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Interview]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문효진, 예술로 이타적 삶의 가치 실현하고 싶다
[Culture Interview]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문효진, 예술로 이타적 삶의 가치 실현하고 싶다
  • 진보연 기자
  • 승인 2022.12.14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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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창작물, 더 이상 아름답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아닌 ‘의미’와 ‘가치’ 담아 새로움 이끌어 내는 것 매우 중요
피아니스트, 작곡가, 뉴미디어 아티스트, 사운드 비쥬얼라이저, 공공 예술 크리에이터, 작가, 공연 해설가 등 다양한 수식, ‘문효진’ 브랜드로
역사를 예술로 기록하다…‘해녀의 노래’ㆍ‘달성 100대 피아노’ 등
외할머니 영향, 제주 해녀의 삶 주목…음악다큐영화 ‘해녀의 노래’ 제작
“제주 예술가, ‘브랜드 마켓, 글로벌 랭귀지 변환’ 필요”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ㆍ진보연 기자]지난 1일 우도에 해녀항일운동과 해녀들 계몽운동을 도운 고(故) 강관순 애국지사의 ‘해녀의 노래비’가 세워졌다. “우리는 제주도의 가이없는 제주도의 해녀, 불쌍한 살림살이 세상이 안다”는 절절한 가사를 시작으로 4절까지 이어지는 항쟁가 ‘해녀의 노래’는 강관순 독립지사의 작사로 그 시절 해녀들의 고단한 삶을 대변한다. 1932년 1만7000여 명의 해녀들이 일으킨 항일운동 전후에 불리며 구전됐다. 

1932년 제주에서 발발한 ‘해녀항일운동’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여성독립항쟁으로 당시 일본 유행가의 멜로디를 차용한 점과 배후에 사회주의자 세력이 있다는 이유, 그리고 일제의 탄압이 담겨있는 4절 때문에 금지곡이 되어 노래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다. 이에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문효진은 ‘해녀의 노래’ 채보 작업 등에 나서며 해녀항일운동의 역사적 가치를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문효진 ⓒ굿스테이지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문효진 ⓒ굿스테이지

문효진은 섬 속의 섬, 우도를 예술로 기록하는 사운드작가로 참여하며 오래된 노래를 찾아 나섰고, 그 곳에서 강관순 독립지사의 딸 강길녀 해녀를 만났다. 이후 이상목 영화감독과 다양한 사람들의 증언, 인터뷰,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음악다큐영화 <해녀의 노래>를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 그는 악보 및 음원 제작, 학술 논문 게재 등을 통해 한 세기를 이끌어온 노래를 유의미한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이밖에도 그는 제주도 해녀였던 할머니를 오마주하며, 제주 해녀들의 음악인 ‘이어도사나’를 서양 기악으로 바꾸어 해외에 알리는 등 제주의 사라져가는 것을 예술로 기록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비단 제주뿐만 아니라 일상을 예술로 기록하는 일이 필요한 곳에는 언제나 그가 있다. 지난 10월 1일 3년 만에 열린 ‘달성 100대 피아노’에서 문효진은 행사의 첫 날, 피아노가 대구 달성군 사문진 나루터에 들어온 스토리를 가지고 [Amazing Pianoforte] 주제로 연주했다. ‘달성 100대 피아노’ 는 역사적 사실에서 발굴한 문화콘텐츠의 성공을 높게 평가받아 지난 6일 제4차 문화도시로 지정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2007년 ‘영혼은 바람이 되어’ 작곡 음반을 통해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로 데뷔한 문효진은 피아니스트에서 작곡가로, 그리고 악보 그림을 그리는 사운드 비쥬얼라이저로, 지역과 공공을 들여다보는 크리에이터로 옷을 갈아입으며 전방위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이 소리가 된 ‘사운드 오브 제주’ 앨범을 발매했으며, 올해 1월에는 제주에서의 예술 같은 일상과 음악가의 삶과 숙제, 그리고 제주를 향한 애정이 담긴 예술 에세이 ‘바람이 된 피아노’를 발간한 바 있다. 

이러한 것들이 모여 결국엔 하나의 콘텐츠를 구성하기 때문에, 기존의 범위에서 벗어난 과감한 일들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 그에게 장르의 확장은 과한 욕심이 아닌, ‘문효진의 예술 세계’를 완성하기 위한 다양한 표현 방식들의 집합이다. ‘물 같은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다 말하는 문효진은, 물처럼 원래의 속성은 유지하되 넘치는 포용력을 갖는 삶을 꿈꾼다.

그녀는 현재 제주에서 피아니스트, 작곡가, 뉴미디어 아티스트, 사운드 비쥬얼라이저, 공공 예술 크리에이터, 작가, 공연 해설가 등 다양한 수식을 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문효진이란 이름 석자가 브랜드화 돼 가는 것 같다.

▲(왼쪽부터)문효진의 일상과 예술을 담은 에세이 <바람이 된 피아노>,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로 담은 앨범 <사운드 오브 제주> 커버
▲(왼쪽부터)문효진의 일상과 예술을 담은 에세이 <바람이 된 피아노>,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로 담은 앨범 <사운드 오브 제주> 커버

그는 자신의 책 『바람이 된 피아노』에서 “오래도록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라는 어느 화장실 안에 붙어있던 글을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한다.  삶 뿐만 아니라 예술의 가치가 돈 이상의 영혼이 자유로운 세계가 있음을 아는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운 현실에서 지쳐갈 때 조우한 글귀에서 ‘오래도록’에 방점을 찍었다.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삶의 방향과 가치를 잘 드러내 주었다. 

그 스스로 아르헨티나의 탱고작곡가인 피아졸라와 상당히 닮았다고 여긴다. 피아졸라의 삶의 태도가 그러하다고 했다. 미술과 음악의 만남을 통한 예술의 본질을 추구하고자 하는 그의 여정은 예술을 통해 타인의 삶에 작은 기여나마 하고자 하는 ‘이타적인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 싶다”라는 말이 진정성을 동반한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클래식 음악에서 출발했지만, 음악은 더 이상 그 자체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표현 방식이다.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창작물의 형태에서 벗어나 ‘의미’와 ‘가치’를 담는 이야기를 하겠다”라고 말하는 문효진을 제주에서 만나, 그가 해체하고 새롭게 조립해 창조하는 예술은 어떤 모습인지 들어봤다. 

지난달 대구에서 100대의 피아노가 함께 연주되는 ‘달성 100대 피아노’에서 공연의 첫 음을 울렸다. 그간 많은 연주를 가졌지만 100대의 피아노와 함께 연주하는 경험은 흔치 않았을 것 같은데, 공연 소감이 궁금하다.

대구 달성군의 사문진 나루터는 1900년 3월 26일 미국 선교사였던 사이드 보텀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로 피아노가 들어온 곳으로 전해진다. 달성군은 이를 알리기 위해 지난 2012년부터 매년 이곳에서 피아노 콘서트를 이어오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3년 만에 열린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행사의 첫 날 피아노가 들어온 스토리를 가지고 [Amazing Pianoforte] 주제로 연주했다.

총 3개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작업했는데, ‘1.조우‘ 는 1900년 3월 26일, 미국에서 수일을 거쳐 피아노가 도착하는 과정은 플라잉 퍼포머(이신비)가 공중에 매달린 피아노를 타고 내려오며 춤을 추었고, ’2. 낯설고 이상한 소리‘는 해체된 체 덜컹거리며 움직이는 피아노 소리를 묘사했다. 50명의 댄서들이 당시 ’귀신통‘이라고 불렸던 피아노에 대해 두려운 마음을 표현했다. ’3.어메이징 그레이스+아리랑 피아노포르테‘는 피아니스트였던 에피 선교사가 자신의 피아노를 만나 감사한 마음으로 가장 어떤 연주를 했을까 들여다보았다. 기쁨과 감사의 노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편곡했고 이어서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에 마음을 연 사람들은 아리랑이라는 음악을 통해 하나가 되고 120년을 지나 전 세계 우뚝 솟는 한국의 음악 세계를 여는 시작을 알린다.

무엇보다 이 작업을 하며 피아노의 역사를 알게 됐고, 자신이 아끼던 피아노를 기꺼이 조선이라는 나라에 가지고 와 음악의 문을 연 선교사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전체 페스티벌의 오프닝을 열면서 다시 피아니스트로서의 역할과 소명을 확인할 수 있는 감사한 기회였다. 

▲2022 대구 달성 100대 피아노, 피아니스트 문효진의 공연 모습
▲2022 대구 달성 100대 피아노, 피아니스트 문효진의 공연 모습

문효진이라는 이름 앞에 피아니스트 외에 작곡가, 뉴미디어 아티스트, 사운드 비쥬얼라이저, 공공 예술 크리에이터, 작가, 공연 해설가 등 다양한  수식이 붙는다. 다방면으로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요즘 주력하고 있는 ‘본캐’는 무엇인가.

인터뷰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듣는 질문이다. 그리고 늘 자문자답한다. 피아니스트인지, 기획자인지, 작가인지 구분을 두지 않는 지금의 포지션, 그것 자체가 나의 포지션인 것 같다. 어떤 날은 글을 쓰기도 하고, 어떤 날은 멜로디를 만들고, 또 어떤 날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이러한 것들이 모여 결국엔 하나의 콘텐츠를 구성하기 때문에, 기존의 범위에서 벗어난 과감한 일들을 많이 시도하고 있다. 

굳이 한 문장으로 정리해보자면 ‘멜로디를 넘어 시대와 지역의 메시지를 담아내는 창작가’라고 생각한다. 글은 생각을 풀어내는 도구이고, 피아노는 이야기를 지속하는 방법이다. 음악은 더 이상 그 자체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표현 방식이자 도구이다. 바람이 불 때 리듬을 느끼고, 글을 얹고, 색칠을 하는 것과 같다. 앞으로도 글과 악보그림, 음악이 공존하는 작업들을 이어갈 생각이다. 아티스트로서 내가 만드는 창작물은 더 이상 아름답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와 ‘가치’를 담고, 이로 하여금 새로운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난 6월, 폭풍의 화가로 알려진 변시지(1925-2013)와 악성 베토벤의 그림과 음악을 소개하는 공연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다. 변시지의 그림에서 베토벤의 음악으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참신한 기획이었다. 

서양화가 변시지는 ‘가장 제주적이고 가장 아름다운 것은 풍토적인 것이다. 풍토적인 것이야말로 세계적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세계적인 음악가 베토벤과 변시지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들 모두 신체장애의 핸디캡으로 인해 고독한 삶을 살았지만, 이 가운데도 예술을 놓지 않았다. 

공연을 준비하는 동안,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됐다. 밥 한 끼 먹는 게 중요한 시절이었음에도 타협하지 않고 예술 하나만을 위해 달려갔던 이들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느끼며, 그들이 느낀 목적 의식과 동기를 나도 찾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도 이따금 생각하며 내 안의 예술혼을 일깨우려 노력하고 있다. 

제주의 역사와 소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하며 오랫동안 해외에서 유학생활을 한 걸로 알고 있는데, 고향인 제주로 돌아온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호주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8년, 서울에서 10년을 살았다. 서울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제주로 돌아오고 싶지는 않았다. 나름 CD가 팔리는 시대, 국내 여성 크로스오버 피아니스트로 활동도 했다. 하지만 두 아이를 키우려니 발 벗고 일을 해야 했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결국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돌아와 제주국제학교에서 일을 시작했다. 

아티스트로서의 삶을 내려놓고 자존심을 낮추어 돌아왔다. 더 높은 곳으로, 넓은 곳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작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처음엔 아찔한 기분도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 시간을 충분히 즐겼다. 엄마가 되고 아이들을 키우며 풍요로움을 배웠다. 거짓말같이 결과보다 과정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일과 성취, 성공을 통해 얻는 인정욕구보다 누가 주목하지 않아도 평범함과 일상에서도 충분히 값지고 아름다운 가치를 찾을 수 있었다. 

제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여러 소재 가운데 ‘해녀’에 대한 작업들이 유독 눈에 띈다. 해녀를 주제로 한 발레의 음악 작곡, 전시를 비롯해 여러 작업들을 이어오고 있는데, 해녀에 주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최근 들어 제주의 소재로 작업하는 분들도 많이 생겨나고, 접근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비단 아티스트뿐만이 아니라 제주의 관공서나 예술재단 측에서도 제주만의 특별한 콘텐츠를 독려하고 있다. 

2016년 4.3 다큐영화 ‘오사카에서 온 편지’(감독 양정환)를 시작으로 제주의 것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전에는 개인 피아노 작품만 해왔는데 범위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피아노라는 악기, 피아니스트 연주자라는 가장 안전한 장치를 벗어놓고 창작가, 작곡가의 영역에 들어서면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 것인가가 가장 큰 숙제였다. 많은 작곡가들이 있지만 실제로 본인의 생각을 주체적으로 만드는 분들은 소수이고 대부분 일회적인 행사나 주최자가 원하는 작업을 해주는 일이 다반사다. 조금 더 깊이 있게 나만의 것을 찾고 싶었다. 

나는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학술적 관점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제주에 사는 아티스트로서 어떤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제주의 이야기를 찾아보니 피할 수 없는 것이 제주의 아픔, 어머니, 해녀, 그리고 우리 할머니였다. 외할머니가 해녀 상군이셨다는 얘기를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가장 개인적인 나의 이야기가 제주, 그리고 모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 해녀들의 항일운동을 담은 음악다큐 영화 <우도, 해녀의 노래> 작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해녀를 주제로 한 음악다큐는 어떻게 기획하게 됐나? 작품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우도의 가장 오래된 노래를 찾다보니 ‘해녀 항일가’를 알게 됐다. 그 노래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어떤 노래인지 궁금했다. 어느 날은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엄마가 “이 노래, (외)할머니가 많이 불렀던 노래야”라는 말씀을 하시더라.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우도에서 가장 오래된 노래가 나에게 너무 가깝게 와 닿았다. 이를 체감하면서 조금 더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미 있던 이야기가 새로이 전환되는 경험이었다. 

이번 영화를 통해 다양한 시각으로 강관순 독립지사를 주목함으로써, 제주의 미래가치가 더욱 발현되길 바란다. 또한 그 힘으로 하여금 음악가의 영역을 넓혀 하나의 노래를 관통했던 제주의 삶, 여성의 의지,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자주성과 정체성 회복을 위해 역사의 소리를 채보(採譜)하는 역할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음악다큐영화 ‘해녀의 노래’ (이상목 감독)는 12월 28일 오후4시 해녀박물관에서 시사회와 공연을 같이 한다. 2~3년간 해녀분들, 취재했던 기자들, 역사학자 및 전문연구자들을 인터뷰하며 노래를 찾아가는 행보를 공유할 예정이다. 

▲피아노해체 음악전시 ‘스토리 푸가’
▲피아노해체 음악전시 ‘스토리 푸가’

제주의 문화를 한국에 알리는데 그치지 않고, 해외 교류를 통해 그 가치를 확산하고 있는데 국내 활동과 해외 활동의 주력하는 지점이 조금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지난 몇 년간 공모로 선발되어 해외교류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중요한 것은 공연 후 돌아올 때마다 제주의 대표성에 대해 인지하게 됐다는 점이다. 
취안저우에서 연주한 ‘이어도사나 콘체르토’는 현지 방송국 취재진들이 몰릴 정도로 중국 사람들에게도 뭉클한 공감을 만들어냈다. 그들도 바다 앞 여인이 있었고, 그녀들의 삶에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또한 현지 음악팀(난인 야이)과 반년 간 SNS로 소통하며 만든 콜라보레이션 음악 (세상, 해녀의 삶)을 통해 연대할 수 있었다. 
함께 공동작업한 중국팀의 추천으로 제주도청 주최로 열리는 제주-싱가포르 교류음악회(12월 14일 오후 7시 30분 비인공연장)의 총괄 디렉팅을 진행 중이다. 세계유네스코에 등재된 중국 천 년 전통의 난인음악 씨옹 렝 팀과 제주의 황홀과 비애를 노래하는 제주빌레앙상블 두 팀을 매칭시키며 더 많은 예술가들이 제주 밖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제주를 주인공으로 예술 활동을 펼쳐온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당시에 비해 제주 내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도와 환경이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아직 개선되어야 한다고 느끼는 부분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된다. 활동하면서 느끼는 한계나 고충이 있다면?

기회를 빌려 제주문화예술계에 몇 가지 발의하고 싶다. 정부는 예술가들에게 지원금이 아닌 후원금으로 조력해야한다. 몇 년간 전국단위 및 제주도 주최의 프로젝트들을 해왔다. 공모라는 과정을 거쳐 내 작품에 대한 설계도를 만드는 것은 예술가에서 행정가로 다른 언어를 끌어내는 고단한 작업이다. 현재의 예술보조금사업은 정부가 예술가의 순수예술을 끌어내는 동력을 후원금이 아닌 지원금 방식으로 분배한다. 그러기에 필요 이상의 증빙 서류와 성과보고를 통해 조력자가 아닌 감시자 역할을 한다. 국민 세금을 받았으니 충분한 증빙과 기대효과를 내야함에도 불구하고 예술가의 집중력 높은 창작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느슨한 울타리를 만들어 가감할 부분을 고려해야한다. 연습과 창작 시간보다 서류작업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게 된다.

또한, 예술가들의 기준을 나누어 지원해야한다. 제주특별자치도는 다른 지역에 비해 예술인 보조사업이 여유로운 편이다. 4대 보험을 받는 도, 시 소속 예술인들도 동등하게 보조사업의 혜택을 누린다. 초기에는 제주지역의 예술 산업을 일으키고자 공무원에 준하는 예술가들의 활동을 독려하였지만 지금의 현실은 다르다. 많은 이주민 예술가들이 넘쳐나고 1년만 살아도 제주도민이 되어 다양한 공모사업이 가능하다. 제주의 것을 만들어냄에 있어 투박한 제주인들과 무엇이 보석인지 아는 육지 사람들과 시선의 마찰이 일어난다. 그들 틈에서 몸부림치는 자유노동자, 프리랜서들이 있다. 그들이 지속해서 야생적인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회의 조건을 단계별로 검토해야한다.

아울러, 관. 공 결정권자들은 문화감수성 높여 판단력을 갖춰야한다. 결정권자일수록 스스로 판단력이 없다보니 옛날 방식, 인맥을 통한 낙하산으로 책임자를 선임하고 기회를 준다. 공무원들의 이러한 눈 먼 성과와 결과들은 밑에서부터 올라가는 청년 예술가들뿐 아니라 정치인을 통해 기회를 구걸하지 않는 예술가들에게도 커다한 박탈감을 준다. 대중과 다수가 만들어내는 유행과 영향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문화감수성을 찾아가야 한다. 

제주특별자치도의 예술가들은 더욱더 창의적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사고방식, 언어의 장벽을 낮추고, 국제적인 감각과 현재의 위치에 대해 사고해야한다. 제주 밖으로 흘러갈 수 있는 에너지와 제주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흡인력 또한 갖춰가야 한다. 가장 첫 순서는 예술가로서의 브랜드 마켓, 글로벌 랭귀지 변환이라고 생각한다.

▲질문에 답하고 있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문효진
▲질문에 답하고 있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 문효진

앞으로 새롭게 계획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공개해준다면?

이달 1일에는 해녀의 노래 작사가이자 독립운동가 강관순 지사의 동상과 노래비가 건립됐다. 노래비에는 송창훈 조각가의 조각, 현병찬 서예가의 한글서예, 해녀 강길여 님의 노래 등이 모여 완성됐는데, 나는 채보를 맡았다. 이어 오는 28일에는 해녀박물관에서 음악다큐 ‘해녀의 노래’ 시사회를 연다. 반도네온과 첼로, 피아노 구성으로 ‘해녀의 노래’, 베토벤의 ‘월광’, 그리고 대한민국 최초의 동요, 윤극영 선생님의 ‘반달’ 등을 라이브로 연주할 예정이다. 

내년에는 조금 더 집중해서 작업 수는 줄이고 한 가지를 연계하는, 깊이 있는 작업들을 하려고 한다. 특별히 계속 융합하고 있는 작업은 ‘음악 전시’인데 전시장에서 음악이 액자 안에 담겨 관객이 자유로운 호흡으로 하나의 음악회를 감상하는 방식이다. 

내겐 두 분의 할머니가 계신데, 돌아가신 외할머니는 상군 해녀로 제주 해녀의 음악을 만들며 오마주를 해왔고, 현재 살아계신 100세 할머니는 아름다운 죽음을 기다리고 계신다. 아픔의 땅에서 살아온 제주 여성의 100년, 그리고 손녀딸이 지켜본 할머니의 올곧은 삶을 음악으로, 악보그림으로, 시와 사진으로 담아내어 오래도록 추억하고 싶다. 

어떤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물 같은 예술가로 기억되고 싶다. 물은 어떤 컵에 담아도 원형은 변하지 않되 어떤 모형을 만나든 넘치는 포용력을 갖는 것처럼 나 역시 하나의 모습으로 굳어지지 않는 다양성을 갖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