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빛축제와 조명예술
[백지혜의 조명 이야기] 빛축제와 조명예술
  • 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 승인 2022.12.27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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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혜 건축조명디자이너/디자인스튜디오라인 대표

조명예술 Light art는 조명이 빛을 작품의 주요 매개체로 하는 예술 장르를 말하며 빛 자체 혹은 색, 그림자등 빛에 의한 현상을 통해 만들어지는 모든 형태 뿐 아니라 실물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 존재가 인정이 되는 시각예술을 포함한다.

조명이 예술작품에 등장한 최초의 사례는 1923년 El Lissitzky의 “Proun Room"로 배경과 작품을 모호하게 만들고 관람자의 시선을 작품에 개입시킨 최초의 3D 회화로 미술사가들 사이에서는 더 유명하지만 그가 구성한 공간의 천정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조명예술품은 László Moholy-Nagy의 the Light-Space Modulator가 최초인 듯 하다. 다양한 재질과 투명도, 형태를 갖는 금속 조각들을 조합하고 거기에 빛을 비추어 그림자에 의해 다르게 표현되는 공간이 작품이다.

James Turrell 제임스 터렐이나 Jenny Holzer 제니홀져 등 대부분의 조명 아티스트는 다루기 편하고, 지향성의 - 어떤 촛점을 향해 빛을 비추는 성질을 갖는 - 광원인 백열등을 주로 이용한 반면 Dan Flavin 댄플라빈은 형광등을 이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향점 없이 자체 발광하는 선형의 광원은 설치되는 면의 성질 혹은 설치되는 방식에 따라 공간과 결합하여 놀라운 시각적 결과물을 제공하는데 이렇게 광원과 피사체가 분리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조명예술은 조명 조각품 light sculpture로 기존의 조명 설치 작업 light installation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Bruce Nauman 브루스 나우먼, Tracey Emin 트레이시 에민, Glenn Ligon 글렌 리곤등은 네온을 이용한 조명 예술가이며

백남준과 존 레논의 부인으로 더 유명한 오노요코는 비디오 아티스트로 조명이 사진이나 영상기술에 이용되고 관련분야의 기술적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생겨난 새로운 조명예술의 한 분야라고 할 수 있겠다.

대부분 실내에 전시되었던 조명 예술 작품들이 공공을 위해 도시의 경관 속에 들어온 건 엘이디의 출현과 무관하지 않다. 온도, 습도에 민감하고 눈, 비에 취약한 기존 광원과는 달리 엘이디는 외부 환경에 적합한 광원일 뿐 아니라 크기가 작고, 가벼운 반면 광량은 커서 다양한 형태로 조각품이나 설치물 안에 일체화 하기 쉬운 장점을 지닌다.

최근 모니터, 디스플레이 보드 형태로 나와 보다 큰 면을 가진 미디어 설치물이 출현, 컨텐츠를 달리하며 고정된 예술작품이 아닌 예술작품을 위한 플랫폼도 가능해졌다.

이렇게 다양한 형식의 조명예술은 도시를 순식간에 문화 예술의 장이 되도록 하였다.

밤에 놀거리, 볼거리를 만들어 지역 시민의 안전 뿐 아니라 도시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리고 타지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관광 뿐 아니라 나서 먹고, 마시고, 머물게 함으로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 하려는 도시들의 노력은 빛축제라는 새로운 문화를 낳았다.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리옹의 빛축제가 1990년대 초 인 것을 감안할 때 빛축제는 불과 30년만에 그 수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대부분의 도시에서 성공적인 개최의 기쁨을 맛보았다. 이렇게 짧은 기간에 성공적인 결과를 낸 데에는 조명예술이 전시장 밖으로 나온 것과 무관하지 않다.

매년 반복하는 축제에서 조명 예술 작품들은 다양한 형태, 콘텐츠를 선보이며 그 다음을 기대하게 하였고 조명기술의 발달로 축제의 내용은 매년 다름을 기대에 부흥하기에 충분했다.

 

서울라이트 광화와 빛초롱축제 맥락없이 한 자리,

빛 환경에 고민했을까?

 

성공적인 빛축제로 꼽히는 리옹의 Fete des Luimeres, Vivid 시드니, I Light 싱가폴, Amsterdam Light Festival등을 살펴보면 빛축제에 선보인 조명예술 작품의 수준이 최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축제의 특성, 장소의 정체성 그리고 그 해의 주제 혹은 컨셉에 맞추어 창의성과 다양한 조명 기술을 도입한 작품들이 추운 밤거리를 3일 내내 걸어다니게 하고 그 다음 해를 또 기대하게 만든다.

빛축제의 성공은 도시민들에게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조명 예술 아티스트들에게도 매년 작품을 전시할 장이 보장되어 있어 더 나은 작품을 위한 꿈을 꿀 계기가 되고 관련 산업, 예를 들면 영상 하드웨어, 컨텐츠 기획, 제작 등 매우 광범위하게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

12월19일 서울 한복판에서 처음으로 빛축제가 열렸다. fete des Lumiere 나 비비드 시드니와 같이 도시 전체에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오랜 기간 기획하고 준비하여 조명 예술을 망라하는 빛축제는 아니다. 특이한 점은 광화문 광장 좌우의 건축물의 입면에 표출되는 미디어아트가 주축을 이루는 서울라이트 광화와 조명조형물이 전시되는 빛초롱 축제가 한 장소에서 열린다는 사실이다.

광화문 광장 일대를 미디어 아트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서울시의 야심찬 발표가 있었고 좋은 작가들이 참여한다는 소식을 들었던 터라 적잖은 기대를 했다. 빛초롱 축제 역시 청계천에서 개최할 당시 탄탄한 주제와 완성도 있는 조형물 - 개인적으로 지나치게 직관적인 형태가 아쉽지만 -로 해를 거듭하며 좋은 평을 얻고 있던 터라 처음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후한 점수를 주고 싶었다. 매년 조금씩 발전하는 빛축제를 보는 것도 시작을 같이 한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저마다 다른 관점에서 다양한 의견을 갖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성공을 거둔 빛축제 모델을 그대로 답습할 필요도 없다. 다른 환경과 여건이 존재하고. 우리는 우리만이 만들 수 있는 것을, 우리만이 갖고 있는 천년 역사의 장에, 우리만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게 한다면 축제는 그로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빛초롱축제와 서울라이트 광화는 주제를 공유했을까 광장에 온 사람들이 어디에서 조형물을, 미디어 아트를 감상할지에 대한 고민을 주고 받았을까, 서로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는 빛환경에 대한 고민을 한 것일까?

미디어 보드를 가리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조형물 - 아, 그것을 조형물이라고 불러야할지도 난 모르겠다. - 이 맥락 없이 도시만큼 넓지도 않은 광화문 광장을 점령하고 있어 사람이 모이는 광장이 아니라 전시품을 위한 전시대로 변질되어 사람이 설 곳은 없어져 버린 느낌의 광장, 거기에서 여기저기 가려진 구석의 미디어 아트의 분주한 영상이 깜박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