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Interview] 최우람 작가 “욕망을 구원하고자 한 방주, 끊임없는 문만 열 뿐”
[Artist Interview] 최우람 작가 “욕망을 구원하고자 한 방주, 끊임없는 문만 열 뿐”
  •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김재성 사진 기자
  • 승인 2022.12.27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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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방주》展. 보여주고 싶은 걸 다 보여준 전시
‘방주’는 어려움을 벗어나, 더 나은 곳을 바라는 욕망
2014년 드로잉서 시작한 〈원탁〉, 당시 대통령선거로부터 발상
‘정해진 것은 없다’ 내 선택과 결정, 어떤 확장성 지닌지 몰라
재밌게 작업하는 작가 되고파, 어떤 일들이 너무 갑자기 일어나지 않길 바라

[서울문화투데이 이은영 발행인ㆍ이지완 기자/김재성 사진 기자] 머리가 없는 볏짚 인형들이 무거운 원판을 등에 이고 있다. 이들은 끊임없이 작동하며 원판 위에 구르고 있는 단하나의 머리를 갖고자 움직인다. 하지만, 원탁 위의 머리는 볏짚 인형 중에 누구에게도 가닿지 않는다. 반복적이고 치열한 이 공간과는 다른 공중에는 검은 새 3마리가 아주 느리게 이들을 관망하고 있다. 폐종이 박스로 제작된 검은 새 세 마리는 볏짚인형들의 머리를 탐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끊임없이 노동하고 있는 볏짚들을 조롱하고 있는 것일까. 최우람 작가가 MMCA현대차 시리즈 《작은 방주》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는 작품 <원탁>이다.

▲MMCA현대차 시리즈 《작은 방주》 서울박스 전시 전경,  〈원탁〉과 〈검은 새〉 (사진=MMCA 제공)

최 작가의 전시 《작은 방주》가 연일 화제다. 우리가 보고 있는 현실의 형태와는 이질적인 형태의 조각들인데, 그 조각들이 전하는 이미지와 모든 감각은 지금의 현실을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다. <원탁>이 작동하는 순간을 관람하는 관람객들의 표정은 모두가 진지하다. 인간과 비슷한 크기의 인형들의 고된 움직임은 보는 이로 하여금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어지는 5전시실에서 펼쳐지는 <작은 방주>의 공연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매 시각 30분마다 시작되는 ‘방주의 춤’에는 많은 인파들이 몰려든다. 웅장하고 낮은 사운드 속에서 <작은 방주>의 35쌍 폐종이 노가 서서히 움직인다. 처음에는 일정한 움직임으로 동작하며, 함께 나아갈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느 순간 노들의 규칙이 깨진다. 각자 다른 동작으로 움직이고, 전시장을 은은하게 들러보고 있던 등대의 불빛도 감시자의 눈이 돼 전시장에 모인 인간들을 노려보기 시작한다. 과연 이 <작은 방주>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나아갈 수는 있긴 한 것일까.

▲작품 〈빨강〉 앞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최우람 작가 ⓒ김재성 사진 기자<br>
▲작품 〈빨강〉 앞에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최우람 작가 ⓒ김재성 사진 기자

최우람은 중앙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조소과 과정까지 마쳤다. 대학시절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어보다는 교수님의 제안에 청계천을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최 작가는 작품마다 이야기를 입히고, 기계생명체(anima-machine) 시리즈의 경우 라틴어 제목과 새로운 학명을 만들어 붙이기도 했다. 의미를 유추할 수 없는 난해한 제목을 붙이면서 관객들이 좀 더 기계의 동작에 빠져들게 하기위해서다. 그의 창작은 언제나 최우람이 만든 세계를 토대로 온전히 존재했다. 최 작가가 그런 세밀하고 탄탄한 세계관을 유지한 지 벌써 3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2013년 MMCA 서울관 개관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로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감각을 전했던 작가는 근 10년 만에 한국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히고 국내 중견 작가들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2014년부터 현대차가 지원하고 있는 ‘MMCA현대차 시리즈’ 선정작가가 돼 MMCA 서울관에 돌아왔다. 그의 시각과 세계는 여전히 생생하고 신선했다. 동시에 더욱 탄탄해졌다. 30여 년간 언제나 사회를 온전히 마주하고,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그의 철학들은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물음들을 전시장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인터뷰 중 최 작가는 “사실 계급의 문제, 무한경쟁의 느낌의 <원탁>과 같은 이미지와 생각은 모두가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본다. 다만 작가인 내가 그것을 구현해냈을 뿐.”이라며 겸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최 작가는 지금 이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언어를 구현한 작가다. 이번 인터뷰에선 그가 거대한 기계방주와 원탁들로 하고 싶었던 말을 문자의 형태로 만나보고자 한다.

지난 12월 초 여전히 많은 관람객들이 오고 가고 있는 MMCA현대차 시리즈 《작은 방주》 전시장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우람 작가를 만났다. 모든 질문을 고심하며 듣고, 한 마디 한 마디 피아노 건반을 누르듯 답을 전한 최 작가의 세계는 정말 깊고, 무한해보였다.

▲최우람_작은 방주, 등대, 두 선장, 제임스 웹
▲최우람 〈작은 방주〉, 〈등대〉, 〈두 선장〉, 〈제임스 웹〉 (사진=MMCA 제공)

2017년 국립대만미술관 개인전 이후 5년 만의 전시이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선 첫 개인전이다. 2013년 MMCA 서울관 개관 ‘현장제작 설치 프로젝트’로 <오페르투스 루눌라 움브라 Opertus Lunula Umbra> 선보이고 근 10년 만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게 됐는데 감회가 어떤지.

많은 작가들이 꿈꿨던 기회라고 생각한다. 정말 감사하고, 기다렸던 전시였다. 보여주고 싶었지만 보여줄 수 없었던 작업을 실현할 수 있었다. 기계 장치를 만들고, 끊임없이 설계하는 작업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비용이 꽤 많이 든다. 현대차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많이 해소됐던 것 같다.(웃음)

전시를 준비하는 기간은 빠듯하긴 했다. 끽해야 1년 정도의 시간이었기에 빠듯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디어만 있던 작품, 구현해볼 수 없었던 작품을 찾아봤고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연구도 많이 한 시간이었다.

2016년 대구미술관 《스틸 라이프[stil laif]》 전시도 인상적이었다. 당시 유년 시절 회화인 로봇과 그것을 조각 작품으로 완성한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남다른 유년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다.

집안 자체가 창의적인 집이었다. 어머니도 작가로 활동하셨고, 아버지도 회화를 전공하셨다. 아버지는 작가라기 보단 발명가셨다. 집안 내력 자체가 기계적인 지점과 떨어질 수 없었다. 할아버지께서는 1955년 한국 최초로 자동차를 개발한 시발 자동차의 설립자셨다. 당시 할아버지는 형제들과 함께 회사를 설립하셨다. 할머니도 굉장히 특출하신 분이었다.

할머니는 192,30년쯤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어 서울로 상경하신 분이다. 당시에는 비행기가 산업화 되지 않은 시절이었고, 그래서 할머니는 먼저 자동차를 배우셨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 최초의 택시드라이버가 되셨다. 옛날에 여의도가 광장 공항이었을 시절에, 미군이 한국 전쟁 당시 쓰던 전투기를 몇 대 두고 갔다. 그때가 내가 4,5살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할머니는 항상 나를 그곳에 데리고 가서 비행기를 구경시켜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단순히 내게 비행기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본인의 이루지 못한 꿈을 추억하며 그곳을 찾으셨던 것 같기도 하다.

▲질문에 답하고 있는 최우람 작가 ⓒ김재성 사진 기자

굉장히 창의적인 집안이다. 최 작가의 얘기를 듣고 보니, <작은 방주>가 비행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전 작품 경향도 그렇고, 무언가 날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확실히 걸어 다니는 것보다, 공중에 떠 있는 것에 더 많이 관심이 갔던 것 같다. 실제로 날고 싶은 욕구도 있어서, 비행기 면허를 따보고 싶었다. 아직도 언젠가는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구상 모든 생물들은 중력 안에 갇혀있다. 그런 중력에 구애받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상상들을 많이 했다. 그런 상상 중의 한 작품이 기계 생명체시리즈였다.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생물을 바라보고, 지금 없는 것을 만들어보고자 했다. 그렇다보니, 생물이 어딘가를 딛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상하좌우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땅바닥을 딛는 작품보단 떠있는 작품이 많아진 것 같다.

전시 제목 《작은 방주》를 보면 어떤 종교적 의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이 ‘방주’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하다.

‘방주’가 기독교에서 시작된 것은 맞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돼왔다고 본다. 현재 처해있는 어려움으로부터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담긴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엄청난 화산 폭발이라든지, 전쟁이라든지 그런 재난 이외에도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나 직장 속에서도 고통스러운 일들은 벌어지고 있다. 그런 어려움에서 더 나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구가 방주 안에 담겨야지 방주가 방주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방주에 욕망을 담아보자고 생각했는데, 이 욕망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인간은 어딘가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날고자 하는 욕망으로 비행기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넘어서고 나니 하늘이 아닌 우주를 향해가고 싶어 한다. 욕망을 구원하고자 했지만, 욕망자체는 구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작은 방주>도 ‘어디로 떠나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고 출발하지만, 서서히 하나씩하나씩 망가지기 시작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결국 방주는 망가지고, 우린 이 방주를 열고 어디론가 나가야 하는데 우리 앞에 있는 것은 끊임없이 열리기만 하는 문(<출구> 영상 작품)밖에 없다.

작품을 하면서 생각했는데 우리는 현재 이 지구라는 방주 안에 타고 있는 것 같다. 최근 우리는 계속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런 발화는 우리가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감을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끝없이 욕망하는 그 행위가 어디서 어떻게 완결될지 절대 모르는 상황을 마주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다시금 식민지를 꿈꾸고 있을 수도 있다. 이런 상반된 상황들이 동시대에 펼쳐지고 있다. 이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상반됨과 현상을 방주에 담아보고 싶었다.

최근 나 자신도 ‘나’라는 방주 안에 타고 있다고 느꼈다. 우리는 이미 태어났을 때 인간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고, 성장하면서 수명과 교육이나 이런 환경의 변화를 통해 우리의 의식을 만들어 나간다. 살아가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가 타고 있는 이 방주를 보호하는 과정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이 방주를, 나를, 잘 관리하고 마음도 건강하게 유지하면서 주변 환경과 같이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출구>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는데, <작은 방주>와 연결된 의미를 갖고 있다니 더욱 흥미롭다.

우리는 언제나 거대한 문제를 넘고 나면,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우리는 이제 질병을 극복했어!’라든가 ‘이제 전쟁은 끝났어,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거야. 우리 이제 대화로 해결하자!’라든가. 그런 역사들이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엔 전쟁이 남아있고, 질병이 남아있었다. 코로나19도 지금은 극복했다고 생각하지만, 또 한 번 세계가 다 멈추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끝나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이 나올 것이고, 그래서 <출구> 영상도 문을 열어서 새로운 곳에 다다르는 것이 아닌, 그냥 문만 열리다가 끝나는 영상으로 만들었다. 욕망하지만, 욕망을 다 채울 수 없기 때문에 결국은 다시 돌아오고, 다시 돌아오는 작품을 만들었다.

▲〈작은 방주〉, 2022, 폐종이박스, 금속 재료, 기계 장치, 전자 장치 (CPU 보드, 모터), 210 x 230 x 1272 cm. ⓒ서울문화투데이

서울박스에 전시된 <원탁>과 <검은 새> 작품이 SNS상에서 굉장히 화제가 됐다.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작품의 어떤 지점이 대중의 마음을 끌어당겼을까.

<원탁>과 <검은 새>에 딱 정해진 설정을 해둔 것은 없다. ‘그런 세계가 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작품이 공개되고 누군가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원탁을 이고 있는 볏짚 인형들은 검은 새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할까요?’라고 물어봤는데, 당시엔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답을 오랫동안 찾았었다. 그리고 찾은 답은 ‘검은 새가 있는 세계가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에 거기 묶여있는 게 아닐까요.’였다.

인간이 태어나서 자라는 과정 중에는 굉장히 많은 것들이 정해져 있다. 입시제도라든지, 취업이라든지. 제도가 올바르지 않다고 탈출해서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거야’라는 젊은이들도 있지만,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완전히 다른 것을 하고 싶고, 또 그런 삶을 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삶, 정해진 길에 대한 시스템이 매우 정교해졌다. 그런 시스템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느낀다. 내가 내 삶을 일궈나가는 것이 어렵다고 은연중에 모두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 모두 그런 <원탁>과 <검은 새>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는데, 그게 정말 실현이 되고 눈앞에 등장하니 많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공감이 확 됐던 것이다. 작품은 작가와 관객이 같이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느낀다.

<원탁>은 과거의 드로잉으로부터 시작됐다고 알고 있다. 어떻게 시작된 작품인가?

<원탁>의 첫 드로잉은 2014년이었다. 그때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땐데, 정말 욕심쟁이들과 권력욕구만 강한 자들이 권력 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을 봤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좋은 사회, 나라를 준비하는 많은 이들이 있음에도, 언제나 그런 욕심쟁이들, 욕망만이 가득한 이들이 세상의 정점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 지금 <원탁>은 18명의 볏짚 인형이 설치돼 있는데, 숫자에는 의미가 없다. 욕망이라는 것이 끝없듯, 권력을 가진 자도 만족하지 않는 것 같다. 현재도 진행형이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그 권력자를 항상 우리 손으로 뽑고 있다는 것이다.

▲전시장 복도에 설치된 <URC-1>, <URC-2> 와 최우람 작가 ⓒ김재성 사진 기자

5전시실 입구에 위치한 <하나>도 눈길을 끈다. 코로나19 의료진의 방호복 소재인 타이벡(Tyvek)으로 제작한 점이 독특했다. 이번 팬데믹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작가로서 저로서, 특별했는지 잘 모르겠다. 하나 느낀 것은 있었다. 생각보다 우리 시스템이 굉장히 약하다는 것이었다. 특히 과학 같은 것이 굉장히 많이 발전했다고 느꼈는데, 생각보다 정말 빠르게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 많이 놀랐다. 이 세상이 정말 얄팍했다. 최첨단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인간들도 죽음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다. 물리적으로 엄청난 수의 사람이 죽었고, 그것을 인지하면서 나는 팬데믹을 받아들이거나, 익숙해지거나 그런 것보단 심리적으로 변화를 느끼면서 상황을 봐오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세계가 정말 만만하지 않다는 것, 세상을 다 알고 인간이 정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믿었던 어떤 순간이 무너졌다고 본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는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가치들이 순식간에 무너진다고 느꼈다. 나는 예전부터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 장바구니를 사용했고, 음식은 배달보다는 직접 가서 사 먹는 것을 택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우리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배달을 시키고, 일회용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죽는 것보다는 그런 가치를 포기하는 게 낫다고 보는 것이다. 인류의 존재들을 위해서 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런 가치들이 죽음 앞에서 정말 쉽게 무너졌다. 그 가운데서 작가라는 존재도 새롭게 보게 된 것 같다. 작가의 소명 사회적 역할, 그런 것도 얄팍하다고 느꼈다. 이 세상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게 많고, 우리가 질문해야할 것도 많고, 답을 찾아야 할 것도 많다. 그런 상황들을 마주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하나>, 2020, 금속 재료, 타이벡에 아크릴릭, 모터, 전자 장치 (커스텀 CPU 보드, LED), 250 x 250 x 180 cm. (사진=MMCA 제공)

전시실 밖, 복도에 설치된 자동차 전조등과 후미등을 활용한 <URC-1>과 <URC-2>에서 왠지 모를 감동을 느꼈다. 내 차를 폐차시키던 순간이 떠올랐다.

내가 생각한 느낌을 그대로 봐준 것 같다. 정말 고맙다. 나는 대학교 때부터 공부나 공구나 내 욕망에 의해 선택된 존재들을 귀하게 느끼는 것 같다. 나는 첫 차가 스포티지였는데, 한 17~8년 정도 탔던 거 같다. 더 이상은 탈 수가 없어서 폐차를 시키려하는데, 그 과정이 정말 쉬웠다. 서류를 제출하면, 견인차가 와서 가져가고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러 걔(차)를 세차장에 데려가서 손 세차를 시켜주고 편지를 써줬다. 너 덕분에 정말 많은 전시를 했고, 연애도 했고 정말 고마웠다고 그런 얘기를 했다. 뭔가 마음이 이상했다.

<URC-1>과 <URC-2>는 현대차에서 부품을 받아서 제작한 작품이다. 한 대의 신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만 번의 테스트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말 외관이나 기능이 멀쩡한 차들이 정말 많이 폐차된다. 연구소 안에 폐차장을 봤을 때, 도축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차의 기름을 다 빼내고, 부품별로 분해되는 그 과정들을 보는 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 바닥에 정말 흥건하게 기름이 흐르는데, 불그죽죽한 핏물이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폐차된 시험용 차들의 전조등과 후미등으로 하나의 별을 만드는 작품을 시도해봤다. 죽어가는 그 친구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해서, 빛나는 별로 재탄생 시켜주는 그런 과정의 작품이었다.

▲〈하나〉 설계 드로잉 앞 최우람 작가 ⓒ김재성 사진 기자

정말 다양한 가치들이 혼재돼 있고, 부딪치고 있는 때다. 최 작가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주제나, 최근 집중하고 있는 화두가 있다면.

근간에 집중하고 있는 주제는 없다. 관객들한테 보여주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고, 전시가 시작되면서는 나도 관객의 입장이 됐다. 내 작품들을 관람객들이 보고 있는 그 상황들이 내게는 굉장히 새로운 광경이다. 지금은 그런 상황 속 자극을 흡수하고 있는 때다. 이것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간 무엇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질문해준 것처럼 정말 다양한 가치들이 혼재된 사회다. 세상이 복잡해지다 보니, 내가 한 일이 어떤 영향으로 확장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선택이나 기준을 설정할 때, 이것이 맞는 것 같아서 이걸 선택했는데 그 행동이 어떤 결말을 불러일으킬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어떤 선택이 돌고 돌아 전혀 내가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도 흐를 수 있다. 어떤 행위나 선택에 불러 일으켜진 피해를 누가 받는지, 내가 걸어가고 난 후에 그 뒤에 남겨지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바라보고, 또다시 질문하고 있다.

앞으로 어떤 작가로 나아가고 싶은지.

작품을 재밌게 해나가는 작가가 되고 싶다. 전시는 해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기보다, 모든 일이 너무 급하게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이번 전시가 모든 관객들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장이 돼가고 있는 것도 감사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운이 좋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