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찜질방과 우주인
[영화학도를 꿈꾸는 청춘, 인문학 파먹기] 찜질방과 우주인
  • 윤이현
  • 승인 2022.11.30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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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윤이현(2000년생), 몇 가지 일을 하며 글로 꿈을 써 내려가는 중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사이시 조의 음악, 요리 문학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사랑한다. ‘멀리 갈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도전과 실패, 상처로부터 단단해지는 것들과 친해 보려고 한다. 애완 묘 ‘깨미’와 같은 방을 쓰고 있다. 최근 윤영채에서 윤이현으로 개명했다.

종로의 작은 찜질방. 멍하니 나는 바닥에 누워있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에 붙은 돌의 개수를 세어보다가, 아주 우연히 예전에 엄마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블랙홀에 들어간 우주인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한 남자가 있었다. 우주인의 꿈을 꾸던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고된 훈련 끝에 선발되어 우주선에 탑승한다. 그렇게 향한 우주는 적막과 어둠이었다. 그 안에서 동료들과 탐사를 이어가던 도중, 기지 폭발 사고로 인해 그는 파편처럼 튕겨 나갔다. 그 순간만큼은 이곳을 오기 위해 배웠던 수많은 지식과 노력은 아무 힘도 갖지 못했다. 중심을 잡을 수 없이 어지러이 그리고 빠르게 지구와 멀어져갔다. 그렇게 한참 칠흑 같은 어둠과 추위를 떠돌다가 거대한 블랙홀에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는 잔혹한 이야기였다.

아가 그 안엔 괴물이 있단다.’

어릴 땐, 그가 느꼈을 공포를 상상하곤 했다. 땅에 디뎠던 두 다리가 암흑 속에 허우적대는 허무함이란 어떤 것일까. 방향도 속도도 나아갈 곳도 정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 맞이하는 죽음은 과연 얼마나 고요하고 잔인한 것일지 따위의 것들을 자주 생각했었다. 블랙홀 속에 사는 괴물도, 그 괴물의 울음소리와 생김새가 궁금해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다면 괴물의 정체는 뭐지? 왜 태어나 그곳에 머무르는 것일까. 그 우주인은 어떤 끝을 맞이했을까. 뭐 이런 고민을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과도하게 때로는 집요하게 생각하느라 매일 밤 두통에 시달리곤 했다. 애써 두 팔을 벌려 그 세상에 뛰어들었으며 그곳을 홀로 부유했다. 그 과정에서 쉽게 우울해하고 기뻐했다. 생각을 모아 우주를 만들고 그것을 부수기를 반복했다. 때때로 공상이 깊어질 때면 현실에 섞여들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에 휩싸였다.

전 이런 저를 사랑하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해가 지구의 저편으로 저물어가던 오후, 선생님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상담이 끝나고 나는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그곳을 나왔다. 분명 그 순간, 마음의 짐을 덜어내었다는 사실에 후련함을 느꼈다. 그러나 언제부터 나의 깊은 내면 구석구석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졌다. 더욱이 그 사람이 나와 매일 마주해야 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 힘겨웠다. 그 이후론 상담실에 가지 않았다. 철저하게 그곳을 피해 다녔다.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이상하고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 굳게 믿었으니 말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린 것이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기대지 않고 말을 아끼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조차도 그런 내가 어려웠다.

10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종로의 작은 찜질방에 누워있다. 주말이면 피곤한 몸과 정신을 풀러 혼자 이곳에 온다. 좋아하는 몇 가지 음악을 들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골똘히 고민한다. 생각이 넘쳐 머리가 아플 땐 고온 방에 들어가 땀을 흘리고 잠시 생각을 비운다. 그렇게 채우고 비우며 반나절을 보낸다. 별처럼 빛나는 천장의 돌들을 응시하며 여전히 가끔 그 우주인의 말로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가족들과 나눠 먹던 파스타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을까? 괴물에게 붙잡혔을까. 어린 나를 재우려 만들어낸 이야기가 이토록 내 삶을 복잡하게 했으리라 엄마는 과연 상상했을까. 엄마에게도 곱씹을수록 복잡하고 아파지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역시 인간은 참 복잡하군. 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땀을 한껏 흘리고 나니 정신이 또렷해진다. 가볍고도 아쉬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복잡한 생각의 우주를 짓고 부시며 지구에 발을 딛고 있는 내가 조금은 사랑스럽다. 여전히 파편처럼 부서지고 있음에도, 이 깊은 마음들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어 글로 옮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말이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마음을 채우고 비우는 과정을 밟고 있을 걸 상상하니, 찬란하다. 우리의 삶이. 지구에서의 이 순간이 빛나는 것만 같다.

산다는 건 결말을 알 수 없는 블랙홀로 끌려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무기력감과 공포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사랑과 찬란함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를 떠나 허공을 배회하는 우주인과 닮아있다. 이제는 갈 수 없게 되어버린 세상을 영원히 그리워하고,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끌려가며 섞이고 부서지는. 그런 처지에 있는 것이다. 오늘 세었던 돌의 수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생각에 잠겨 죽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선생님도,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고 있는 가엾고도 사랑스러운 존재. 그것이 우리 인간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내가 아닐까. 이런 결론을 지어본다.

그래서 찜질은 참 좋은 것이다. 혼자 그곳에 있으니, 마치 우주인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더욱이 퍽퍽한 맥반석 달걀을 먹으니 목 속이 진공상태가 된 느낌마저 든다. 그것을 나는 또 차가운 식혜로 흘려보내고. 또 그렇게 누워 공상에 빠진다. 엄마와 우주인을 생각하고. 나를 찾아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