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2.11.0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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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얼마나 오래 이 일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과거는 잊히기 마련이고 우린 또 오늘을 그리고 내일을 살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서울은 삶의 질에 대한 도시경쟁력이 8번째로 세계에서 드물게 정치, 경제, 문화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 메가시티이다. 그런 서울 한복판에서 전쟁보다 더한 일이 벌어졌다. 300명의 사상자.

이 참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미리 대비할 수 없었을까 그리고 사상자가 이렇게 많이 생길 일 이었나..

놀라운 일은 바로 그 자리에서 화를 당한 사람 이외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얼마나 위험하고 끔찍한 상황이 바로 앞에서, 옆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험을 알리는 최초의 신호 방식은 연기와 횃불이었다.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했다. 횃불의 개수가 많아질수록 상황은 더욱 위험해짐을 의미했었다.

매스미디어가 발달하여 더욱 신속하게 정보가 배달되고 공유되는 세상에서, 각자의 손에 모바일 디바이스를 들었어도 바로 옆 골목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무슨 일인지 감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허망하다. 몇 백미터 밖의 지진을 긴급으로 알려주는 시스템은 갖추었어도 바로 옆 골목에서 일어나는 참사는 알 길이 없다.

그 시각..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누군가가 곧 사고가 날 것 같다는 인지를 한 그 시각, 어떤 방식으로든 사고의 위험에 자신이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경고의 메시지가 전달되었더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사람이 다니는 길 어디에나 설치되어 있는 가로등이 군중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용도로 쓰였었다는 사실에서 시작하여 현대 도시의 가로등이 온갖 사회적 정보의 플랫폼이 되어가는 시점에 과거로의 회귀하는 발상일지 몰라도 ‘위험 경고’의 중요한 기능 하나를 추가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범죄가 빈번히 발생하거나 관광특구와 행사가 열려 일시적인 과밀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지역의 가로등에는 cctv를 통해 스스로 사고를 감지하거나, 재난안전통신망을 통해 신호를 받거나 혹은 사고를 인지한 누구라도 작동할 수 있는 스위치를 두거나 하여 점멸이나. 밝기 조절, 색광 등의 형식으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경고하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면 적어도 아무 것도 모르는 채 스스로를 사지로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5년 12월 리옹의 빛축제는 매우 특별하게 진행되었다. 리옹 축제 한달 전, 파리에서 테러가 일어나 폭탄과 총기난사에 의해 130명의 무고한 이들이 생명을 잃은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테러에 대한 공포로 축제는 취소되었고 리옹시에서는 공포와 비탄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는 행사를 기획하였는데 건축물 벽에 희생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투영되어 흐르고 그 자리에 모인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온 마음을 담아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였다. 그 광경은 외국인이 보아도 가슴 뭉클했었고 여러 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매년 9월11일 뉴욕시 맨해튼의 남쪽에서는 거대한 빛기둥이 켜진다. Tribute in Light이라는 공공 설치 예술품으로 2001년 9월11일 미국 3개의 대도시 - 뉴욕, 워싱턴, 필라델피아-에서 테러조직의 공격으로 건물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상자가 났었던 사건을 기념하고 죽어간 모든 이들을 추모하는 빛기둥이다. 그 크기는 당시 무너져 없어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같으며 두 개의 빛기둥은 쌍둥이 빌딩을 암시한다. 88개 7000와트 밝기의 빛기둥은 10km까지 보여질 수 있도록 쏘아 올려진다. 매년 9월11일이 되면 일몰 후부터 새벽까지 빛이 쏘아 올려져 뉴욕 시민은 누구나 그 사건을 기억하고 죽은 이들을 추모한다.

이러한 추모의 빛은 워싱턴의 펜타곤 추모공원 Pentagon Memorial에서도 볼 수 있는데 당시 생을 마감한 184명을 추모하기 위한 184개의 벤치의 하부에 은은한 불빛이 켜진다.

20여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추모의 빛은 희생자들을 기억하게 하고 그 사건을 기억하게 한다.

연일 뉴스에서는 누구의 책임인지 갑론을박이다. 사회가 어떤 위로를 할지, 반복되지 않도록 지금 당장 무엇을 바꾸어 나가야할지를 이야기 하는 것은 누가 먼저 할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