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리뷰] MMCA 서울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展
[전시리뷰] MMCA 서울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展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2.12.14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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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신작 ‘작은 방주’, ‘원탁’ 등 선봬, 23.2.26까지
양극화된 동시대에 던지는 질문 담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최근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가 있다. MMCA 서울관에서 지난 9월 달에 개막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다.

▲최우람 ‘작은 방주’ 작동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최우람 ‘작은 방주’ 작동 전경 ⓒ서울문화투데이

이 전시에서 이슈가 된 작품은 머리가 없는 볏짚인형들이 무거워 보이는 검은 원판을 들고 무한한 운동을 하는 <원탁>이다. 이 머리가 없는 볏짚 인형들이 들고 있는 원판 위에는 이들의 머리와도 같은 공이 떨어질 듯, 볏짚 인형에게 닿을 듯 계속해서 회전한다.

전시 개막 이후 SNS 상에는 <원탁>이 작동하는 순간을 찍어 올린 게시글이 크게 관심을 받았고, 가끔은 정해진 동작을 벗어나 원탁 위에서 공이 떨어진 순간도 공유되며 최우람 작가와 전시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도대체 어떤 지점이 이런 뜨거운 관심을 만들어낸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금 이 전시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정확하게 은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년 2월 26일까지 MMCA서울관에서 개최되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 작은 방주》는 ‘방향상실의 시대’라는 격랑을 헤쳐 나가야하는 우리의 모습을 투명하게 바라보고 위로를 건네며, 진정한 공생을 위해 자신만의 항해를 설계하고 조금씩 나아가기를 응원하는 진심을 담고 있는 전시다.

▲MMCA 서울박스 공간에 전시된 ‘원탁’을 관람하고 있는 관람객들
▲MMCA 서울박스 공간에 전시된 ‘원탁’을 관람하고 있는 관람객들 ⓒ서울문화투데이

2013년 서울관 개관 당시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로 1년간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 Opertus Lunula Umbra>를 선보였던 최우람 작가가 약 10년 만에 서울관에서 선보이는 전시이자,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이다. 전시는 지난 9월 달에 시작했지만, 전시가 진행될수록 더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최우람 작가는 199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정교한 설계를 바탕으로 움직임과 서사를 가진 ‘기계생명체(anima-machine)’를 제작해왔다. 세밀한 표현으로 살아 숨 쉬는 듯한 기계생명체를 만들고 이야기를 곁들여 고유의 세계관을 창조해왔고, 작가의 작업은 인공적 기계 매커니즘이 생명체처럼 완결된 아름다움을 자아낼 수 있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생명의 의미와 살아있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기술 발전과 진화에 투영된 인간의 욕망에 주목해 온 작가의 관점은 지난 30여 년간 사회적 맥락, 철학, 종교 등의 영역을 아우르며 인간 실존과 공생의 의미에 관한 질문으로 확장됐다.

전시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국립현대미술관의 주말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SNS상에서 큰 주목을 받은 작품은 <원탁>이지만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5전시실을 가득채운 거대한 조각 <작은 방주>를 보고 다시금 놀람을 표한다. 검은 철제 프레임에 좌우로 35쌍의 노를 장착하고 노의 말미에 흰색을 칠한 폐종이 상자가 도열해 있는 큰 배 혹은 ‘궤’의 모습을 한 <작은 방주>는 공간을 장악하는 규모와 동시에, 기계의 움직임이라고는 믿기 힘든 아주 정교한 동작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최우람
▲최우람 <빨강> (사진=MMCA 제공)

<작은 방주>는 매시간 30분마다 20분간의 ‘방주의 춤’을 선보인다. 실제로 암담한 바다를 항해하는 듯, 웅장한 음악과 함께 <작은 방주>는 35쌍의 노를 움직인다. 그 형상은 배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얼핏 하늘을 나는 비행기의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흰 종이 노를 몸체에 바짝 붙이고 정지했다가 서서히 노를 들어 올리며 장엄한 군무를 시작하고, 노의 앞뒤가 바뀌면서 출렁이는 흑백의 물결이 앰비언트 사운드와 결합하는 모든 모습은 흡사 한 편의 부조리극을 연출하는 듯하다. <작은 방주>가 선보이는 ‘방주의 춤’은 방주를 둘러싼 또 다른 설치 작품 등을 통해 더욱 구체적인 의미를 전한다.

방주가 항해 중인지 정박한 상태인지 알 수 없게 벽에 박혀 있는 <닻>과 마치 죽은 듯이 늘어져 있는 뱃머리 장식 <천사>는 이 항해의 방향이 어디인지, 이 항해의 의미는 무엇인지 묻고 있는 듯하다. 더불어 ‘방주의 춤’ 시작되고 얼마 안 있어 벽면에서 재생되는 <출구>는 열고 열어도 무한하게 이어지는 ‘문’을 보여주며, 우리가 머물고 있는 공간의 반복을 보여주는 듯하다.

▲최우람 <천사> ⓒ서울문화투데이

이외에도 전시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거대한 기계 꽃 <하나>와 <빨강>은 지금 이 시대를 향한 작가의 마음과 시선을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두 개의 작품 모두, 코로나19 의료진의 방호복 소재 타이벡(Tyvek)으로 제작돼 생과 사가 급박하게 교차하던 현장에 있던 이들 뿐 아니라 충격과 두려움 속에서 위기를 몸소 체험한 동시대인에게 바치는 헌화이자 시대를 위한 애도 의미를 담는다.

전시에서 최우람은 설치 및 조각 12점, 영상 및 드로잉 37점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총 53점을 선보인다. 30여년동안 이어온 작가의 관점을 전체적으로 만나볼 수 있는 전시이면서, 지금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가장 찾고 싶었던 물음들이 놓여있는 전시라고 볼 수 있다. 너무나 다양한 가치들이 산재하고 부딪히는 세계에선, 가끔 물음을 찾고 던지는 것조차 힘들고 어려울 수 있다. 《최우람 – 작은 방주》는 이러한 혼돈의 시대 속에서 부드러운 언어로 우리가 답을 찾아나가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