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내가 만난 한국의 극작가들
[양혜숙의 장르를 넘어서]내가 만난 한국의 극작가들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 승인 2022.12.1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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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우선 <서울문화투데이> 창간 14년을 맞이하여 14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온 세상이 과학화, 디지털화하며 변화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현실입니다. 더구나 코로나로 온세계가 홍역을 치르는 가운데 "만남의 장"에서만 교류와 감흥의 가능성 속에서만 발전이 가능한 문화와 예술을 주제로 다루는 어려운 조건의 현실을 버텨내며 오늘에 이른 서울문화투데이의 이은영 사장을 비롯하여 이 신문을 지키며 발전시켜온 모든 식구들의 그 투지와 저력을 감탄하는 바입니다. 또한 진심으로 그 열네 번째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지난 11월 28일 오후 5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일한 한국 연극계의 권위 있는 극작가 상인 [차범석 연극재단] 이 수여하는 <올해의 극작가>를 선발하여 그 의미 있는 수상식을 거행하였다. 뮤지컬 분야의 대상자는 찾지 못하여 극작 분야에서만 <산을 옮기는 사람들> 김민정 작가가 수상하였다. 그 영광스러운 수상식에 안타깝게도 코로나 와중이라 참석을 못하고 <차범석 연극재단> 이사장이시며 배우 출신인 차범석 극작가의 따님 차혜영 님에게 불참의 양해를 구하고 집에서 쉬기로 하였다.

집에서 누워 극작가이며 한국문화예술 진흥원 원장을 지내시며 한국 연극계에 혁혁한 공을 세우신 차범석 선생님의 마지막 병상을 찾아뵙던 옛일이 불현듯 떠올랐다. 당시 듣기로는 차범석 선생님이 무슨 암으로 투병 중이시며 그래서 일산에 있는 원자력 암병원에 입원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곳에 아드님인가 사위님이 의사로 계셔서 다행이라는 소식도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이화여대 독어독문과 교수로 있으며 독일 연극을 원어로, 또는 번역하여 무대에 올리며, 연극 평을 주간조선에 실으며 바쁜 활동을 하던 때였다.

병원에 계신 차선생님을 어쩌면 마지막으로 뵈올 수밖에 없을 거라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생님은 많이 야위였으나 의외로 담담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나를 맞아주셨다. 흔들림이나 전전긍긍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는 채 아주 차분하게 '죽음이여, 올 테면 와라, 내가 맞이해주마' 하는듯한 여유로움으로 한국 연극계의 어지러움을 잘 살펴 정도를 세우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간간이 표정으로는 육체적 내면의 고통을 억누르시는 듯하였으나 내색을 안 하시는 모습에서 나는 선생님을 위로하며 자리를 떠나왔다.

차범석 희곡을 여러 편 훑터보면서 그래도 공연된 작품으로는 <산불> 만큼 관객의 뇌리에, 그것도 한국의 50년대 상황을 생생히 심어주는 작품은 없는 듯하다. 다행히 이 작품은 한국 연극의 사실주의 연극으로는 창극과 뮤지컬(박명성 제작) 연극 등으로 우리들 뇌리에 깊이 심어진 작품이다. 또한 차범석 연극재단 또한 동랑 유치진 연극재단, 이해랑 연극재단과 더불어 한국 연극계의 단단한 바탕을 세워가는 3개의 시상하는 재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 뒤를 이어 한국 연극계의 극작가로 우리나라 희곡작가로 논의되는 작가로 나는 김의경 극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 극작가로, 연극계 지도자로 자리매김한 실험극장 창안자로, 현대극단 대표 우리나라 뮤지컬의 씨앗을 뿌리며 화려한 연극계의 기획자로, 그의 거의 마지막 역작인 안중근 의사를 다룬 작품 <영웅> 은 아직도 우리들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김의경 작가는 나와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 고등학교 동기 동창으로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연극의 선구자로 연극에 열중한 재원으로 기억되며, 대학도 마찬가지로 서울대 문리과대학 동기 동창으로 우리나라 연기계의 대선배로 굳건한 명배우 이순재 배우와 같은 철학과 출신이다.

김의경 작가는 차범석 극작가의 다음 세대로 1924년생인 차범석 작가의 정서와는 다른 1936년생으로 그다음 세대의 정서를 대변하나 나이는 별 차이가 없는 윤대성 극작가와는 좀 다른, 그러나 어딘가는 맥을 같이하는 극작가들이다. 같은 시대 한국의 무대를 열정적으로 채워주던.

그러나 어느 날 빨리도 타계한 극작가 김상경을 또한 놓칠 수없다. 다행히 그의 미망인이며 배우 출신인 한보경 님이 꾸준히 김상경 연극재단을 운영하며 그의 전집을 완성 출판을 매듭지어 연극계에 기여하고 있다.

이와 거의 동시대에 살면서도 한국 연극발전에 또 다른 초석의 바탕을 만들며 한국 연극의 <전통의 현대화>의 뚜렷한 시발점의 깃대를 꽂은 작가는 극작가 오태석을 비켜갈 수 없다. 그는 근래 불명예스러운 일로 거명이 허락되지 않으나, 극작가로서 한국 연극 발전에 새로운 큰길을 연 작가로 우리는 그의 기여도를 비켜갈 수없다. 그는 ‘극단 목화‘를 결성하고 끊임없는 극작과 연출을 통하여 한국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세웠으며 또한 한국형 부조리 연극의 태두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킨 훌륭한 극작가다.

그는 한국 극작 속에 한국 언어의 특징을 어떻게 살리면서도 세계 현대연극의 흐름, 즉 세계 연극 시류에서 뒤처지지 않는 구성과 템포를 놓지지 않으려고 꾸준한 노력을 하며 끊임없는 변신을 시도했다. 또한 두 번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 위에서 구현되는 한국어의 구수한 정감을 놓지지 않으려는 노력이 구석구석 숨겨져 있다. 이 작가만큼 한국인의 정서를 현대 정서 속에 녹여보려고 애쓴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 연극의 현대화 작업에 이 작가만큼 자신의 작가정신 속에 <전통의 현대화>를 진지하고 꾸준히 살리면서도 자기의 개성을 놓지 않고 끌고 가며 작업한 극자 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하여 그의 꾸준한 창의적 연극 작업은 한국 연극의 총체적 한 단계를 끌어올리는데 근원적 기여를 했음을 후배들은 기억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