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작은 찜질방. 멍하니 나는 바닥에 누워있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에 붙은 돌의 개수를 세어보다가, 아주 우연히 예전에 엄마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블랙홀에 들어간 우주인’
엄마의 말에 따르면, 한 남자가 있었다. 우주인의 꿈을 꾸던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했고, 고된 훈련 끝에 선발되어 우주선에 탑승한다. 그렇게 향한 우주는 적막과 어둠이었다. 그 안에서 동료들과 탐사를 이어가던 도중, 기지 폭발 사고로 인해 그는 파편처럼 튕겨 나갔다. 그 순간만큼은 이곳을 오기 위해 배웠던 수많은 지식과 노력은 아무 힘도 갖지 못했다. 중심을 잡을 수 없이 어지러이 그리고 빠르게 지구와 멀어져갔다. 그렇게 한참 칠흑 같은 어둠과 추위를 떠돌다가 거대한 블랙홀에 서서히 빨려 들어갔다는 잔혹한 이야기였다.
‘아가 그 안엔 괴물이 있단다.’
어릴 땐, 그가 느꼈을 공포를 상상하곤 했다. 땅에 디뎠던 두 다리가 암흑 속에 허우적대는 허무함이란 어떤 것일까. 방향도 속도도 나아갈 곳도 정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 맞이하는 죽음은 과연 얼마나 고요하고 잔인한 것일지 따위의 것들을 자주 생각했었다. 블랙홀 속에 사는 괴물도, 그 괴물의 울음소리와 생김새가 궁금해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렇다면 괴물의 정체는 뭐지? 왜 태어나 그곳에 머무르는 것일까. 그 우주인은 어떤 끝을 맞이했을까. 뭐 이런 고민을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우연히 들은 이야기를 과도하게 때로는 집요하게 생각하느라 매일 밤 두통에 시달리곤 했다. 애써 두 팔을 벌려 그 세상에 뛰어들었으며 그곳을 홀로 부유했다. 그 과정에서 쉽게 우울해하고 기뻐했다. 생각을 모아 우주를 만들고 그것을 부수기를 반복했다. 때때로 공상이 깊어질 때면 현실에 섞여들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에 휩싸였다.
‘전 이런 저를 사랑하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해가 지구의 저편으로 저물어가던 오후, 선생님은 담담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상담이 끝나고 나는 조금은 상기된 표정으로 그곳을 나왔다. 분명 그 순간, 마음의 짐을 덜어내었다는 사실에 후련함을 느꼈다. 그러나 언제부터 나의 깊은 내면 구석구석을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어졌다. 더욱이 그 사람이 나와 매일 마주해야 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이 힘겨웠다. 그 이후론 상담실에 가지 않았다. 철저하게 그곳을 피해 다녔다. 내가 생각해도 난 너무 이상하고 그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 굳게 믿었으니 말이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린 것이 그즈음이었을 것이다. 기대지 않고 말을 아끼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사람이 싫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조차도 그런 내가 어려웠다.
10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종로의 작은 찜질방에 누워있다. 주말이면 피곤한 몸과 정신을 풀러 혼자 이곳에 온다. 좋아하는 몇 가지 음악을 들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골똘히 고민한다. 생각이 넘쳐 머리가 아플 땐 고온 방에 들어가 땀을 흘리고 잠시 생각을 비운다. 그렇게 채우고 비우며 반나절을 보낸다. 별처럼 빛나는 천장의 돌들을 응시하며 여전히 가끔 그 우주인의 말로를 떠올려보기도 한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얼마나 흘렀을까. 그는 가족들과 나눠 먹던 파스타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을까? 괴물에게 붙잡혔을까. 어린 나를 재우려 만들어낸 이야기가 이토록 내 삶을 복잡하게 했으리라 엄마는 과연 상상했을까. 엄마에게도 곱씹을수록 복잡하고 아파지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을까 생각하다가 역시 인간은 참 복잡하군. 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땀을 한껏 흘리고 나니 정신이 또렷해진다. 가볍고도 아쉬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복잡한 생각의 우주를 짓고 부시며 지구에 발을 딛고 있는 내가 조금은 사랑스럽다. 여전히 파편처럼 부서지고 있음에도, 이 깊은 마음들을 솔직히 털어놓을 수 없어 글로 옮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말이다. 그리고 내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도 저마다의 마음을 채우고 비우는 과정을 밟고 있을 걸 상상하니, 찬란하다. 우리의 삶이. 지구에서의 이 순간이 빛나는 것만 같다.
산다는 건 결말을 알 수 없는 블랙홀로 끌려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나는 무기력감과 공포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있다. 그리고 때로는 사랑과 찬란함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우리는 지구를 떠나 허공을 배회하는 우주인과 닮아있다. 이제는 갈 수 없게 되어버린 세상을 영원히 그리워하고,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끌려가며 섞이고 부서지는…. 그런 처지에 있는 것이다. 오늘 세었던 돌의 수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이 생각에 잠겨 죽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마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선생님도,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리고 있는 가엾고도 사랑스러운 존재. 그것이 우리 인간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내가 아닐까. 이런 결론을 지어본다.
그래서 찜질은 참 좋은 것이다. 혼자 그곳에 있으니, 마치 우주인이 되어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더욱이 퍽퍽한 맥반석 달걀을 먹으니 목 속이 진공상태가 된 느낌마저 든다. 그것을 나는 또 차가운 식혜로 흘려보내고…. 또 그렇게 누워 공상에 빠진다. 엄마와 우주인을 생각하고…. 나를 찾아가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