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연꽃, 다시 떠오르다”…윤이상 오페라 ‘심청’ 23년 만에 무대로
[공연리뷰]“연꽃, 다시 떠오르다”…윤이상 오페라 ‘심청’ 23년 만에 무대로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11.22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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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로 구현한 국악기의 비브라토
판소리 원작의 효(孝) 사상 확장…인간 구원·공동체 강조

[서울문화투데이 진보연 기자]심청을 담은 연꽃이 참으로 오랜만에 두둥실 떠올랐다. 무대와 객석을 가로막던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낸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결단 덕분에, 오페라 ‘심청’은 1999년 예술의전당에서의 한국 초연 이후 23년 만에 무대에 오르게 됐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 윤이상 오페라 ‘심청’ 공연 장면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 윤이상 오페라 ‘심청’ 공연 장면

오랜 기다림 끝에 소문 무성한 오페라 ‘심청’을 만난 관객들은 오케스트라가 선사하는 윤이상의 음악에 매료됐다. 음악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작품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오페라’로도 유명했기에 관객의 관심을 얻을 수 있을지 다소 우려가 있었으나, 현대오페라 작품으로 기록하기 어려운 객석점유율 75%를 기록했다.

윤이상의 오페라에는 한국의 소리들이 곳곳에 스며있지만,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한국 음악을 현대 유럽의 음향언어로 바꾸어 전한다. 오보에 대신 피리를, 플루트 대신에 대금을, 하프 대신 가야금을 사용해 서양악기 음향을 국악기처럼 표현했다. 한국 초연 때 지휘를 맡아 윤이상의 ‘심청’ 음악에 정통한 지휘자 최승한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 오케스트라인 디오오케스트라를 이끌며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아울러, 오페라 ‘심청’은 노래하기 어려운 오페라로 정평이 나 있다. 오케스트라 음악이 성악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성악이 오케스트라 음악의 일부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심청’의 출연자들은 글리산도, 피치카토, 비브라토 등 주법을 목소리로 직접 표현하며 파도의 일렁임과 거친 폭풍우 그리고 그 후의 평안을 객석에 고스란히 전달했다. 

심청 역의 소프라노 김정아는 처음부터 끝까지 극을 이끌어가면서도 흔들림 없는 소리를 선사했다. 특히 공양미 삼백 석에 아버지를 두고 삶을 등지기로 결심했을 때의 음악적 표현력은 관객들의 감동을 자아냈다. 기자의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 관객이 “동양의 효(孝) 문화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저절로 눈물이 났다”라고 말했을 정도이니 말이다.

바리톤 제상철은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눈이 멀고 가족과 재산까지 잃은 심봉사를 미련해보이지 않게 연기하며, 현대인도 공감할 수 있는 타당성을 부여했다. 메조소프라노 최승현은 판소리에서보다 훨씬 다면적인 악역으로 그려진 뺑덕을 능청스러운 연기와 시원한 가창력으로 매끄럽게 소화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 윤이상 오페라 ‘심청’ 공연 장면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 윤이상 오페라 ‘심청’ 공연 장면

‘심청’에서 솔리스트만큼 합창단의 역할은 중요하다. 장면의 전환마다 합창단이 등장하며, 사건을 되새기고 교훈을 주지하는 역할을 한다. 가면을 쓴 모습을 통해 피안과 현실세계를 구분했고, 이들이 들려주는 노래들은 도교적인 색채가 강해 ‘도덕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줬다.

대구오페라하우스 예술감독 정갑균이 연출한 이번 ‘심청’ 무대는 천상계-지상계-물속 세계의 세 부분으로 나뉘었다. 천상과 지상은 수묵화를 연상시키는 흑백, 물속 세계는 푸른색으로 표현됐다. 무대 연출 전체적으로 세련미를 더해 음악과 어우러짐이 아름다웠지만 심청이 인당수에 투신하는 장면, 임금과 심청이 혼인하는 장면, 심봉사가 눈을 뜨는 장면 등이 비교적 단조롭게 흐른다. 좀 더 극적인 효과로 긴장감을 줄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동양에 국한된 소재가 아닌 더욱 확장된 세계, 이상 하나의 인간 공동체를 위한 희생으로 세계에서 보편성을 가지지만, 이 때문에 극 중 인물들이 고집하는 '남아선호사상'이 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아들 대신'의 심청이 아니더라도 작품의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현대적인 무대와 음악과 성차별적인 대사들이 더욱 고루하게 느껴져 아쉬움을 남긴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 윤이상 오페라 ‘심청’ 공연 장면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폐막작, 윤이상 오페라 ‘심청’ 공연 장면

한편, 기획 단계부터 공연까지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자체 제작한 이번 <심청> 프로덕션은 향후 해외극장 간 공연 교류에 적극 활용된다. 2024년 불가리아 소피아국립극장, 헝가리 에르켈국립극장, 이탈리아 볼로냐시립극장 공연이 예정되어 있으며, 2026년에는 독일 만하임 국립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