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미술한류 원년, 이렇게 시작했다 Ⅰ
[특별기고] 미술한류 원년, 이렇게 시작했다 Ⅰ
  •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 승인 2022.11.2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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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 ㅇ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

미술한류(美術韓流). 참으로 멋진 말이다. 나는 근래 이런 말을 자주 쓰고 있다. 미술한류. 물론 대중문화의 한류 덕분에 따온 말이기는 하다. 한류! 이 얼마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주는 말인가. 우리의 문화예술이 국제무대에서 언젠가부터 이렇게 각광을 받게 되었는가. 20세기의 한국 역사는 그야말로 질곡의 역사이지 않았던가. 식민지, 분단, 전쟁, 최빈국, 산업화, 민주화 등. 하지만 이제 한국의 현대사는 세계의 주목을 끌고 있는 모델로 급성장하고 있지 않은가. 한마디로 한국전쟁의 여파로 해외의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이제 원조를 주는 유일한 나라, 바로 대한민국이다. 최근의 한국 문화는 단군 이래 최절정기로 오르고 있는 듯하다. 대국 사이에서 시달리기만 했던 과거의 역사. 그 쓰라린 역사는 우리 민족으로 하여금 늘 긴장하게 했고, 또 생존을 위하여 창의적인 태도를 갖게 했다.

20세기 후반부에 이르러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사회변혁을 일구었다. 총칼 대신 촛불 하나만 가지고도 정권을 바꾸는 나라로 성장했다. 물론 5천년 이상의 역사는 공동체 정신을 추스르게 했고, 그 바탕 위의 독창성과 근면성은 나름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런 결과의 하나로 한류를 들 수 있다. 이제 한국인이 뭔가 야심작 하나를 만들면 국제 사회에서 열광하는 시대를 맞고 있다. 대중음악의 방탄소년단(BTS)을 비롯 <기생충> <미나리> 같은 영화, <오징어 게임> 같은 드라마 등, 한마디로 자랑스럽다. 여기에 손흥민 같은 축구 선수라든가 다수의 골프 선수들, 스포츠 분야까지 합류하고 있다. 기왕에 음악계는 공연 실력으로 이름을 드높인 음악도가 적지 않았고, 문학계 또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제 미술이다. 순수예술도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을 우뚝 세워야 할 때다. 미술한류는 이와 같은 바탕에서 일종의 사명감으로 생겨 난 말이다.

팬데믹 사태는 예술계를 얼게 했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전시장을 연 기간보다 문 닫은 기간이 더 길었다. 폐관된 미술관을 보고 참으로 참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개관 반세기가 넘어 미술관은 처음으로 대규모 서예전시를 마련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문을 닫게 했고, 궁여지책으로 영상 관람을 시도했다. IT 강국이어서 그런지, 또는 순발력 있는 한국인의 근성 때문인지, 온라인 전시 방식은 곧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결국 국립현대미술관은 해외의 유수 언론으로부터 세계 10대 온라인 뮤지엄의 하나로 꼽혀 칭찬을 받았다. 이에 힘을 받아 다채로운 온라인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새로운 미술관 환경을 구축했다. 전시의 경우도 <워치 앤 칠>처럼 해외 미술관과 더불어 온라인 협업 전시를 기획하기도 했다. 이 온라인 전시는 국내외의 다양한 지역에서 감상자로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 평양지역에서조차 다수의 검색 숫자가 떠올라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워치 앤 칠>은 3개년 연속 프로그램으로 발전되어 대륙별로 순회하고 있다. 팬데믹이 낳은 임기응변이 오히려 새로운 전시공학을 개발하게 했고, 그 효과 또한 증폭시키고 있다.

LACMA 한국근대미술 전시

2022년은 미술한류의 원년이다. 나는 올해 연초에 이런 계획을 발표하면서 미술관의 새로운 시도를 다짐했다. 한국현대미술의 국제화, 이처럼 매력적인 말이 어디에 또 있을까. 이제 우리 미술도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대접을 받도록 하자. 존재감 드러내기. 이는 한국 현대미술의 자리매김이라는 차원에서도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이다. 그것의 첫 번째 기획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LACMA)에서였다. <사이의 공간: 한국근대미술> 특별전은 해외에서 개최된 최초의 대규모 한국 근대미술 특별전이다.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주최로 개최한 LACMA 전시는 88명 작가의 130여 점의 원작으로 꾸몄다. 그 가운데 우리 미술관의 소장품은 60여 점이었고, 또 그 가운데 이건희컬렉션의 기증품은 20여 점을 헤아리게 했다. 채용신, 김관호, 나혜석, 백남순, 이쾌대, 배운성, 변월룡, 오지호,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권진규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의 명품이 한 자리를 이루었다. 정말 장관이었다. 나는 개막식에서 약간의 흥분과 함께 인사말을 해야 했다. 전시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관객에게 전시를 어떻게 알고 관람하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한류의 나라, 그 나라의 미술이 궁금해서 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역시 한류의 나라답게 독창적이면서 수준 높은 작품들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LACMA 전시는 개막 직후 BTS의 RM(김남준)이 관람하여 더 홍보 효과를 보여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RM은 이 전시를 위해 오디오 해설의 녹음을 맡아 재능기부를 한 바 있다. LACMA 한국 근대미술전은 굴곡 많았던 20세기 한국 역사를 바탕으로 성장한 일종의 보석이다. 보석 속에 담겨 있는 한국의 절규는 숱한 관객에게 감동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특기 사항 하나, 바로 벽돌처럼 두꺼운 영문 도록을 말하고 싶다. 이 책은 한국 근대미술사 관련 교과서 역할로 오랫동안 빛날 것이기 때문이다.

▲MMCA ‘2022 한국미술주간’ 현장, 윤범모 관장과 박대성 화백이 참석해 참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MMCA 제공)
▲MMCA ‘2022 한국미술주간’ 현장, 윤범모 관장과 박대성 화백이 참석해 참여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MMCA 제공)

보스턴 지역의 한국미술 주간

9월의 LA 행사에 이어 11월에는 보스턴 지역에서 ‘한국미술 주간’ 행사를 개최했다. 이 역시 해외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주제로 한 최대 규모의 학술대회였다. 현재 미국의 대학에서 한국미술 담당 교수는 10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는 날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정말 20-30년 전과 비교한다면 격세지감을 말해야 할 정도의 괄목한 성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유명 미술관에서 한국 출신 큐레이터를 만나는 일은 일반화되고 있다.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보스턴 행사는 이들 50명가량의 전문가들을 한자리에 초청하여 학술대회와 함께 네트워킹의 시간을 갖도록 했다. 팬데믹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이와 같은 회합은 미국 내의 한국미술 전문가들조차 처음 있는 일이어서 의미가 더욱 컸다. 몇 날을 함께 지내면서 이들은 친구가 되어 한국미술 관련 의견을 나누었다. 정말 생산적인 모임이었다. 나는 마지막 날의 만찬을 주재하면서, 이들 참가자에게 각각의 소속기관에서 한국미술을 위한 프로젝트를 기획 추진해달라고 ‘숙제’를 주었다. 나는 해외의 유명 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 출신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하여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다.

박대성 수묵화 개인전. LACMA를 비롯 다트머스대학 부설 후드미술관, 그리고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까지 동시다발적으로 개최한 박대성 개인전은 독특한 형식의 미술행사였다. 평생 독학으로 일군 수묵화의 세계는 미국 순회전에서 커다란 반향을 얻었다. 특히 미국 안의 한국미술 전문 학자들이 분담하여 집필한 논문으로 엮은 두툼한 출판물은 새로운 경지로 주목을 요하고 있다. 마침 아이비 리그의 하나인 다트머스대학은 한국미술 주간의 첫 행사로 박대성 작가를 초대하여 특강시간을 마련했다. 나 역시 강단에 올라 박대성 예술세계에 대하여 강연을 했다. 2백석이 넘는 강당은 통로까지 줄을 세우게 했고, 게다가 30-40명은 입장하지 못해 돌아가야 했을 정도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강당은 학생들보다 중년층의 일반 사회인이 더 많았다. 이들에게서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었다. 작가와의 대화에서 박대성은 수묵의 세계에 대하여 설명했고, 현대인의 과도한 소유욕에 대하여 지적했다. 너무 많이 갖으려 하고 있고, 또 너무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절제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는 미국 순회전의 소감이 어떠냐고 작가에게 질문했는데, 작가는 이와 같은 소감을 다소 길게 설명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