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선의 포토 에세이 104] 화가 김차섭, 김명희부부
[천호선의 포토 에세이 104] 화가 김차섭, 김명희부부
  • 천호선 전 쌈지길 대표
  • 승인 2022.12.14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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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차섭과 김명희의 향기로운 삶

지난 10월말 뉴욕 방문중 ‘소호’에 있는 김명희씨 작업실을 방문하였다. 8월말에 돌아가신 남편 김차섭씨의 서울 성모병원장레식장에서 만난지 2달만이다.

▲소호 작업실 ⓒ천호선
▲소호 작업실 ⓒ천호선

김차섭,김명희씨 부부는 내가 1979년부터 뉴욕문화원 문정관으로 근무할 때 평균 주1회는 만났던 각별한 사이였다. 그들은 서울미대 출신으로 뉴욕 PRATT미술대학을 졸업했고, 특히 김차섭은 30대 중반인 1976년에 그의 동판화 작품이 MOMA(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되는 등 중요한 작가로 부각되고 있었다.

▲김명희 작품 ⓒ천호선

그러나, 당시 경제적 상황이 김명희씨로서는 작업보다는 옷가게를 차려 돈 버는데 전념할 수밖에 없었다. 김명희씨의 희생 덕에 어느정도의 부가 쌓여 소호에 작업실을 마련한 후 서서히 사업은 접고 부부 모두 전업작가로 몰두하였다. 하지만, 김차섭씨가 갑지기 건강상의 문제가 생겨 그들은 한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고 강원도 춘천 오지인 내평리에 있는 국민학교 폐교를 구입하였다.

▲김차섭 MOMA 소장품 ⓒ천호선
▲김차섭 MOMA 소장품 ⓒ천호선

그러나 소호의 작업실이 팔리지 않아 그들은 여름은 한국 내평리에서, 겨울에는 미국 소호에서 작업하는 생활을 계속하게 된다. 내평리에 오면서 김명희씨는 폐교에 남아있던 칠판에 어린이들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독자적인 칠판화 세계를 만들어 나갈수 있었다.

▲김향안여사에게 국회 김명희작품 소개 ⓒ천호선
▲김향안여사에게 국회 김명희작품 소개 ⓒ천호선

내가 국회사무처에 근무하면서 1998년 국회개원50주년행사를 주관하면서 30여명 작가의 작품을 구입할때 김명희씨의 작품도 구입할수 있었다. 김차섭씨는 박준규의장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박의장은 퇴임하면서 국회에 남겨야 할 초상화를 들고가 버렸다.

▲뉴욕에서 김차섭부부와 함께
▲뉴욕에서 김차섭부부와 함께 ⓒ천호선

그들 부부는 최근 내평리의 폐교를 미술관으로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여 왔는데, 혼자 남은 김명희씨가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