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훈의 클래식비평]베세토 오페라단의 '카르멘', 열광의 무대
[이채훈의 클래식비평]베세토 오페라단의 '카르멘', 열광의 무대
  • 이채훈 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 전문기자,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 승인 2022.12.13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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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매혹시킨 집시의 춤과 투우사의 노래 
카르멘 죽이지 않는 새로운 연출 검토할 때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서울문화투데이 클래식전문기자/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전 MBC 음악PD

베세토 오페라단의 <카르멘>이 지난 10일과 11일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올랐다. 청중들은 전주곡, 하바네라, 투우사의 노래 등 귀에 익은 선율에 매혹됐고, 열광적인 갈채를 보냈다.

주인공 카르멘은 집시 여인이자 담배공장 노동자로, 성적 자기 결정권을 당당히 주장한다. 그녀는 1875년 3월 초연 당시 부르주아 관객들에게 나쁜 여자, 팜므 파탈로 인식됐고, 이런 청중들의 반감 때문에 <카르멘>은 초연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비제는 관객들의 싸늘한 반응에 좌절하여 심장병을 앓다가 초연 석달 뒤인 그해 6월, 37살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오페라는 비제 사후 빈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두어서 불멸의 레퍼토리에 올랐다. 니체는 바그너에 열광했지만, 그와 결별한 뒤에는 비제의 <카르멘>을 최고의 오페라로 꼽으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10일 공연의 압권은 역시 귀에 익은 선율이 많이 등장하는 2막이었다. 집시의 춤과 노래에 극장은 열광의 도가니가 됐다. 사라사테가 <카르멘 환상곡>의 마지막 대목에 넣은 바로 그 화려한 음악이다. 오케스트라는 점점 더 빠른 템포로 숨가쁘게 몰아쳤고, 합창과 어우러지며 관객들을 엑스터시에 몰아넣었다. 투우사 에스카미요가 등장하는 대목의 음악도 관객들을 매혹시켰다. 귀에 익은 투우사의 노래가 나오자 관객들은 손뼉을 치며 음악에 화답했다.  

카르멘 역의 메조 소프라노 한혜진은 카리스마 넘치는 노래와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1막 하바네라는 물론, 2막 돈 호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춤추는 대목은 압권이었다. 돈 호세 역의 테너 이정원은 최상의 컨디션이 아니었던 듯, 음정이 불안한 대목이 몇 군데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열정적인 노래와 연기로 많은 갈채를 받았다. 특히 카르멘와 함께 부른 이중창 ‘꽃의 노래’는 매우 훌륭했다. 에스카미요 역의 바리톤 김동원도 당당하고 씩씩한 이미지를 잘 살린 노래로 열연했다. 2막 투우사의 노래는 이날 청중들에게 가장 큰 환호를 이끌어낸 대목이었다. 미카엘라 역의 소프라노 김지현은 맑은 음색, 정확한 음정, 섬세한 표정으로 관객에게 커다란 만족감을 주었다. 3막 어두운 산속에서 혼자 부르는 아리아는 오케스트라와 아름답게 어우러지며 마음을 사로잡았다. 

김일훈(주니가), 허철(모랄레스), 구본진(레멘다도), 유재언(단카이로), 박현진(프라스키타), 변지현(메르세데스)도 충실히 제몫을 해냈다. 마에스타 오페라합창단. 늘해랑 리틀어린이합창단, 해맑은아이들 어린이합창단도 참 잘 했다. 귀여운 목소리로 열심히 노래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롤라 장과 카를로스 J의 무용은 다소 거친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오페라에 흥미로운 볼거리를 더해 주었다. 19세기 세비야의 분위기를 잘 살려준 의상 디자인이 세련된 느낌이었고, 심플한 무대 디자인은 편안했다. 정곡을 잘 찌른 정혜원씨의 친절한 해설도 호감을 주었다. 

베세토오페라단의 오페라 '카르멘' 커튼콜의 한 장면.
베세토오페라단의 오페라 '카르멘' 커튼콜의 한 장면.

불행히도 1막 첫 부분은 다소 산만했다. 등장인물들이 무대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도 음악은 역동적인 맛이 부족했고, 트럼펫 솔로가 틀리는 바람에 산만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카르멘 역의 한혜진이 <하바네라>를 부를 때부터 분위기가 안정됐고, 돈 호세 역의 이정원과 미카엘라 역의 김지현이 이중창을 부를 때부터 관객들은 몰입하기 시작했다. 지리 미쿨라 지휘의 소리얼 필하모닉은 수준급이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4막이 끝날 때까지 안정되고 견고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2막 전주곡의 파곳 솔로, 3막 전주곡의 플루트 솔로는 매우 훌륭했다. 세종문화회관의 공간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음악이 관객을 압도하기 어려운 조건인데도 이 정도로 뚝심 있게 음악을 이끌고 간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큰 찬사를 받을 만했다.

<카르멘>을 볼 때마다 드는 의문이 있다. 카르멘을 꼭 죽여야만 할까? 돈 호세가 카르멘을 죽이지 않고 마무리하는 건 불가능할까? 미카엘라는 원작에 없는 인물을 오페라 대본에 넣었다고 하는데, 그녀에게 좀 더 큰 역할을 주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돈 호세는 카르멘을 죽이기 직전 “나와 함께 가자”고 요구한다. 바로 그 순간 미카엘라가 등장해서 돈 호세에게 “나와 함께 가자”며 살인을 막는 반전을 시도하면 어떨까? 돈 호세는 마지막 순간에 미카엘라의 손에 이끌려 고향으로 가고, 카르멘은 에스카미요와 함께 남는 걸로 설정하면 어떨까? 음악을 그대로 두고 마지막 대사 몇 줄만 – “나를 체포하시오, 사랑하는 이를 죽인 사람이요” - 바꿔도 가능할 듯하다. 카르멘과 에스카미요가 오래 사랑하든 곧 헤어지든, 그건 우리 관심사가 아니다. 카르멘이 자유를 선언하고 마무리하는 새로운 해석으로 연출하는 걸 검토할 때가 된 듯하다. 특히 데이트 폭력과 이별 살인이 자주 일어나는 요즘, 이런 결말도 나름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여 멋진 조화를 이뤄낸, 성공적 무대였다. 오페라를 자주 접하기 어려운 분들에게 이날 <카르멘>은 평생 간직할 만한 추억을 선사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