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김평호와 조석연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김평호와 조석연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11.23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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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립무용단 ‘불멸의 사랑 – 월인천강지곡’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무용이 어렵다고 한다. 연극처럼 대사가 없기에 그렇다. 춤은 분명 언어다. 오직 춤만으로 표현되는 게 참 많다. 그러함에도 아직은 춤으로 표현되는 이야기와 상황을 낯설게 이해하는 청중이 존재한다. 

11월 18일과 19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펼쳐진 대전시립무용단 제72회 정기공연 '불멸의 사랑 – 월인천강지곡'(이하 ‘월인천강지곡’)은 무용작품도 얼마나 명쾌하게 관객에게 전달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야기와 상황이 모호하게 전달되는 장면이 전혀 없었다. 이 작품은 성공요인은 무엇일까? 

무용과 성악의 만남 

‘월인천강지곡’은 ‘춤극 오페레타’ 형식이다. 무용적 시각으로 ‘춤극’의 형식이요, 음악적 시각으로 본다면 ‘오페레타’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이런 형식이 매우 어색하거나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겠다. 그러나 ‘월인천강지곡’을 보았다면, 생각이 달라질 거다. 오페라 또는 뮤지컬 장르를 좋아하는 관객도 충분히 무용관객으로 만들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렇다고 ‘춤극 오페라타’ 형식이라고 다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님이 분명하다. ‘월인천강지곡’이 두 장르의 접점을 잘 접합했기에 그렇다. 그간 각각의 분야에서 꾸준히 역량을 쌓아오면서 실력을 인정받은 두 사람의 의기투합이 매우 좋은 결과를 낸 것이다. 대전시립무용단의 예술감독 겸 상임 안무자 김평호는 그간 춤극분야에서 역량을 인정받았다. 스케일이 큰 축제에서의 안무를 했던 경험도 많다. 작곡가 조석연의 스타일은 매우 다양한데, 특히 무용극에서 그의 진가가 발휘되었다. 이렇게 경험과 역량이 축척된 두 사람의 만남이기에, ‘춤극 오페레타’는 성공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각각‘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각 장르의 최선을 다했고, 여기에 임오섭의 대본과 작사도 매우 현명하게 가교을 했다. 

임오섭, 조석연, 김평호, 세 사람의 공통점은 아주 확실했다. 대본과 작사부터 시작해서 작곡과 편곡, 안무와 연출에 이르기까지 추상성이나 모호성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아주 확연하게 심리와 상황을 드러냈다. 첫 장면부터 그랬다. 무대의 시작은 ‘월인천강지곡’이라는 합창단의 코러스. ‘하늘의 달은 천 개의 강을 비추지만, 나의 달은 오직 하나의 강만 비추리라’고 시작하는 노래는, 세종의 한글 창제와 함께 ‘불멸의 사랑’이란 제목이 붙은 것처럼, 세종과 소헌왕후의 이야기를 강조한다. 

세종과 관련해서 그간 여러 장르에서 무수히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그 중엔 수작도 있었지만, 재미(흥미)의 부족함을 의미로만 메꾸려는 작품도 꽤 많았다. ‘월인천강지곡’은 그렇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초월해서 인류의 보편적 정서인 ‘사랑’을 한글 창제와 연결하고 있다. ‘한글’이라는 위대한 문자의 탄생배경에도, 국왕과 왕비의 숭고한 사랑이 깔려있음을 아름답게 전달되었다. 

1인칭 시점의 춤, 3인칭 시점의 노래 

이 작품에서 강하게 각인되는 음악 ‘월인천장지곡’ 테마와 함께, 소헌왕후 아리아(메조소프라노 고은희) 장엄한 레퀴엠을 보는 기분이다. 태종 아리아(베이스 이두영)의 ‘왕을 따르라’와 세종 아리랑(테너 권순찬) ‘나라의 근본’은 두 왕의 차이를 노래와 춤으로 극명하게 보여준다. 
 
무대에는 두 명의 세종, 두 명의 소헌왕후가 등장한다. 그런데 같은 세종이요, 같은 소헌왕후가 등장을 하지만, 매우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춤이 1인칭이라면, 노래는 3인칭이다. 곧 춤이 세종과 소헌왕후가 살았던 당시를 재현하는 듯 매우 감정선을 드러내면서 극적이라면, 아리아는 달랐다. 마치 훗날의 사람들이 세종이 되고 소헌왕후가 되어서, 그 당시 그 사람과 일정한 객관적 거리감을 둔 느낌으로 받아들여졌다. 성악가들이 콘서트에 입는 의상을 입고 나와서 부르는 노래의 분위기가 이렇게 ‘이중적인 정서’가 하나로 합일되는데 역할을 했다. 이걸 좀 더 과장해서 얘기한다면, 마치 타임슬립과 같은 효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각각 춤극이나 오페라로 존재했을 때는 오히려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 ‘춤극 오페라타’라는 형식을 통해서 배로 빛을 발하는 효과를 낸 것이 분명하다. 

이 작품이 모두 이렇게 춤과 직접적인 노래와 만난 건 아니었다. 병사들의 바라춤이나 백성들의 등불춤도 전통춤을 극 속에 잘 녹아낸 장면이다. 

김평호의 스케일, 조석연의 디테일 

이 작품은 세종을 내세운 작품이면서, 그 안에서 소헌왕후를 잘 살린 작품이다. 소헌왕후를 잘 그려낸 두 명의 무용수(강영아, 서예린)의 덕분이겠으나, 좋은 음악과 좋은 안무가 그 배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평자(評者)의 입장에서 보면, 안무가 김평호가 세종을 강조하면서 출발했다고 보인다. 반면 작곡가 조석연은 소헌왕후의 슬프고 애절한 감성에 더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남성성과 여성성, 굵직한 스케일과 섬세한 디테일이 결과적으로 여러 사람이 작품을 만족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면서, 대전시립무용단의 예전 작품인 황재섭 안무의 ‘군상’(2019)을 떠올렸다. 대전시립무용단의 전 예술감독인 황재섭과 현 예술감독 김평호은 모두 한국무용계의 거인 국수호의 제자다. 두 사람 모두 국수호의 대를 이어서 대작을 만들 능력이 갖추었다. 황재섭의 작품이 인문학적인 기반으로 해서 사유의 깊이가 느껴진다면, 김평호의 작품은 매우 명쾌하고 선명한 것이 특징이다. 

황재섭이 매니아층을 형성할 작품이라면, 김평호는 다수가 호응할 작품을 만들어낸다. 김평호는 확실히 춤이라는 매체가 일반대중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 가를 잘 알고 있다. 대전시립무용단의 ‘월인천강지곡’은 일회성으로 그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작품이며, 매년 한글날 즈음해서 여러 곳에서 공연된다면 청소년관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을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