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뷰] MMCA 과천관 《백남준 효과》展, “2022년에 만나는 1990년 한국 미술계의 실험”
[현장리뷰] MMCA 과천관 《백남준 효과》展, “2022년에 만나는 1990년 한국 미술계의 실험”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11.1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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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CA 과천관, 2023.2.26. 까지
비디오아트 선구자 백남준의 영향력 조명
백남준 주요 작품 43점 및 90년대 주요 작가들 작품 선봬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백남준(1932-2006) 탄생 90주년을 기념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백남준 축제’ 피날레와 같은 대규모 기획전시 《백남준 효과》가 개최된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 과천에서 지난 10일 개막해 2023년 2월 26일까지 열린다.

▲(좌측) 백남준,칭기즈 칸의 복권,1993,CRT TV 모니터 1대, 철제 TV 케이스 10대, 네온관, 자전거, 잠수 헬멧, 주유기, 플라스틱관, 망토, 밧줄, 단채널 비디오, 컬러, 무음, LD,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우측) 백남준, 피버 옵틱, 1995, 혼합 매체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이번 전시는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아방가르드의 선구자로서 백남준에서 시선을 조금 틀어, ‘백남준’이라는 사람이 한국 미술계에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영향력을 끼쳤는지 조명한다. 작가 백남준 뿐만 아니라, 전략가, 기획자, 문화번역자로서의 역할도 조명해본다. 전시에선 백남준의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의 주요 작품 43점이 공개된다. 더불어 한국 동시대 미술사에서 중요한 작가 25명(구본창, 김해민, 문주, 박이소, 석영기, 양주혜, 윤동천, 이동기, 이불, 전수천, 홍성도, 홍승혜)의 90년대 회화·설치·사진 대표작 60점을 포함해 총 103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백남준의 주요 출품작으로는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 나왔던 대표작 <나의 파우스트> 시리즈(1989-1991) 총 13점 중 6점, 세계화를 향한 열망을 담았던 작품 <칭기즈 칸의 복권>(1993), <리옹 비엔날레 세트>(1995), 그리고 백남준의 아시아성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는 <김유신>(1992), <장영실>(1990) 등이 있다.

▲지난 9일 언론간담회에서 인사말을 전하는 윤범모 MMCA 관장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지난 9일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윤범모 관장은 11월 3일부터 6일까지 미국에서 열렸던 「한국미술주간」에 참석한 일화를 밝히며, 특별한 인사말을 전했다. 윤 관장은 “백남준은 1990년대 한국미술의 국제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인물이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부터 시작해, 그 흐름은 대전엑스포와 광주비엔날레로 이어진다”라며 “백남준 작가와는 1985년 맨하탄 스튜디오에 초대받은 이후 10년여를 가깝게 지냈다”라고 말했다.

이어 윤 관장은 “「한국미술주간」을 마치고 바로 어제 미국에서 귀국해 간담회에 참석하게 됐다. 「한국미술주간」은 미국에서 열린 첫 한국미술 행사로 이 기간 동안 한국미술을 주제로 한 국제 심포지엄, 워크숍 등이 개최됐다”라며 “다트머스 대학에서 강연 진행 당시 200석 규모의 공간이 꽉 찼다. 백남준 선생의 영향력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해외에서도 백남준 연구, 전시, 출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늦은 감이 있지만 백남준을 독립된 학문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이번 전시를 통해 더욱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길 바란다”라고 전시를 선보이게 된 감회를 전했다.

▲백남준, 김유신, 1992, 나무,TV,유채, 부산시립미술관소장 (사진=MMCA 제공)

90년대 한국미술계에 새로운 주제, 가능성을 제안한 백남준

전시를 기획한 이수연 학예사는 “백남준의 전시는 이미 다양한 방향으로 많이 진행된 상태다. 이런 상황 속 국립미술관은 어떤 방식으로 백남준을 조명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라며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작품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백남준이 1984년 35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해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에 직·간접적으로 끼친 영향을 조명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백남준이 국현과 함께 기획했던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1992),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1993)의 주요 주제들을 통해 1990년대 한국미술의 상황을 새롭게 마주한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세계화와 정보사회 도래라는 급격한 정세변화 속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새로이 발굴하고, 과학과 접목한 ‘예술매체의 확장’을 고민했다.

이 학예사는 간담회에서 전시를 소개하면서, 이번 전시 방향성을 찾게 된 한 중견작가와의 대화를 전했다. 이 학예사는 “한 중견작가가 백남준이 한국에 등장했을 당시 예술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백남준이 나타나고 학교에서 회화 이외의 작업을 과제로 받기 시작했다는 일화는 전했다”라며 “백남준이 한국 미술계에 끼친 영향력은 비디오 작업뿐만 아니라, 새로운 주제와 새로운 키워드를 제안하면서 이전에는 꿈꾸지 못했던 가능성의 영역까지 아우른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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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천, 방황하는 흑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 1994-1995, TV 모니터, VCR, 유리, 토우, 산업폐기물 등, 가변크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MMCA 제공)

전시는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각 섹션 서두에는 백남준이 꿈꿨던 이상과 비전이 드러난 실제 인터뷰 및 칼럼 일부를 제시해 각 섹션별 주제를 환기한다. 섹션1은 “국가와 국민(의 정체성), 국제적인 행사들과 세계화의 꿈”으로 세계화의 물결 속에 새로운 방식으로 등장한 정체성의 문제들을 다룬다. 백남준의 주요 작품으로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작이자 한국 세계화의 꿈을 담은 <칭기즈 칸의 복권>(1993)을 비롯해, <장영실>(1990), <김유신>(1992) 등이 출품된다.

섹션2는 근대화의 길, 과학과 기술의 발전, 미래를 향한 낙관 등을 다루며, 1990년대 말 본격적인 정보사회가 도래하기 직전 한국 미술계가 실험했던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주요 작품으로 동시대에 떠오르는 사회적 주제를 바라보는 백남준의 세계관을 첨탑에서 이미지와 과다한 정보 흐름이 쏟아지듯 표현한 <나의 파우스트>(1989-1991)가 있다. 이와 함께 양주혜 <그래도, 남아있는 것들...>(1994/2022), 홍성도 <시간 여행>(1995/2022), 전수천 <방황하는 혹성들 속의 토우-그 한국인의 정신>(1994-1995) 등 새로운 기술이 만들 신세계의 가능성에 대한 상상과 실험이 반영된 당대 한국미술 작품들을 선보인다.

▲양주혜, 그래도, 남아있는 것들...(1994/2022) (사진=서울문화투데이)

정보 사회 도래 직전, 1990년대 작가들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가능성, 상상을 담아낸 이 섹션은 2022년 지금 조금 더 색다르게 다가온다. 이미 정보 사회를 뛰어넘어 가상현실까지 마주하고 있는 시점에서 로우테크(낮은기술)를 새로운 가치로 표현한 90년대 작품들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마주하면서 세계의 급속한 변화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세대에게 선배의 목소리로 다가오기도 하면서, 그 당시 치열한 고민의 흔적들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자아낸다.

이 학예사는 “양주혜 작가의 <그래도, 남아있는 것들...>은 1993년 대전엑스포 출품작인데, 라이트 박스로 납골당을 창작한 작품이다. 현재는 로우테크지만 당시에는 신기술이었던 네온조명을 활용했다”라며 “이 작품에서 느꼈던 독특한 점은 당시 신기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작가들이 낙관적인 태도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양 작가 이외에 전수천 작가의 작품에서도 그런 경향을 느껴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섹션3은 “혼합매체와 설치, 혼성성, 제3의 공간과 대안적인 공간”을 다룬다. 사회적인 변혁기에 접어든 신세대의 문화적 감수성과 새로운 기술매체 실험을 다양한 혼합매체 작업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대중문화 속 이미지를 회화로 옮겨 새로운 의미와 맥락을 부여한 이동기 <프로그램>(1992-1993), 달을 TV로, TV를 달로 은유하며 새로운 매체와 가장 오래된 매체를 넘나드는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1965-67>(1996) 등을 선보인다.

▲백남준, 달에 사는 토끼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마지막으로 섹션4는 “개인의 탐색, 소수(정체성), 다원성”을 주제로 한다. 정체성의 고민이 곧 개인의 욕망과 자아의 탐색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당대 문화의 주요 이슈였던 개인 욕망의 발현과 자기표현의 시도를 투영한 작품인 문주 <이름 없는 원>(1997/2022), 김해민 <춘>(1994/2022), 이수경 <다중의 나>(1992) 등이 공개된다. 특히 이수경 <다중의 나>는 여성으로서 사회적 다양한 모습을 갖는 순간들을 자화상으로 표현한다. 엄마, 딸, 아내이면서 한 편으로 남성이 되고자 하는 고민 또한 담고 있다.

섹션 4에서 또 하나 중요한 작품은 전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인 백남준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1984)이다. 이 작품은 백남준이 한국에 막 돌아왔을 당시 한 작업으로 가족사진에 백남준이 손으로 그들의 역할을 적어놓은 작품이다. 그런데, 이 사진은 ‘가족사진’이 아니라 백남준 가족 속 여성들의 단체 사진이다. 백남준의 어머니가 여성 가족들에게 남장을 하고 사진을 찍자고 제안해서 완성된 사진이다.

이 학예사는 “당시 사회에서 여성이 남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굉장히 전위적인 행위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지점이 백남준이 가진 아방가르드의 시작이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의 가장 개인적인 역사를 통해 전시를 마무리하고 싶었다”라며 작품을 선정한 의미를 밝혔다.

▲백남준, 비밀이 해제된 가족사진, 1984, 종이에 에칭, 국립현대미술관소장 (사진=MMCA 제공)

백남준 세계를 마주할 수 있는 아카이브

섹션3과 섹션4 공간 사이, 아카이브 섹션은 백남준의 드로잉이나 전시 현장을 기록한 영상들이 공개된다. 이 공간은 ‘백남준의 손’이라고도 불린 이정성 선생의 도움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1990년대 시대상을 보여주는 대중매체 자료 및 역사자료와 함께 《백남준·비디오때·비디오땅》(1992), 《휘트니 비엔날레 서울》(1993)기관자료,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1995년 리옹 비엔날레 전시 전경을 만날 수 있다.

인상적인 자료로는 이정성 선생과 백남준 작가가 나눴던 편지들이다. 편지의 내용은 작품을 계획하는 과정 속에서 코드나 설계도 등이었다. 간담회에 참석했던 이 선생은 “백남준 선생님과 작업을 하다보면 2년 정도 논의만 한 적도 있었고, 우리끼리만 알아볼 수 있는 언어로 편지를 나눴었다”라며 당시의 일화를 전했다.

▲아카이브 섹션에서 설명을 전하는 이정성 선생 (사진=서울문화투데이)

간담회에서는 이번 전시가 ‘나는 문화깡패다’라며 한국적인 것으로 세계 미술을 제패하겠다고 한 백남준의 정신이 잘 와닿지 않는 것 같다는 질의가 있었다. 이에 이 학예사는 한국과 세계의 대결의 구도로 당시 시대나 백남준의 세계관을 보지 않았다며, 백남준을 통해 한국의 정체성이 어떻게 더 꽃피울 수 있었고 세계에 드러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좀 더 주목했다고 말했다. 백남준 이전에도 한국 미술계에서는 포스트 모던적 실험은 일어나고 있었는데, 백남준의 등장으로 조금 더 쉽고 빠르게 세계에 한국적인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는 점을 주목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 백남준, '나의 파우스트' 시리즈 (1989-1991)13점 중 6점 전시 전경 (사진=서울문화투데이)

백남준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열리고 있는 MMCA ‘백남준 축제’는 지난 9월 15일 백남준의 최대 규모 비디오 아트 작업 <다다익선>의 재가동에서 한 번의 의미를 짚었다. 윤 관장은 <다다익선> 재가동 이후 백남준의 조카 하쿠다 켄이 국현으로 감사의 편지를 전했다고 전했다.

<다다익선> 재가동, 아카이브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이후 열린 《백남준 효과》는 백남준이라는 작가가 한국 미술계에 가져온 어떤 흐름과 경향을 다시 한 번 짚어볼 수 있는 자리다. 특히, 이번 전시 《백남준 효과》에선 백남준의 주요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이제는 과거이지만, 당대에는 가장 전위적이었던 1990년대 미술의 흐름과 고민들 마주하게 해 의미있는 감각을 전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