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립미술관,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展…‘조각’의 무한한 확장
수원시립미술관,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展…‘조각’의 무한한 확장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12.0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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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조각가 에르빈 부름 개인전, 23.3.19까지
다층적인 ‘조각’ 의미 주목, 무한한 상상력 제안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조각’이란 어떤 장르일까. 전통적인 조형물이면서 신체를 통한 행위까지 ‘조각’의 대상으로 바라보고자 한 오스트리아 조각가 에르빈 부름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다. 수원시립미술관은 오스트리아 조각가 에르빈 부름의 개인전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을 오는 7일부터 내년 3월 19일까지 수원시립미술관에서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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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빈 부름, 사순절 천Lent Cloth, 2020, Metal, wool, 1100 x 750 x 5 cm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에르빈 부름 Erwin Wurm(b. 1954-)은 오스트리아의 빈과 림부르흐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동시대 조각가로 2017년 제57회 베니스비엔날레 오스트리아 국가관 대표 작가다. 부름의 작업은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유도한다. 특히 소비 지상주의, 비만, 이민과 같은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유쾌하게 풀어내고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모순과 불합리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1980년대 후반부터 약 40년간 이어져 온 부름의 작업은 모두 조각의 본질과 형식에 관한 탐구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런 작업 과정에 대해 “어떤 작품들은 일상의 합리적인 생각을 넘어 혼란으로 나아간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1980년대 말 일상적인 옷을 조각의 재료로 사용하며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때부터 형태가 변화하거나 부피가 증감하는 모든 ‘현상’ 자체를 조각으로 보았고, 1990년대에는 자신의 신체를 소재로 하는 조각에서 시작하여 90년대 중반 이후 조각의 대상을 ‘행위’로까지 확장했다.

▲<2부: 참여에 대한 고찰> 섹션 전시 전경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 《에르빈 부름: 나만 없어 조각》은 에르빈 부름의 작품 세계를 소개하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전방위적 활동을 조망한다. 에르빈 부름에게 조각이란 전통적인 조형물이자 신체를 통한 행위, 그리고 물리적인 형상 없이 존재하는 개념이다. 전시는 부름이 제안하는 ‘조각’의 다층적인 의미에 주목하면서 예술에 대한 선입견을 깨고 상상력을 넓힐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본다.

전시는 <1부: 사회에 대한 고찰>, <2부: 참여에 대한 고찰>, <3부: 상식에 대한 고찰>로 이뤄졌다. <1부: 사회에 대한 고찰>에서는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현상들을 유쾌하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담아낸 조각들을 소개한다. 작가는 부드러운 재질의 조각, 속이 빈 조각 등 다양한 재료를 통해 기존 조각이 지닌 무게와 양을 덜어내고, 녹아내리거나 부푼 형태로 현대 사회의 현상들을 재치 있게 은유한다. 1990년대 초반 사람의 신체도 조각 일부로 바라보며 조각의 본질에 대한 변화를 모색했던 <13 풀오버 13 Pullovers Series>(1991)와 <8일 만에 L 사이즈에서 XXL 사이즈 되는 법 From L to XXL in 8 Days>(1993) 같은 작품을 선보인다.

▲<3부: 상식에 대한 고찰> 섹션 전시 전경 (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2부: 참여에 대한 고찰>에선 1990년대 중반부터 조각에 대한 의미를 재정의한 부름의 작업을 선보인다. <1분 조각 One Minute Sculpture>은 작가가 국제적인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시리즈로 조각과 행위의 상호 관계성을 묻기 시작한 작품이다. 이 시리즈에 참여하는 관람객의 행위는 조각을 이루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1분 조각>은 조각에서 형태를 이루는 덩어리를 완전히 없애고 그 공간에 1분이라는 시간성을 담아 ‘행위’가 조각이 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1분 내외의 짧은 시간 동안 관람자가 직접 조각이 되어보는 참여형 연작으로, 작가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린 작품이다.

<3부: 상식에 대한 고찰>은 조각의 형식과 경계를 뛰어넘는 작가의 다양한 시도들을 선보인다. 최근 작가는 추상 형태로 옮기는 과정에 집중하여 새로운 조각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다.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는 평면도 ‘조각’의 범주에 속한다. 우리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담은 <게으름을 위한 지시문 Instructions for Idleness>(2001)은 ‘사진 조각 Photographic Sculpture’으로 분류된다. 평생 조각의 형식과 본질을 탐구해 온 에르빈 부름은 사진도 ‘조각’이라고 정의한다. 이 연작은 작가가 직접 모델이 되어 게을러지는 법을 다각도로 풀어낸 사진 작업이다.

▲에르빈 부름, 팻 컨버터블 (팻카) 2019 알루미늄,주물,래커 133 x 240 x 430 cm(사진=수원시립미술관 제공)

이번 전시에서 부름은 조각의 무게를 덜어내고 부풀거나 녹아내리는 형태를 만들며 그 과정을 영상으로 제작하는 등 일반적인 조각과는 다른 작업 방식을 보여준다. 무형의 생각만으로도 조각을 만들 수 있다는 그의 발상은 여러 예술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관람객에게는 규정된 조각에 대한 해석을 넘어설 수 있는 자유로움을 선사하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수원시립미술관 박현진 학예사는 “이번 전시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에르빈 부름의 전방위 활동을 조망하는 대표작이 소개된다”라며 “관람객이 작가의 작품과 함께 호흡하며 조각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조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