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프리뷰] 청년 김대건을 만나는 영화 『탄생』,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영화프리뷰] 청년 김대건을 만나는 영화 『탄생』,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11.25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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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신부 김대건의 삶, 11.30 개봉
종교를 넘어, 1800년 중반 조선 후기 시대 담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바티칸 교황청에서 특별 시사회를 열고, 현장에 있는 전 세계 관람객들에게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 영화 『탄생』이 오는 11월 30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1821∼1846)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로 박흥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윤시윤, 안성기, 이문식, 이경영, 김강우, 이호원 등 명품 배우들이 함께 했다.

▲영화 『탄생』 스틸컷 (사진=민영화사 제공)

영화 『탄생』은 지난 23일 제작보고회를 시작으로, 24일에는 전국 단위 천주 교구회가 함께 하는 시사회를 열었다. 영화 『탄생』은 총 제작비 150억 원, 순 제작비만 100억 원이 투자된 상업 영화로, 천주교주교회의의 후원과 아이디앤플래닝그룹㈜(남상원 대표이사)의 투자로 성사될 수 있었다.

영화 『탄생』의 박흥식 감독은 지난해 열린 제작발표회에서“천주교를 소재로 한 영화이지만 종교 영화가 아닌, 재미와 의미를 갖춘 상업 영화”라며 기대감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박 감독은 대한민국의 첫 사제 김대건 신부를 ‘종교인’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서양문물을 누구보다 빠르게 받아들인 선각자의 모습, 호기심 많은 한 청년의 모습으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크린 속에서 만난 김대건은 성인(聖人)의 모습을 한 동시에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을 가진 청년으로 그려졌다. 25살이라는 청춘의 나이에 순교한 김대건은 ‘한국 최초 신부’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간 청년이었다.

▲영화 『탄생』 스틸컷 (사진=민영화사 제공)

명품 배우들의 호소력 있는 연기

영화 『탄생』은 조선의 청년 김대건이 성장해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으로 순교하는 시간을 모두 담고 있는 영화다. 1836년 프랑스 선교사 피에르 모방 신부의 조선 입국부터 1846년까지 약 10여 년의 긴 시간을 포함한다. 영화가 표현하고자 한 시간이 방대한 만큼 영화는 150분의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김대건의 모험과 성장의 순간들을 관객들이 함께 할 수 있어 점점 더 몰입감을 증폭시킨다.

김대건 신부 역을 맡은 배우 윤시윤은 지난 16일 열린 바티칸 교황청 시사회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개별 알현에서 “우리 영화에서 배우 윤시윤은 보이지 않고 김대건이란 인물만 보이게 해달라”라고 말한바 있다. 그의 말처럼, 영화 속에서 윤시윤 배우는 청년 김대건이 돼 격변의 조선 후기를 살아가는 인물이 된다.

신부가 되길 바란다는 모방신부와 아버지의 제안에 망설임 없이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김대건의 소년 모습과 누구보다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일 때 행복해하는 청년 김대건의 모습, 그리고 기해박해(1839년)의 참담함을 마주하고 종교인의 모습이 돼가는 김대건까지 같지만 다른 모습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상을 마주하고, 때로는 세상을 짊어져야 했던 청년 김대건의 얼굴은 그가 어떻게 우리에게 ‘성인(聖人)’이 돼갔는지를 알려주는 지표와도 같았다.

▲영화 『탄생』 스틸컷 (사진=민영화사 제공)

영화 『탄생』에는 윤시윤 뿐만 아니라, 안성기, 김강우, 이문식, 윤경호, 이경영, 신정근, 최무성, 백지원, 정유미, 김광규, 차화선 등 익숙한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조선에 천주교가 들어오고,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꿨던 사람들이 있었단 얘기를 전하는 『탄생』은 모든 인물 하나하나가 개별의 서사를 갖고 굵직하게 자리하고 있다.

영화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진 않지만, 실력파 배우들의 안정적인 호흡이 드러나 특별한 감동을 선사하는 장면들도 이 영화의 인상적인 지점이다. 특히, 김대건 신부 역의 윤시윤과 천민 출신 마부 조신철을 연기한 이문식의 대화들은 당시 조선의 시대상을 드러내주는 동시에, 그 당시 피지배계급들이 어떤 마음으로 천주교를 받아들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서사를 만든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지금은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 진리가 당시에는 얼마나 어려운 가치였는지를 느낄 수 있는 장면들이다.

비슷하게 궁녀의 신분을 버리고 신앙생활을 하며, 김대건 신부 일행이 해외로 떠날 때의 여비까지 챙겨준 ‘박희순 루치아 자매’와 아는 것이 모자라도 신앙만은 독실했던 ‘김아기 아가타 자매’의 이야기도 관람객의 눈시울을 붉힌다.

▲영화 『탄생』 스틸컷 (사진=민영화사 제공)

조선, 청, 대만, 마카오를 쉴 새 없이 오고가는 여정과 육지, 산, 바다의 모험을 담고 있는 거대한 서사 때문에 인물 간 깊이 있는 서사를 많이 담지 못했지만, 영화 속에서 몇 년이 흐르고도 이어지는 인물들의 서사는 관람객들에게 따뜻한 감동을 전한다.

안성기가 맡은 역관 유진길과 그의 후배 역관인 성혁이 연기한 역관 이상적의 인연은 영화 초반부터 김대건의 순교 직전까지 미세하게 이어져, 아슬아슬한 의심과 믿음 사이의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조선으로 밀사를 보내고, 천주교를 펼치고자 하는 이들의 중심지와도 같은 만주의 객잔 속 인연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따뜻한 감동을 전한다. 당시에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 변화하고 있는 근대의 지식과 감정을 받는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 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만주 객잔의 여종업원 즈란과 김대건의 인연도 영화 속에서 아름답게 그려진다. 특히, 기해박해 당시를 집필한 윤경호가 연기한 현석문과 김대건이 만들어내는 능청스러운 대화가 영화 속에서 잔잔한 재미와 감동을 전한다.

▲영화 『탄생』 스틸컷 (사진=민영화사 제공)

신부 ‘김대건’이자 모험가 ‘김대건’의 모습을 담다

영화 초반부 소년 김대건, 신학 공부를 이어간 청년 김대건의 모습이 점점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아편 전쟁 당시 프랑스 군함의 통역관으로 배를 타게 된 때부터이다. 이 때부터 김대건은 나전어(라틴어), 불어, 중국어 등을 능숙하게 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특히 ‘바다’에 대한 김대건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드러낸다.

조선의 천주교는 조선에서 만든 작은 배 ‘라파엘호’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김대건이라는 사람이 일찍이 서양의 항해술과 세계지리를 배우고 새로운 문물을 끊임없이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는 김대건의 삶을 응축하는 대사들이 등장한다. 길이 아닌 곳으로 조선의 입국을 시도하려하는 김대건을 만류하는 이들에게 김대건은 “길은 걸어가면 뒤에 생기는 것입니다”라고 말을 한다. 한국의 첫 사제이다, 첫 서양 교육을 받은 인물에 대한 정확한 표현이다.

▲영화 『탄생』 스틸컷 (사진=민영화사 제공)

김대건의 모험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지점은 영화 중후반부에 상해에 있는 페레올 주교를 데리러 인천에서 상해로 떠나는 바닷길이다. 바다와 육지를 넘나드는 화려한 CG는 관람객에게 시각적 다채로움을 선사하고, 망망대해의 큰 폭풍우를 조선의 작은 어선으로 견뎌내는 장면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폭풍을 만나고 김대건 신부와 뱃사람 임치화, 임성룡이 난파를 피하기 위해 배 위의 고난을 겪는 장면들은 또 다른 장르적 충격을 전한다.

우여곡절 끝에 김대건 일행이 상해로 입국하고 영국 영사관에서 영국인 영사와 나누는 대화는 김대건이 조선을 넘어서 어떻게 세계를 이해하고, 조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드러내는 장면이다. 영국인 영사가 쇠못 하나 박히지 않은 배로 어떻게 서해를 넘어왔느냐 묻자, 김대건은 쇠못하나 박히지 않는 배로 조선은 왜군을 물리치기도 했다며 조선이 가진 선박 기술력을 드러낸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의주 피난은 있었으나 조선의 백성을 절대 나라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감동적인 서사도 전한다.

▲영화 『탄생』 스틸컷 (사진=민영화사 제공)

모험가이자 선각자의 모습을 가진 김대건의 서사는 순교 직전 옥중에서 영어로 적힌 지도를 한글로 번역하고, 세계지리의 개략을 전하는 내용을 통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짧지만 강렬했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생애 중 10여 년이 옮겨진 영화 『탄생』은 김대건의 순교로 마무리된다. 영화는 성인(聖人) 김대건과 청년 김대건을 적절하게 배치해 표현하고 있다.

▲영화 『탄생』 스틸컷 (사진=민영화사 제공)

『탄생』은 영화 제작 전부터 철저한 역사적·종교적 고증을 거쳐서 제작 됐다. 때문에 1800년대 중후반 근대화의 물결이 흐르는 세계의 이모저모를 느낄 수 있는 한복판으로 관람객을 끌어당긴다. 영화 속 청년 김대건은 “‘바다’라는 게 모르면 공포의 대상이지만, 알면 길이 되어주기도 하잖아”라며 새로운 시대를 ‘바다’를 통해 들여오고자 하는 선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영화 속 김대건은 조선이 ‘바다’를 통해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를 전하며, 지금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뜨거운 열정을 전하기도 한다.

영화 『탄생』 이전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종교인의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제 영화 『탄생』 이후의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청년 김대건으로,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고 옳은 변화가 무엇인지, 혼돈의 시대 속에서 어떤 신념으로 나아가야하는 지를 알려주는 인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