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예술ㆍ사회ㆍ정치 전반적 가치 흔드는 블랙유머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 예술ㆍ사회ㆍ정치 전반적 가치 흔드는 블랙유머
  • 이지완 기자
  • 승인 2023.02.09 10: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움미술관 로비ㆍM2 전시장, 7.16까지
마우리치오 카텔란 국내 첫 개인전,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미술계의 침입자’ 정체화…제도ㆍ경계 넘나드는 도전

[서울문화투데이 이지완 기자] 사회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블랙유머로 풀어내 전시장을 하나의 공연장으로 만드는 마우리치오 카텔란 (b.1960)의 첫 개인전이 한국을 찾았다. 리움미술관이 2023년 첫 전시로 선보이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WE≫다. 지난 달 31일 시작해 7월 16일까지 열리며, 리움미술관의 로비와 M2 전시장에서 조각, 설치, 벽화와 사진 등 총 38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WE 전경 6_Courtesy of Maurizio Cattelan_사진 김경태 Kim Kyoungtae
▲≪WE≫ 전시전경 ,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김경태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다양한 직군을 경험한 뒤 가구 디자이너로 일하며 비로소 미술계에 몸담게 된다. 변곡점이 많은 그의 인생사는 전형적인 미술가 유형을 벗어나 스스로를 ‘미술계의 침입자’로 정체화하고, 제도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데 기여했다. 카텔란은 일상의 이미지를 도용하고 차용하면서 모방과 창조의 경계를 넘나들어 ‘뒤샹의 후계자’로도 평가받는다.

이번 전시는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의 회고전 ≪Maurizio Cattelan : ALL≫ 이후 최대 규모로 개최되며, 작가 특유의 유머와 풍자가 돋보이는 초기작 뿐 만 아니라 예술의 본질에 대한 전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 온 <코미디언>(2019) 등 최근 화제작을 모두 만날 수 있다.

<코미디언>은 카텔란과 그의 작품을 일반적인 대중에게 모두 인식시킨 작품이었다. 덕테이프로 벽에 붙인 바나나 하나로 미술제도의 한 가운데에서 작품의 가치에 대한 논쟁을 일으킨 작품이다.

▲코미디언, 2019, 생 바나나, 덕테이프,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김경태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코미디언>은 2019년 12월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처음 등장했다. 특별할 것 없는 바나나를 예술가의 지시에 따라 단순히 벽에 붙인 이 작품이 120,000달러에 팔렸고, 이후 한 작가가 퍼포먼스로써 바나나를 떼서 먹어버린 일, 그러나 작품은 그저 신선한 새 바나나로 교체돼 다시 전시가 됐던 일로 계속해서 논란을 일으켰다. 카텔란은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을 판단하고 작품의 미적, 경제적 가치를 결정하는 미술 제도를 회피하는 대신 오히려 한 가운데 뛰어들어 그 모순을 드러냈다.

카텔란은 아돌프 히틀러의 얼굴, 교황 등을 작품으로 스스럼없이 구현해내며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금기시되고 있는 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권위를 직설적으로 마주하게하고 그에 대한 도전을 작품 안으로 구체화 시킨다.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아홉 번째 시간>은 특정 종교 및 맥락을 초월하여 권위와 억압에 대한 열띤 토론을 주선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 공손히 무릎 꿇은 히틀러의 얼굴을 한 작품 <그>(2001)는 언급조차 금기시되는 인물을 생생하게 되살려냄으로써 역사적 트라우마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유발한다.

▲
▲아홉 번째 시간, 1999, 실리콘 고무, 머리카락, 옷, 십자고상, 액세서리, 돌, 카펫,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 ⓒ김경태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작품을 통해 카텔란은 첨예한 토론을 유발하는 한편 도덕적 합리성이나 계몽적 이상을 설파하는 예술가의 역할은 거부한다. 그는 사기꾼, 협잡꾼, 악동이라 불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어릿광대를 자처한다. 스스로를 희화하지만 동시에 누구보다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고 삶의 폐부를 찌르며 현실을 예리하게 비평하는 모습은 현실비평가의 면모를 보인다.

그의 작품은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극사실적 조각과 회화가 주를 이룬다. 작품 대부분은 미술사를 슬쩍 도용하거나 익숙한 대중적 요소를 교묘히 이용한다. 나아가 익살스럽고 냉소적인 일화를 선보이면서 무례하고 뻔뻔한 태도로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하고, 인식의 근간을 순식간에 뒤엎어버려 관람객에게 즉각적인 혼란과 논쟁의 일면을 마주하게 한다.

그_2001_플래티넘 실리콘, 유리섬유, 머리카락, 옷, 신발_101x41x53cm_사진 김경태 Kim Kyoungtae
▲그, 2001, 플래티넘 실리콘, 유리섬유, 머리카락, 옷, 신발, 101x41x53cm ⓒ김경태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유머의 힘으로 진지하고도 심각한 소재들을 자유자재로 비틀며 신선한 자극을 던져 온 작가”라며 “이번 전시에서는 도발적인 익살꾼인 카텔란의 채플린적 희극 장치가 적재적소에 작동되는 작품들을 마주하며 공감, 열띤 토론 그리고 연대가 펼쳐지는 무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의 제목 ‘WE’는 전시에 공개되는 동명의 작품 <우리(We)>(2010)의 직접적 참조가 아닌, 확장된 의미에서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우리가 되는가’, ‘관계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카텔란의 작업을 관통하는 소재인 억압, 불안, 권위, 종교, 사랑, 나와 가족,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에 대한 ‘생각’은 작품을 둘러싼 토론을 활성화하고 나아가 모종의 연대를 시작하게 한다. 카텔란은 작품 안에서 경찰, 범죄자, 예술가 등 여러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하면서 ‘카텔란판 인간희극’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작가는 작품으로 잔인한 삶에 대해 말하지만, 그 끝은 애잔한 공감으로 나아간다.

▲
▲우리, 2010, 나무, 유리섬유, 폴리우레탄 고무, 천, 옷, 신발, 78.5x151x80cm, 세부 ⓒ김경태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전시기간 중에는 전시와 연계하여 카텔란의 예술 세계를 다층적으로 조망하는 다수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전시 기획의도와 주요 대표작을 소개하는 김성원(리움미술관 부관장)의 큐레이터 토크가 3월 9일 예정돼 있으며, 이외 카텔란의 작품세계를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보는 작가연구 강연과 이미지 쓰기 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프로그램 관련 더 자세한 내용은 리움미술관 홈페이지(www.leeum.org)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전시 관람은 무료로 운영되며, 관람 2주전부터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www.leeum.org)에서 온라인 예약을 할 수 있다. 전시는 사전 예약 후 관람가능하며 현장발권도 하다. 하지만 전시장 혼잡 시에 현장발권은 대기 시간이 있을 수 있다.