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용산 이태원 참사, 우리는 왜 음악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가
[주재근의 얼씨구 한국음악과 문화]용산 이태원 참사, 우리는 왜 음악을 다시 생각해야 하는가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11.0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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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근 이화여자대학교 초빙교수

“음악교육의 목적을 단순히 듣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다양성을 알게 하는 것, 이것이 곧 앞으로 어떻게 올지 모르는 비극의 재현을 막을 수 있을 것”

10월 29일. 용산구 이태원에서 벌어진 국가 대참사에 국민들은 또다시 비통에 잠겨야 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집주인은 소는 왜 잃었으며 외양간은 어떻게 고쳐야 할지에 대해서 명쾌한 해답없이 누가 소를 잃게 했는지 책임자 처벌에만 급급해 하는 모양새다. 아무 소용에도 없는 죽은 뒤 처방전인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만 잘 쓰면 국민들이 이해하고 넘어가겠지 하는 요량만 궁리하는 것 같다. 대참사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은 소방, 안전 등 구조적, 상황적인 원인 규명에 집중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욕구와 불만 등에 대해서 심도 있는 분석과 해결 방법 등의 의견들이 다양하게 도출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정부는 서둘러 국가애도기간을 선포함과 동시에 전국의 지자체에서 주최하고 있는 축제들과 공연행사들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게 하였다. 그리고 이제 아무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축제와 행사를 재개하게 하고 있다. 같은 공연행사라 하더라도 대중가수들의 공연은 허용하고, 프로야구 등 스포츠 경기는 지속시키는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한 해명도 없다.

우리나라 문화와 체육과 관광을 전담하는 정부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코로나19에 이어 속시원하게 예술가 입장을 대변해 주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처사가 되고 있다.

동양의 고전인 『예기(禮記)』 악기(樂記) 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세상을 다스리는 음악은 편하고 즐거우니 그 정치가 조화를 이루게 되며
 (治世知音 安以樂 其政和) 
 세상을 어지럽히는 음악은 원망하고 성내게 하니 그 정치를 어긋나게 한다.
 (亂世之音 怨以怒 其政乖)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음악은 슬프고 생각하게 하니 그 백성이 곤궁하니라.
 (亡國之音 哀以思 其民困)

서양에서 음은 ‘Sound’, 또는 ‘tone’ 등 기능적으로 인지되고 있는 반면에 동양에서는 세상을 다스리는 음악 ‘치세지음’, 세상을 어지럽히는 음악 ‘난세지음’,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음악 ‘망국지음’ 등 음의 본질, 음의 존재원리를 사유케 하는 형이상학적으로 인식하였다.

또한, 국민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자 수단이라 할 수 있는 정치와 음악을 연결시킴으로서 음악의 효용성과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조선조 성군인 세종은 한글을 창제함과 동시에 백성들과 함께 즐기고자 ‘여민락(與民樂)’의 음악을 세종장헌대왕실록에 악보로 수록하였다. 성종조 때 최고의 실용음악이론서인 『악학궤범』 서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그 같지 않은 소리를 합해서 하나로 만드는 것은 임금의 인도 여하에 달렸다. 
 인도함에는 바른것과 사특한 것과의 다름이 있으니, 풍속의 성쇠 또한 여기에 달렸다. 
 이것이 악의 도가 백성을 다스리는데 크게 관계되는 이유이다. 

 
세상의 여러 음악 가운데 어떤 음악이 백성들에게 좋은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하는 것이 조선의 왕들에게 숙제였던 것이다. 조선조 후기 영조는 『대악전보(大樂前譜)』와 『대악후보(大樂後譜)』(1759년)를, 정조는 『시악화성(詩樂和聲)』(1780년)을 편찬하게 하였다. 조선이 문화국가로 많은 문화유산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음악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통해 좋은 것을 보는 것,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좋은 음악을 듣는 것이다. 태아때부터 유아기를 넘어 초등학생까지 정서발달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음악을 비롯한 예술교육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의 근본적인 원인 중에는 심리적 결함과 결핍, 불균형 등에 있다. 

그 모든 것이 곧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나만이 아닌 우리를 생각하고 서로 배려하고, 나눌 수 있는 마음 가짐을 가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예전 선비들은 입신양명(立身揚名)에만 집착하지 않고 먼저 자기를 수양한 뒤 다른 사람을 이끌 수 있는 수기치인(修己治人) 하는 것을 더욱 중시하였던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도구로 거문고 등 악기를 타며 사특한 마음을 버리고 바른 마음을 가지는 것이 곧 군자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위정(爲政)을 하겠다는 정치인, 국가의 정첵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는 공무원 먼저 이 시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음악을 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음악교육의 목적을 단순히 듣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다양성을 알게 하는 것, 이것이 곧 앞으로 어떻게 올지 모르는 비극의 재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