작품 모두 외부 안무자와 협업을 통해 완성된 작품으로 국립무용단 춤의 원숙함과 세련된 아름다움이 아쉬웠던 작품들이다. 관객 서비스 면에서 볼 때 팸플릿에서 주역의 캐스팅은 감춰지고 게스트로 참가한 연극배우(지현준, 대무신왕)만이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 관객과의 소통은 작은 곳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인식해야할 것이다.  

‘고전적이면서도 미래적인 드높은 격조 속, 날카로운 감각이 번뜩이는 미래의 무용극’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우며 국립무용단이 그려보고자 한 미래의 무용극이 이런 모습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60년간 쌓아온 국립무용단의 역사를 존중하고 소중한 재산인 고전들을 클래식발레의 레퍼토리처럼 온존하면서 창의적인 한국무용 작품들을 덧쌓아 올리는 것이 예술 감독의 책임일 것이다. 1974년의 ‘왕자 호동’을 ‘2022 무용극 호동’으로 개작한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의 판단은 국립무용단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발레단, 국립국악원무용단, 서울시립무용단 등 국공립단체들이 병존하고 있는 시점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다시 생각해보는 60주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