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국립민속국악원 30주년 ‘콘서트 아리아’
[윤중강의 현장과 현상 사이]국립민속국악원 30주년 ‘콘서트 아리아’
  •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 승인 2022.12.27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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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프라와 민간 시스템의 아름다운 원-윈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윤중강 평론가/ 연출가

2022년 12월 17일, 서울 강동아트센터 대극장 한강에는 빈 좌석이 없었다. 판소리 콘서트에 어찌 이리 많은 청중이 왔을까? 숫자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국악공연과 가요콘서트의 관객이 합쳐진 모습이 더해지면서, 마치 대한민국의 다양한 계층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콘서트 아리아>의 부제는 ‘판소리의 새로운 진화’이다. ‘아리아’라는 제목이 이상한가? <콘서트 눈대목>이라고 해야 했나? 만약 이 제목이라면 이토록 많은 청중이 운집했을까? ‘콘서트 아리아’는 판소리의 중요한 대목(눈대목)을 융복합적인 시각으로 풀어냈다. 판소리의 눈대목이 악기 편성과 편곡을 달리했을 때, 동시대의 다수가 거부감없이 즐길 수 있는 음악(쟝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판소리 = 불후의 명곡, 판소리 = 아리아  

반대로 판소리의 주요한 대목은 대중음악적인 시각으로 풀어내서 새롭게 작, 편곡해서 가수가 부른 노래도 있었다. 궁극적으로 판소리야말로 ‘불후의 명곡’이고, 오페라 ‘아리아’와 같은 노래가 많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콘서트 아리아>는 말 그대로 ‘콘서트’였다. 공연의 진행자를 두지 않고, 오직 14곡의 노래만으로 이어졌다. 노래하기 전 영상에서 보이는 국립민속국악원 단원의 모습은 한복차림의 늘 보던 모습이었다. 그런 영상이 사라지고 나서 등장한 소리꾼은 저마다 변신을 했다. 누구는 뮤지컬 배우의 갈라 콘서트를 보는 것처럼 강렬했고, 누구는 재즈 디바의 살롱콘서트를 보는 것처럼 농염했다. 모두 잘했지만, 특히 김송과 고준석이 훌륭했다. 가창력이 출중한 김송은 바다와 한 노래에서 맞대결해도 좋겠다. 국립민속국악원의 젊은 단원 고준석은 고영열을 벤치마킹해서 그 나름대로 또 다른 방향을 찾아낸다면, 고영열과 자웅을 겨루는 젊은 판소리스타가 될 것 같다. 

‘콘서트 아리아’는 그동안 대중지향의 무대와 어떻게 다른가? 기술적인 측면에서부터 음악의 편곡에 이르기까지 ‘동시대성’이 느껴졌다. 그간 ‘판소리의 대중화’를 표방한 공연이 많았다. 여기서 ‘대중’이란 ‘지금의 대중’이 아닌 ‘예전의 대중’에게 초점을 맞춘듯한 철 지난 느낌이 강했다. ‘콘서트 아리아’는 2022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중적 감성을 꿰뚫었다. 

김백찬 X 이진희 

김백찬이 음악감독을 맡았다. 그는 판소리 특유의 절규하는 창법을 피아노를 중심으로 서정적인 발라드로 감싸는 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략만으로 고급청중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킬 순 없다. 이진희(작편곡 및 기타)가 이번 공연의 숨은 공로자이다. 판소리 마다 다른 분위기를 어떻게 기악 사운드로 포장해야 할질 정확히 알고 있었다. 

특히 흥보가 ‘흥보 매 맞는 대목’(김송)은 재즈적 분위기로 잘 풀어냈다. 적벽가 ‘임 향한 기다림은 끝 없네’(고영열, 심상엽, 임재윤)은 판소리 아닌 듯한 판소리 멜로디로 출발해서, 판소리 뮤지컬 오페라 등 세 장르의 공통분모로 완성해 가고 있었다. 

국립단체 인프라 & 외주제작 시스템  

“촌스럽다!” 우린 어떤 공연을 보고 일상에서 이런 말을 한다. ‘콘서트 아리아’는 촌스런 구석이 1도 없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공연은 국립단체 인프라와 ‘외주제작’ 시스템의 좋은 선례의 성공사례로 자리매김할 듯 하다. 그간 국립국악원을 비롯한 국공립의 예술단체에는 무대에 오르는 인프라는 최고 수준인데, 이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프로덕션 시스템’이 취약했다. 국립민속국악원이 그간의 실패와 한계를 벗어나고자 ‘외주제작’이라는 협업을 택한 것이 ‘신의 한수’다. 

그간 국립단체의 주요공연에선 사회적으로 주목하는 작가나 연출을 영입했지만, 작품이 성공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유는 무엇일까? 저마다 나무를 잘 심으려 했지만, 전체 숲의 아름다운 조경을 만들어내는 건 역부족이었다. ‘콘서트 아리아’는 문화예술 콘텐츠기업 ‘예술숲’이 기획과 홍보로 참여했다. 예술숲의 김면지대표가 총괄프로듀서를 맡았다. 그는 그야말로 나무만을 본 게 아니라, 각각의 나무를 잘 배치해서 아름다운 숲을 만들어냈다. 

대한민국 드라마는 어떻게 세계수준에 이르렀을 수 있었을까? 거슬러 올라가면 그 첫걸음은 ‘외주제작’시스템의 구축이었다. 이런 기반이 K-드라마를 월드 클래스로 올렸다. 이제 국공립단체에서도 열린 마음으로 ‘외주제작’을 통해서, 국공립단체의 예술가와 예술적 콘텐츠를 월드클래스로 올려주길 바란다. 

국립민속국악원의 열린 생각이 반갑다. 무대에서 스스로 망가져서 관객에게 기쁨을 선물하는 왕기석 원장이 출중하다. ‘콘서트 아리아’는 국악계의 ‘국립기관’과 공연계의 ‘콘텐츠기업’이 만나서 양질의 대중적 국악을 만든 아름다운 성공사례다. 앞으로 이렇게 ‘국립’과 ‘민간’의 협력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