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모두’의 만남과 쉼이 있는 박물관을 꿈꾼다”
[Special Interview]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모두’의 만남과 쉼이 있는 박물관을 꿈꾼다”
  • 이은영 발행인·이지완 기자/김재성 사진기자
  • 승인 2022.12.14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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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이건희 컬렉션’ 해외 전시 긍정적 협의 중
25년 박물관 행정 경험, 현장 목소리 중시
‘국립’의 역할은 차별화와 방향 제시
‘하지 마라’라는 말보단 허락받으면 할 수 있는 박물관 되길
세 번 읽은 조정래 『천년의 질문』, 초심에 대해 생각하게 해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이지완 기자/김재성 사진기자] 지난해 11월 공개된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은 쉼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 사회 속 ‘사유’를 전하는 공간으로 컨셉을 잡아 국립중앙박물관의 하나의 브랜드 관이 됐다. 삼국시대 6세기 후반의 반가사유상과, 7세기 전반에 제작된 반가사유상의 만남은 시대를 넘어, 현대인들에게 잔잔한 사유의 시간을 전한다. 전시장을 소극장 크기인 24미터로 디자인하면서, 반가사유상이 지니고 있는 섬세한 주조기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제안했다. 단순히 유물을 보여주는 것에서 나아가, 관람객에게 유물을 통해 지금을 되돌아보고 감상의 시간을 제안하는 전시 연출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새로운 시도였다.

▲관장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촬영에 응하고 있는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성 사진기자
▲관장실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촬영에 응하고 있는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성 사진기자

지난 달 《사유의 방》의 뒤를 잇는 또 하나의 몰입형 전시 공간 《고려비색》이 공개됐다. 상설전시관인 <청자실>을 개편하면서 조성된 이 공간에선 국보 5점과 보물 3점을 포함한 상형청자 18점을 동시에 선보인다. 이렇게 많은 수의 청자가 한꺼번에 공개된 것도 이례적인 일이지만,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청자’가 지닌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도록 섬세하게 조성한 전시 공간도 주목할 지점이다.

《고려비색》 공간의 전시장 유리는 관람객의 형상이 유리에 비치지 않으며, 전시박스 안에 있는 ‘청자’만 오롯이 돋보인다. 특수 재질의 유리를 사용하면서 ‘청자’를 관람하는 이들이 좀더 ‘청자’ 그 자체에 빠져들 수 있게 만들었다. 또한, 사진을 찍어도 유물만 담을 수 있어 최근 작품을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어 하는 전시 관람 경향을 반영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전시박스 안에 섬세하게 조정돼 배치돼 있는 조명 덕분이다. 각각의 청자마다 모두 다른 각도의 조명을 설정해 작품이 지니고 있는 섬세한 장식을 돋보이게 한다.

▲《고려비색》공간에 전시된 국보 상형청자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려비색》공간에 전시된 국보 상형청자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공간 전체에 대한 설계도 세심하게 구성됐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도를 지니고 있는 《고려비색》 공간은 빛은 받으면 은은한 녹색으로 보이는 철제 망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이는 공간 전체적인 분위기를 ‘청자’의 느낌으로 감싸주는 효과를 낸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45년 8월 15일 이후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인수해 12월 3일 개관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국립 문화기관으로 자리해왔다. 2005년에는 박물관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새로운 용산 시대를 열었다. 지난하고, 두터운 시절을 지나는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은 언제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기관이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국립중앙박물관은 여러 변화를 맞이해 왔다. 최근에는 대한민국의 높아진 문화적 위상을 드러내며, ‘IT 강국’의 면모를 전시콘텐츠로 선보이고 있다. 수준 높은 미디어 영상 작품으로 유물의 정보를 전달하거나 전시의 방향성을 전하기도 하고, 디지털 실감 영상관을 통해 VR콘텐츠로 실제로는 가볼 수 없는 과거의 한 지점을 가상공간 상의 여행으로 제안한다.

몰입형 전시 공간과 더불어 밀도있는 전시 콘텐츠도 박물관 ‘국립’의 격을 높이고 있다. 현재 개최되고 있는 오스트리아 교류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에 연일 뜨거운 관심이 이어지고 있고, 올해 4월부터 8월까지 개최된 故이건희 컬렉션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도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이러한 국민적 관심은 해외로도 이어져 현재 박물관은 ‘故이건희 컬렉션’ 해외 교류전 협의로 바삐 움직이고 있다.

지난 7월 18일 국립중앙박물관에 신임관장이 임명됐다. 1997년 국립중앙박물관 대구박물관 고고부 학예연구사로 재직을 시작해 25년 간 박물관 주요 요직을 두루 경험한 윤성용 신임관장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시기, 우리나라의 얼과 정체성‧문화를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문화유산 보존고이자 전시장인 ‘국립중앙박물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세계로 나아가는 동시에, 세계인을 대한민국으로 불러들이며 국민들의 저력이 되어줄 국립중앙박물관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게 될까. 윤 신임 관장은 ‘모두’라는 단어를 통해 앞으로 ‘국립박물관’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했다. 점점 더 개인의 파편화가 일상적이 된 시기에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를 어떻게 ‘모두’로 만들어줄 수 있을까.

▲《사유의 방》 전경 ⓒ원오원아키텍스
▲《사유의 방》 전경 ⓒ원오원아키텍스

취임 6개월 차에 들어서고 있다. 25년간 박물관 주요 요직을 두루 경험해 박물관 행정 업무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인사로 주목받았다. 현장 경험을 관장직에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현장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서 듣고, 직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 실무를 하면서 많이 느꼈던 것이 있다.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나가면, 그 방향을 제시한 사람이 사라졌을 때 어떤 업무들은 금방 사라지곤 한다. 그 방향성을 제시하는 사람이 관장이라면, 관장이 임기를 다했을 때엔 관장이 추진했던 일들이 모두 멈춰버리는 것이다.

일은 생명력을 가지고 계속 스스로 지속돼 나가야 한다. 우리 박물관에서 근무하고 있는 분들은 모두다 전문가다. 시설직, 기술직, 학예연구, 행정 등 모두들 개별 분야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이들이다. 그들이 보고 있는 방향,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존중하고 함께 나아가야지 장기적으로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현장에서는 사실 어떻게 얘기할지는 모르겠다. 어떤 담당자 선생님들은 ‘관장이 왜 저렇게 게으르나’할지도 모르겠지만, 되도록 담당자 의견과 다른 의견을 내지 않으려 한다. 현장에 있는 그 분들이 전문가라는 생각에서다.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성 사진기자

어떤 일에 있어서는 관장이 종합적인 시각을 제안해야 할 때도 있지 않을까? 전체를 통합해서 보고 통찰한 뒤 새로운 제안을 할 수도 있을텐데.

항상 내가 말하고, 우리 박물관이 하는 말이 있다. 우리 박물관은 우리만을 위해서는 없다, ‘모두’를 위한 박물관이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당신들이 하는 일도 ‘모두를 위한 박물관’을 향한 한 걸음이 되게 하자고 당부한다. 이런 정도의 방향성 제안이 각각의 개별적인 존재들이 같은 지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표가 되고 있다고 본다.

답한 맥락처럼, 지난 8월 열린 취임 언론간담회에서 ‘모두에게 열린 박물관’이라는 키워드를 강조했다. 특히, MZ세대를 겨냥한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표했다. 윤 관장이 지향하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어떤 모습인가.

내가 항상 생각하고 강조하는 것이 ‘변화’다. 변화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변화를 주도해 가야 된다고 본다. 국립박물관으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의 조직으로서도 변화를 자꾸 시도를 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변화하지 않는다면, 지속은 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후퇴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박물관 안에서 변화를 꾀하게 됐는데, 그 중 ‘새로운 관람객 맞이’가 지금 우리 박물관이 나아가고자 하는 있는 변화다.

지금 MZ세대는 미술관에는 가지만, 상대적으로 박물관에는 오지 않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도화된 학교 교육 경험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학교 현장 학습으로 박물관에 와서 ‘뭐뭐 보고 어디서 몇 시까지 모여라’하는 그런 일방적이고 지루한 경험이 박물관에 대한 이미지가 된 것 같다. 이 상황 속에서 박물관이 변화하지 않으면, 이 MZ세대는 영원히 박물관과 등을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왜 MZ세대가 박물관을 찾지 않게 됐는지,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에 대해 고민하고 변화하려 노력하고 있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전시 기획, 연출 방법에서 변화를 꾀하고 있다. 박물관에서 단순히 유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유물들의 연관성과 맥락, 서사들을 상상해볼 수 있는 전시 공간을 만들고자 한다. 상상의 확장과 정보 전달을 위해 다양한 시청각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설명을 영상미디어로 전달하기도 하고, 감각의 확장을 위해 전시공간에 특별히 제작한 음악을 사용하기도 한다. 근간에 새로 단장한 ‘청자실’의 <고려비색> 공간이 음악을 활용한 전시 공간이다.

상호작용적 전시 공간 연출 같다. 혹시 체험 프로그램도 있는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박물관에 잘 오지 않는 MZ세대들에게 직접 묻고, 직접 개선 방안을 제안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박물관 홍보 참여 프로그램으로 3월부터 10월까지 실행했고, 박물관 내에서 연극이나 행사들을 진행하는 활동으로 구체화 됐다.

프로젝트에 대한 피드백들이 있었나.

개최한 행사에 참여한 인원의 7,80%가 모두 MZ세대라는 것이 긍정적 변화였다. 또 그리고 박물관이 나와 따로 떨어진 어떤 어려운 곳이 아니라, 내가 쉽게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표현되기 시작한 것이 중요한 변화라고 본다. 더 이상 박물관이 공부만 하는 곳으로 치부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다.

▲지난 4월 개최된 故이건희 컬렉션 기증 1주년 기념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 전시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최근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故 이건희 컬렉션’ 전시 관련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긍정적인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했는데,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지금 한 군데는 확정이 된 상태다. 내년까지는 국내에서 순회전시가 지속될 예정이고, 이후 소장품의 휴식기간을 지켰다가, 전시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현재 스미스소니언 산하의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외에 미국에서 한 세 군데 정도와 협의를 하고 있는 중이다.

‘故 이건희 컬렉션’이 해외에 소개된다면 어떤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까.

외국에서 ‘대한민국’을 생각했을 때 여러 가지를 떠올릴 테지만, 그 중 한 가지가 아마 ‘삼성’이라는 기업일 것이다. 해외 박물관에서 이렇게 관심을 갖는 이유도 아마 ‘삼성’의 회장이 모았던 작품이라는 데에서 오는 것 같다고 느낀다. ‘이건희’라는 사람의 컬렉션이라는 지점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없던 외국인들에게도 꽤 흥미로운 지점으로 다가설 것으로 보고 있다. 전시를 통해 대한민국이 가지고 있는 유물들의 우수성을 잘 알리고,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

올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한국실 지원 사업’을 이관 받았다. 세계 주요 박물관에 한국실 신규 설치 및 한국실 공간 개선, 전담 인력 채용 지원 등 체계적인 지원을 확대해 나간다고 했는데,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현재 한국실은 전 세계 23개 국가에 68개 전시공간이 있다. 기존에도 이 한국실을 업무를 박물관에서 진행하고 있었는데, 해외 한국실에서 전시를 한다고 하면 전시품을 대여해주는 식의 업무 지원 수준이었다. 이번에 사업을 이관 받으면서 기존보다는 좀 더 나아간 단계에서 한국실을 지원하게 됐다.

해외에서 한국실을 이미 만들었는데 공간이 좁다면, 개선의 의지가 있는지 묻고, 개선할 계획이 있다면 우리도 지원하겠다는 식의 입장을 전한다든가, 한국의 유물을 잘 모른다면 한국의 유물을 보존·연구할 수 있는 인력지원을 지원하거나 비용을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관여하는 맥락을 확장시키게 됐다. 2개 나라 7개 박물관과 단기·장기 지원을 하고 있는데, 단기 지원의 경우 선과 보존처리 지원을 하고 장기는 계획을 나누어 진행할 예정이다. 미국과 영국 박물관과 소통을 자주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성 사진기자

지난해 개관한 독일 홈볼트포룸(Humboldt Forum)에서 중국관 한 귀퉁이 20평 전시 공간, 일본관 규모 10분의 1정도 밖에 안 되는 한국관의 입지가 문제가 됐었다. 심지어 당시 홈볼트포룸 전시담당자는 “한국은 청나라의 속국이었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해외박물관 속 한국관의 부실 운영 등이 개선될 수 있을까.

해외박물관 전시의 경우 대부분 그 박물관이 가지고 있는 소장품을 중심으로 전시를 꾸릴 수 밖에서 없다. 당시 독일 홈볼트포룸의 한국 소장품은 100여 점 정도였고, 적은 수의 유물로 전시장을 꾸리다보니 상대적으로 작고 초라한 전시공간이 연출된 듯하다. 현재 계속 협의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시관 확충의 문제는 시간을 들여 해결해야 한다. 되레, 한국에서 강요한다면 그 또한 상호존중에 어긋나는 문제다. 전시 담당자의 발언은 조금 와전된 내용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근간에 훔볼트 총재를 만나기도 했다. 앞으로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자는 대화를 나눴다.

지난 9월 중국 국가박물관의 한중일 공동기획전시 《동방길금-한중일 고대 청동기전》에서 중국이 한국사 연표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임의로 수정한 사건이 있었다. 이번 국감에서도 주요 안건으로 다뤄졌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이런 사건을 대비하고자 하는가.

중국의 연표 조작은 사기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어느 누구도 그런 행위를 한 적이 없었고, 아마 인류역사상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 박물관 측에서 전시 현장에 나가 최종 점검을 하지 않은 지점에 대해서는 박물관 측의 잘못을 인정한다. 하지만, 우리 박물관과 최종적으로 소통하고 확정을 한 연표자료를 중국 측에서 임의 조작한 것은 정말 상호신뢰를 무너뜨린 사기행위였다.

추측이지만, 중국 측 내부에서도 많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느껴진다. 조작된 한국사 연표를 보면 맨 하단에 참고 표시(※)를 하고 ‘이 연표는 국립중앙박물에 제시한 연표다’라고 적어 놨다. 중국 측은 전시를 열기 전 우리 박물관과 전시장에 어떻게 연표를 작성할 것인지 최종적으로 PDF도 공유하고 논의를 확정했다. 모든 것을 최종적으로 확정한 이후에 미처 ‘※이 연표는 국립중앙박물에 제시한 연표다’라는 말도 빼지 못할 정도로 급작스럽게 변경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박물관은 사실 확인 후, 중국 측에 사과를 요구했지만 중국에선 ‘담당 실무자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서 발생한 문제다’라는 식으로 면피했다.

사건 이후 중국과의 전시협약서 내용을 수정했다. 전시 내용이 다른 것이 있으면, 전시를 철수한다는 조항을 넣었다. 또 한중일 박물관 관장 회의도 이후에 있었는데, 중국 국가박물관의 관장은 계속 출장 중이라며 만날 수도 연락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계획을 발표했던 ‘문화유산과학센터’ 설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예산 관련해 고민을 안고 있었는데, 상황이 좀 개선됐는지.

예산은 증액됐다. 320억이 편성됐고, 내년부터 공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문화유산과학센터’의 설립은 아마 우리나라 보존 과학, 조사 연구 발전에서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는 기점이 될 것이라 본다. 과거에는 유물을 인문학적 방법으로 조사하고 연구했다면, 최근에는 방법이 자연과학적으로 달라졌다. 예를 들어 반가사유상 같은 경우도 같은 청동이지만 성분이 구리와 주석 성분이 각각 다른 경우도 존재한다. 과거에는 알 수 없던 사실들이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변화하면서 다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조사 연구, 보전 방법의 변화와 그 결과는 자연스레 국민들에게도 전해질 수 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는 우리 박물관이 전체적으로 나아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문화유산과학센터’는 큰 무리 없이 잘 진행될 것이다.

▲오스트리아 교류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을 관람하는 관람객들 ⓒ서울문화투데이

내년도 국립중앙박물관의 계획은?

큰 틀의 계획 방향을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체적으로 박물관의 전시 경향에선 큰 변화가 없을 것이고, 조금 더 주력하고자 하는 지점은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계층들을 위한 전시 프로그램의 확장이다. 현 정부의 방향성과는 상관없이, 2000년도 학예연구사 시절부터 했던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고자 함이다. 박물관이 2005년 용산으로 이전하고, 지금은 200만 명이상씩 박물관에 오고가며 전시, 시설, 관람객 인지도 모두 상승했는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좀 더 변화시켜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우리 박물관이 그간 장애인에게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하게는 전시장의 촉각 안내판의 확장을 내 관장 임기 내에 완성하고 싶다. 나아가, 장애인 관람객만을 위한 전용 교육 공간을 선보이고자 한다. 12월 오픈 예정이다. 더불어, 전국에 있는 소속박물관 13곳을 활용해 여러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소외됐던 관람 계층의 접근성 확장이 내년도 주력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있고, 핵심적인 문화유산 보존고이자 연구소, 교육·전시 기관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보는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나는 적어도 역대 관장님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가깝게는 박물관 용산 이전 당시 이건무 관장님도 박물관 이전 이후 안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은 정부조직법이 아닌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설립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 법에 의하면 박물관의 기능을 굉장히 방대하게 표기하고 있다. 국내외 박물관 자료 및 문화재 수집 관리까지 기록했는데, 국내도 못하고 있는 국외까지 나아가는 것은 한 번에 되는 일은 아니다. 우리가 나아가야할 이상향에 대해서 설정해놨다고 생각한다. 그 지점에서 다시 한 번 우리가 ‘국립’으로 잘 나아가고 있는 지 생각했다.

‘국립’은 ‘국립’에 걸맞은 역할을 계속 찾아나가야 한다. 박물관이 설립되고, 그동안 사회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여가시간이 늘어나고, 국민이 문화를 향유하는데 우리 박물관이 조금씩은 기여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지금 다른 문화기관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이나 전시‧공연 등도 우리 박물관에서 시작했다. 이런 지점에 있어서, ‘국립’은 지금까지 시도되지 않았던 변화를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차별화와 방향제시,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

▲인터뷰 중 미소를 짓는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 ⓒ김재성 사진기자

최근에 읽고 있는 책은?

세 번째 읽고 있는 책인데, 조정래 작가의 『천년의 질문』이다. 시사주간지 기자인 장우진이 주인공인 소설로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하면서, 시민사회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금 짚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는 수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법조계, 정치계 등등 그런데 이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의 초심을 잃기도 하고 변질되기도 한다.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공 장우진은 어떤 회유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믿었던 신념을 올곧게 밀고나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스스로를 많이 돌아봤던 것 같다. 책을 읽다보니 어느새 나도 기성세대가 돼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말 많이 시간들을 보내왔고, 나 또한 가장 처음에 했던 생각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겠다고 느꼈다. 결국 나를 다잡고 올바르게 나가게 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조정래 선생님의 책을 다 읽고 싶어서 골랐던 책인데, 어쩌다 보니 세 번씩이나 읽게 됐다.(웃음)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으로서의 포부를 듣고 싶다.

차별화와 방향제시라는 두 가지 역할을 염두했을 때, 나는 소외된 계층이었던 장애인과 노년 인구를 박물관 안에서 쉬고 즐길 수 있게 하고 싶다. 노년인구를 특정해 좀 더 설명하자면,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단군이래 가장 잘 살고 있다. 언제나 성장해왔고, 계속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국민들의 삶의 질은 어떨까 생각해보면, 쉽게 답을 하기 어렵다. 여러 생각을 하면서 이 국가가 이렇게까지 성장하기까지 노력한 이들을 우리 국가가 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었던 문화강의 등도, 조금 더 편안하고 유연한 방법으로 노년인구에게 다가가고 그들이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시하고 싶다.

그리고 ‘모두를 위한 박물관’의 ‘모두’에는 우리 박물관의 직원도 포함되게 할 것이다.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이 즐거워야, 박물관을 찾는 이들이 행복하고 결과물도 좋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에너지의 교류를 만들어 내고자 한다.

▲《외규장각 의궤, 그 고귀함의 의미》 전시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끝으로 박물관을 찾을 시민들에게 박물관을 활용하는 팁이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쉼과 만남이 있는 박물관을 제안하고 싶다. 박물관은 참 하지 말라는 것이 많은 공간이다. 전시장에서 뭘 먹지 말아라, 뛰지 말아라, 떠들지 말아라, 사진 찍지 마라 등등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박물관의 느낌이다. 이런 이미지의 변화를 꾀하고 싶다. 허락을 받으면 물을 마실 수 있고, 허락을 받으면 뛸 수 있고, 허락을 받으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편안한 쉼과 만남이 있는 공간을 제안하고 싶다.

지방에 있는 우리 소속 박물관을 보면, 박물관에 있는 카페에 굉장히 사람이 많다. 박물관 전시를 보러오기 보다, 커피를 마시고 쉬러왔다가 전시를 보고 하는 그런 주객전도가 일어난 것인데 나는 이 또한 필요한 지점이라고 본다. 또 최근에는 국립나주박물관에 있는 핑크뮬리가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박물관을 편하게 여기고 자주 방문하고 가깝게 여겨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