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을
김현승(1913-1975)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깎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가을은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은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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