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미술한류 원년, 이렇게 시작했다 Ⅱ
[특별기고] 미술한류 원년, 이렇게 시작했다 Ⅱ
  •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 승인 2022.12.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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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

<지난호에 이어서>

이에 나는 절제를 강조하면서 이야기가 너무 길다고 지적해, 객석의 폭소를 자아내게 했다. 이날 작가와의 대담은 현지인에게 새로운 예술 체험을 들려주었고, 한국 미술의 또 다른 독자적 세계를 확인시켜주는 자리였다.

다트머스대학에서의 한국미술 심포지엄은 3부분으로 나누어 전문 학자들의 논문 발표로 이루어졌다. 한국현대미술과 비평적 실천, 동시대성, 그리고 영상작품 발표와 토론 등으로 꾸몄다. 캐나다의 박소양 교수, 서울대의 신정훈 교수, 앨라배마의 김민아 교수,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록의 이솔 교수, 추계예대의 김현주 교수, 동덕여대의 임산 교수, 캘리포니아 주립대의 정승연 교수, 아리조나 대학의 김지혜 교수 등이 심포지엄을 이끌었다. 3일째는 하버드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 한국미술을 위한 큐레이터 워크숍을 진행했다. 전문가 50명이 참가한 이 프로젝트는 한국 현대미술의 국제화 문제 등 사뭇 진지한 분위기로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이번 한국미술 주간 행사를 위하여 김성림 교수는 사명감을 갖고 한국미술의 선양사업에 앞장섰다.

‘한국미술 주간’ 행사는 국립현대미술관, 다트머스대학, 국제교류재단(KF)이 공동 주최했다. 이와 같은 협업 체제는 효과 또한 가득하여 한국미술 주간의 연례행사를 꿈꾸게 했다. 하기야 대륙별, 도시별 혹은 주제별 등으로 나누어 계속 이어 갈 수 있다면, 한국미술의 국제화 사업에 기여도가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존재 알리기’이다. 뭐라도 알아야 관심을 둘 것이고, 이런 바탕에서 애호가나 전문가도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미술의 국제화는 국격(國格) 제고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할 것이다. 문화강국의 이미지는 얼마나 가슴 떨리게 하는 말인가. 더불어 미술작품은 상품가치와 직결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곧 스타작가의 탄생은 경제적 효과와도 연결된다. 그림 한 장이 수십 혹은 수백 억 원 가는 세상이다. 과연 자동차 몇 대를 수출해야 이와 같은 순이익금을 챙길 수 있을까. 현대미술품을 상품가치로서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제 미술시장의 장벽은 매우 높다. 이 장벽을 통과하기 위해 한국 미술의 갈 길은 너무 멀다. 상품, 아니 스타작가를 양성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절망만 할 수 없다. 한류는 희망이다. 미술분야 역시 희망을 갖고 국제무대를 두들기게 하고 있다. 이번 미국 내의 박대성 순회 전시를 주최한 각 미술관은 박대성 작품의 매입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렇게 한 걸음 또 한 걸음씩 걸어가야 할 것이다.

▲MMCA ‘2022 한국미술주간’ 현장, 윤범모 관장이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MMCA 제공)
▲MMCA ‘2022 한국미술주간’ 현장, 윤범모 관장이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MMCA 제공)

독일과 일본 등의 한국 전시

국립현대미술관은 현대차 시리즈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문경원 전준호 작가의 전시를 일본 가나자와21세기미술관으로 보냈다. 이 전시 역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개막식에서 나 또한 감격의 인사말을 해야 했다. 성황리에 끝난 전시, 입장객 숫자는 무려 90만 명을 넘었다. 서울관에서 인기리에 전시했던 히토 슈타이얼 개인전의 입장객보다 조금 더 많은 숫자였다. 아니, 거의 무료에 가까운 서울관 전시에 비해 일본 전시의 입장료는 매우 비쌌다. 가나자와의 미술관은 예상과 달리 거금의 입장 수입을 올렸다. 그래서 그랬을까. 일본측은 작가에게 거금의 사례비를 보냈다. 이 또한 미술관 풍토에서는 평소 듣기 어려운 미담이기도 했다. 전시 성공에 따른 보너스 지급! 이 얼마나 환상적인 말인가. 문경원 전준호 전시는 미디어 아트의 이색 전시였음에 틀림없다. 특히 주요 작품의 하나로 DMZ 자유의 마을을 무대로 한 영상작품은 감동을 안겨주었다.

독일 칼스루헤 미디어아트 센터(ZKM)에서는 재불작가 김순기의 개인전 <게으른 구름>을 개최했다. 이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했던 전시의 독일 순회전이었다. 서울관 전시를 즈음하여 작가는 두툼한 자료집의 출판을 서둘렀다. 최근 출판된 한글, 영문, 불문의 3가지 언어의 이 책 [김순기와의 만남- 글 모음, 1975-2021]은 작가의 예술철학을 살피게 하는 자료이다. 올해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더불어 카셀 도큐멘타가 열린 해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카셀과 협업으로 <MMCA 아시아 프로젝트 서울과 카셀>을 현지에서 개최했다. 영상 작품 위주로 참여한 이 행사에서 서울 발신의 메시지를 세계에 알렸다. 9월초 서울은 프리즈 아트페어로 약간 들뜨기도 했다. 해외에서 많은 미술 관계자들이 서울에 운집했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도 동행하고자 특별 행사를 주최했다. <올해의 작가상 10년의 기록>전시를 기념한 해외 VIP 초대의 밤을 개최하여 흥행을 이루었다.

뉴욕 구겐하임 전시를 준비하면서

미술한류. 2023년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 특별전이 개최될 예정이다. 뉴욕에 이어 LA로 순회될 것이다. 이 전시는 한국 실험미술의 본격적 재조명 이라는 의미에서 주목을 요하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이 전시를 위해 구겐하임의 전시 예정 공간을 점검했다. 암스트롱 관장의 친절한 현장 안내로 둘러본 전시장은 아주 훌륭했다. 원래 2개 층만 할애할 예정이었으나 3개 층으로 확장했단다. 그만큼 한국 미술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이리라.

중국의 국가미술관인 중국미술관과의 소장품 교류전도 추진중에 있다. 이를 위해 덕수궁관에서 중국미술 관련 학술대회를 개최한 바 있다. 더불어 덕수궁관에서의 서예전은 내후년 타이페이의 시립미술관으로 ‘수출’할 예정이다. 한자문화권 즉 서예의 종주국 문화권에 한국 서예전시의 진출은 미묘한 뉘앙스를 안겨준다.

미술한류! 이제 본격 출범의 고동을 울렸다. 물론 갈 길은 멀다. 누군가 발걸음을 떼어야, 그리고 동행이 자꾸 생긴다면 결국 길이 생길 것이다. 처음부터 길이 된 경우는 없다. 가시밭길이라도 누군가 걸어가야 길이 생긴다. 이제 한류의 물결은 거세게 세계를 흔들고 있다. 미술분야의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하는 작금의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